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해 장진영 소설이 위악과 유머를 구사하는 법

2025. 11. 1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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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8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장진영의 소설집에는 말과 기억의 미로를 헤매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장진영의 소설은 기억의 역학에 충실하게도, 자연스러운 망각과 트라우마로 인한 삭제를 구분하지 않는다.

최근 한국문학의 주된 흐름이 타인의 트라우마를 엿보며 감정이입하는 방식이라면, 이와 달리 장진영은 독자에게 기억의 허방 속으로 함께 빠지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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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작9·가나다 순>
장진영 소설집 '우아한 유령'
편집자주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8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11월 하순 발표합니다.
장진영 작가 ⓒ강명신

장진영의 소설집에는 말과 기억의 미로를 헤매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니, 헤맨다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은 말과 기억의 무능 속에서 어떤 결여를 품고 있지만, 그 공백으로 인해 회한에 빠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은 고통스럽기보다, 뭐랄까, 질려 있다. 세상은 지겹고, 이러저러한 일들이 생겨서 짜증 나지만, 여전히 지겹다.

세계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말이지만, 우습게도 말이기 때문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말은 법적인 문서도, 주먹이나 칼도 아니다. 말은 던져지는 것이고, 그 힘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 말을 받는 자의 몫, 그러니까 청자의 재량이 필요하다. 그 재량이 발휘되는 일 역시 청자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장애학생의 입 모양을 '싫어요'로 읽고 그와의 관계를 끊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것이 '싫어해요', 즉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도움을 요청하는 말이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든다. 그러나 그럼 뭐하나. 이미 달라질 것은 없다.

장진영의 '우아한 유령'

말의 불가능성은 기억의 불완전성과도 맞닿아 있다. 기억 역시 말처럼 절대적이면서도 허술하다. 우리는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기억에 기대지만, 기억은 끊임없이 망각되고 왜곡되어 결국 우리의 뒤통수를 친다. 주가조작으로 감옥에 간 아버지가 딸에게 돈을 숨긴 장소를 알려주지만, 딸은 그곳이 제부도인지 대부도인지 혹은 제주도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것은 기억의 문제일 수도 있고, 애당초 흘러가는 음성을 제대로 듣는 일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타인의 말을 그의 의도대로 해석할 수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여하튼 삭제되거나 왜곡된 것이 그저 학창시절 친구의 얼굴 정도라면 다행이지만, 그 친구에게 내가 폭력의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알 수 없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단지 아버지가 돈을 묻은 장소를 떠올리지 못하는 정도라면 안타까울 뿐이지만, 딸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는지 아닌지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장진영의 소설은 기억의 역학에 충실하게도, 자연스러운 망각과 트라우마로 인한 삭제를 구분하지 않는다. 화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소설이 대신 누설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최근 한국문학의 주된 흐름이 타인의 트라우마를 엿보며 감정이입하는 방식이라면, 이와 달리 장진영은 독자에게 기억의 허방 속으로 함께 빠지기를 요구한다. 공감의 윤리를 읍소하는 대신, 의혹과 그럼에도 불구한 수용을 강제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끝내 알 수 없는 구멍이 존재하는 서사에 연루되고, 그런 삶을 견디기 위해 위악과 유머를 구사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제58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진출작. 그래픽=김대훈 기자

이소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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