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클릭’ 시대의 언론 [저널리즘책무실]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10여년 전, 한국 언론계에는 디지털 혁신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 무렵 국내에 소개된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 영향이 컸다. 언론사들은 너나없이 ‘디지털 퍼스트’를 외쳤다.
문제는 포털에 종속된 뉴스 생태계였다. 인터넷 시대 초기, 푼돈을 받고 뉴스 콘텐츠를 포털에 넘긴 것이 화근이었다. 뉴스 소비가 포털에서 이뤄지면서 언론사들은 ‘브랜드’를 잃었다. 온라인 뉴스 시장에는 ‘네이버 신문’과 ‘카카오 일보’만 존재한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포털이 뉴스 유통을 쥐락펴락하는 상황에서 개별 언론사들의 디지털 혁신은 모래 위에 집 짓기만큼이나 허망했다. 언론사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자사 기사를 포털에 많이 노출시킬 수 있을지에 집중됐다. ‘유통 공룡’ 포털이 내주는 떡고물(트래픽)이라도 챙기자는 요량이었던 거다.
그나마 최근 들어 몇몇 언론사들이 ‘로그인 월’이나 콘텐츠 유료화, 멤버십 등 새로운 수익모델 실험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기나긴 포털 종속에서 벗어나 언론사 자체 플랫폼에서 승부를 걸어 보겠다는 의미 있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언론사들의 이런 ‘야심찬 응전’은 이번에도 녹록지 않은 일이 될 것 같다. 포털보다 더 파괴적일 수 있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어서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다.
글로벌 검색 시장의 강자 구글은 지난해 5월(한국에선 12월)부터 ‘에이아이 오버뷰’ 서비스를 시작했다. 검색 결과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서비스다. 키워드와 관련 있는 정보를 링크 형태로 제시하는 기존 검색과 달리, 이용자의 질문에 직접 답변을 해주는 방식이다. 챗지피티(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검색 점유율이 하락할 조짐이 보이자 선제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 서비스 출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미디어 기업들이다. 검색 유입 트래픽이 급전직하하고 있어서다.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디지털 콘텐트 넥스트’가 올해 5~6월 뉴욕타임스 등 19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구글 검색을 통해 유입된 트래픽이 최대 2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한국저작권위원회, ‘저작권 이슈 브리프’) 트래픽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인공지능발 트래픽 충격이 발생한 이유는 이용자들이 답변에 인용된 웹문서를 클릭할 유인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질문 의도를 파악해 핵심 내용을 정리해서 보여주는데 굳이 원문 링크를 눌러서 읽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콘텐츠 저작권 지원 플랫폼 톨빗이 지난 2월 공개한 보고서를 보면, 기존 구글 검색과 견줘 인공지능 검색의 링크 클릭률이 91%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제로 클릭’ 현상이 기우가 아님을 보여준다.
인공지능 검색의 답변에는 언론 보도가 적잖이 활용된다. 인공지능 기반 피알(PR) 플랫폼 ‘제너러티브 펄스’가 지난 7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답변에 인용하는 문서의 27%가 저널리즘 콘텐츠였다. 시의성 있는 질문에서는 그 비율이 49%나 됐다.(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 브리프’) 재주는 언론이 부리고 수익은 인공지능 업체가 챙기는 꼴이다.
외국에선 언론사들이 인공지능 업체를 대상으로 트래픽 급락에 따른 수익 감소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제로 클릭’이 이미 발등의 불이 됐지만, 국내 미디어 업계는 아직 체감을 못 하는 분위기다. 검색 시장을 구글이 아니라 네이버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네이버도 지난 3월 구글 오버뷰와 유사한 ‘에이아이 브리핑’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금은 일부 검색에 대해서만 적용하고 있지만 점차 늘려갈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 언론도 머잖아 ‘네이버발 제로 클릭’ 충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트래픽 하락보다 중요한 건 뉴스 소비 패턴의 근본적인 변화다. 인공지능 답변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면 이용자들이 굳이 뉴스 사이트를 방문할 필요성을 못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개별 언론사들의 디지털 혁신 노력도 헛심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 언론은 어떻게 생존해야 할까. 윤은정 한국일보 통합멤버십 팀장은 ‘신문과 방송’ 8월호에 쓴 ‘2025 세계뉴스미디어총회’ 참관기에서 총회의 키워드로 ‘의도 있는 독자’를 꼽았다. “우연히 유입되는 다수보다 다시 돌아오는 소수와 관계를 설계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해법도 ‘독자와의 직접적인 관계 구축’으로 수렴된다. 인공지능 요약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고품질 저널리즘이 밑바탕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포털 시대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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