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607] 사막에 음각한 예술품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5. 11. 17.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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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하이저, 더블 네거티브, 1969년, 미국 네바다주 몰몬 메사 소재.

그림이 빈 화면을 물감으로 메우는 것이라면, 조각이란 무게와 부피를 가진 어떤 물체를 새롭게 만들어 비어 있던 자리를 채우는 일이다. 미국 미술가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1944~)는 이와는 정반대 방식을 택했다. 그는 가득 차 있던 지형에서 물체를 덜어내 빈 공간을 만들었다. 바로 네바다주 사막 한가운데의 ‘더블 네거티브’다.

1969년 하이저는 거친 암석 지대의 협곡을 가운데 두고 각각 폭 9m, 깊이 15m, 길이 450m에 이르는 길고 깊은 도랑을 둘 파내 마주 보게 했다. 공사 중 걷어낸 암석 24만t은 모두 협곡 안으로 버렸다. 작품의 면모를 한눈에 조망하는 건 항공 사진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제목의 ‘더블 네거티브’란 부정을 두 번 하면 긍정이 되는 어법을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글자 그대로 ‘네거티브’ 즉 음각(陰刻) 공간이 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비움으로써 거대한 형상을 만들었으니 부정에 부정을 거듭해 긍정에 도달한 셈이기도 하다.

대지 예술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1985년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이 구입해 소장 중이다. 물론 한 평론가 말대로 작품을 미술관에 넣느니, 미술관을 작품 안에 넣기가 쉬울 것이다. 관람을 원한다면 반드시 사륜구동 차를 타고 위험을 감수하고 현장에 가야 한다. 1960년대에 등장한 대지 예술은 당시 점점 더 상업화하는 미술 시장에 대한 반발로, 소유와 거래가 불가능한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흐름의 하나다. 작품이 손상된다고 해도 보수할 길이 없으니, ‘이중 부정’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언젠가는 소멸해 자연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것이 본질에 충실한 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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