루시드폴 "불행의 시대, 우리가 서로에게 등대가 됐으면"

“지금 내게 가장 큰 화두는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최근 10년 사이엔 전쟁, 학살, 독재 그리고 혐오가 눈에 띄게 많아졌잖아요. 나와 직접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연결돼 있는 세계에 대한 노래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50·본명 조윤석)이 3년 만에 발표한 정규 11집 앨범의 제목은 ‘또 다른 곳’이다. ‘또 다른 곳’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삶이 모두 이어져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속사 안테나 사옥에서 루시드폴을 만났다. 그는 노래만큼이나 나긋하고 사려 깊은 목소리로 “‘나’라는 우주, 내가 직접 교류하는 우주 그리고 나와 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지만 서로 모르고 지내는 우주가 있다고 할 때 노래의 많은 주제가 두 번째 우주에 너무 많이 몰려 있다”면서 “초점을 조금 바꾸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곳’은 세 우주 가운데 세 번째 우주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는 앨범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두 번째 세계에 묶여 점점 더 불안하고 초조하고 우울한 시대를 위한 조심스러운 제언이다. ‘살이 뜯긴 숲을 지나 / 흐느껴 울던 그 바람, 그 바람 / 녹아 버린 겨울, 재가 된 여름 / 비틀린 나의 혀’라고 노래하는 ‘피에타’와 ‘나의 형제는 모두 / 눈물 흘리다 말라 죽었네’라고 한탄하는 ‘늙은 올리브나무의 노래’에선 깊고 낮은 숨을 내쉬는 그의 탄식이 들린다.
루시드폴은 “예전처럼 밝은 미래가 보이는 것 같지 않다”면서 “실제로 (감귤) 농사를 짓고 있기에 기후변화도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내가 직접적으로 뭔가를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그래도 연대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다 보면 뭐라도 조금은 힘이 되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는 바람도 전했다.
루시드폴은 팬데믹으로 고립됐던 시기 주로 소리의 근원으로 침잠했다. 비정규앨범인 두 앰비언트 앨범 ‘댄싱 위드 워터(Dancing with Water)’(2020)와 ‘빙-위드(Being-with)’(2023)에선 ‘싱어’가 아닌 ‘소리 공학자’로서 소리를 탐구했다. 10집 ‘목소리와 기타’(2022)에선 기타와 목소리로만 앨범을 채웠다. 세 앨범 모두 시작부터 끝까지 홀로 모든 것을 만들었다. 누군가와 함께 연주하고 소리를 매만진 건 9집 ‘너와 나’ 이후 6년 만이다.

그가 ‘또 다른 곳’으로 갈 수 있게 도운 이들은 김진수 표서윤(이상 기타) 조윤승(피아노) 그리고 스페인 기타리스트 파우 피게레스, 아르헨티나 드러머 마리아노 티키 칸테로, 브라질 싱어송라이터 시쿠 베르나르지스 등이다. 그는 “중학생 시절 친구들이 메탈리카를 들을 때 보사노바를 들었고, 어른이 되고 나서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스페인, 포르투갈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그게 음악 DNA에 새겨진 듯하다”고 했다.
사회적 주제가 중심이 된 앨범이지만 타이틀 곡은 레트로풍의 간결한 사랑 노래 ‘꽃이 된 사람’이다. 그는 “진지한 것을 좋아하다 보면 어렵거나 심각한 쪽으로 빠지기 쉬운데 보편적으로 소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곡을 찾다 보니 소속사에서 다수결로 이 곡을 선택한 것 같다”고 했다.
2009년 발표한 ‘레미제라블 파트 1, 2’에 이어지는 곡으로 세계 각지 시민들이 저항하는 소리를 통해 자유를 노래하는 ‘레미제라블 파트 3’, 절망의 시대에 희망과 연대를 노래한 ‘등대지기’, 2005년 발표한 ‘물이 되는 꿈’의 포르투갈어 버전 ‘아구아’ 등도 실렸다. 곡마다 주제는 서로 다르지만 기타, 피아노, 드럼, 퍼커션 등 악기의 질감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들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루시드폴은 “해외 음악가들은 모두 원격으로 작업했는데 원하는 것 이상으로 해줘서 운이 정말 좋았다”면서 “국내 음악가들은 함께 모여서 작업했는데 누군가 함께 내 음악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느낌을 6년 만에 받았다”고 했다.

‘또 다른 곳’은 디스토피아를 노래하면서 희망을 꿈꾸는 앨범이다. 루시드폴이 ‘등대지기’를 자신만의 타이틀 곡으로 여기는 이유다. “(세월호 참사를 바탕으로 썼던) ‘아직 있다’에 대한 10년 만의 응답이라 할 수 있는 곡입니다. 그 후에도 불행한 일들이 계속 반복됐잖아요. 우리가 조금 더 함께 아픔을 나누며 서로 연대해서 이겨나갈 수 있지 않을까, 서로에게 등대가 되면 좋겠다 하는 마음에서 노래했습니다.”
1998년 인디 밴드 미선이 멤버로 데뷔한 루시드폴은 2001년부터 솔로로 활동하며 ‘오, 사랑’ ‘보이나요’ ‘꽃’ ‘고등어’ 등의 대표곡을 남겼다. 부산 출신으로 스웨덴 왕립공대, 스위스 로잔공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2014년 제주도에 정착해 농부 겸 싱어송라이터로 살고 있다.
루시드폴은 앨범 발매에 이어 28~30일 사흘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영산극장에서 단독 콘서트 ‘또 다른 곳’으로 팬들과 만난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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