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동서남북] 한국은 왜 '중견국을 넘어 준강대국' 인가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에 대해 일부에서는 "강대국 흉내를 내려 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를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순간에도 미국·중국·러시아 같은 전통적 강대국들은 각자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 중견국들은 그 한복판에서 생존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한민국은 경제력·군사력·산업력·기술력·문화력 등을 종합하면,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Upper Middle Power', 준강대국 지위에 이미 올라섰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 10~12위권 경제력, 6~7위권 군사력, 5위권 제조업 역량, 9위권 방산 수출 역량을 동시에 갖춘 드문 국가다. 반도체·조선·배터리·철강·화학 등 글로벌 핵심 공급망을 좌우하고 있으며, K-방산은 K2 전차·K9 자주포·FA-50을 앞세워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KF-21 전투기 개발, SLBM 탑재 잠수함 보유, 정찰위성 체계 구축 등은 국제사회로부터 "한국은 특정 분야가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국가"라는 평가를 끌어냈다.
그러나 강대국은 단순한 경제 순위나 군사력 총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강대국이란 국제질서의 규칙을 만들고, 이를 타국에 적용시키며, 필요하다면 질서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전략적 자율성'을 보유한 국가를 의미한다. 이 기준에서 아직 한국은 강대국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유는 핵억제력, 원거리 투사력, 우주전력이 아직 완전한 형태로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째, 핵추진잠수함(SSN) 확보는 한국이 강대국의 문턱을 넘어서는 데 결정적 요소다. 핵잠은 무제한 잠항과 초장기 작전이 가능해 강대국 해군력의 상징으로 불린다. 핵잠 확보는 단순히 해군의 잠수함 하나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장거리 해상교역로 보호 능력, 독자적 대양작전 능력, 초국가적 억제력 등 국가전략의 근간을 바꾸는 선택이다. 한국이 핵잠을 확보하는 순간 지역해군에서 대양해군으로 위상이 변하며, 이는 곧 강대국 요건 중 하나를 충족하는 셈이다.
둘째, 핵연료주기(우라늄 농축·재처리) 자립은 전략적 자율성의 핵심 중 핵심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나, 유독 연료 주기만큼은 미국과의 원자력협정(123협정)에 묶여 있다. 그러나 핵잠을 포함한 전략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면 연료의 자립이 필수적이다. 독자적 농축·재처리 능력은 핵잠·SMR·핵추진 상선 등 미래 에너지·방산·해양산업의 기반 기술이며, 강대국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자립적 전략기술이다.
셋째, 우주전력은 현대 강대국의 '보이지 않는 기준'이다. 미국과 중국이 우주군을 창설하고, 러시아·프랑스·일본까지 군사우주력을 강화하는 이유는 단 하나, 우주가 현대전의 지휘·통제·정찰·항법의 핵심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정찰위성 5기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독자 항법체계(KPS) 개발을 시작했다. 누리호의 성공은 자력 발사체 능력 확보를 의미한다. 우주전력이 완성되면 한국군은 생존·억제·정찰·정밀타격·전장관리에서 전략적 독립성을 갖추게 된다.
한국은 이미 경제·산업·군사·기술 면에서 명백한 준강대국이다. 다만 강대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마지막 간극을 메우려면 핵잠·핵연료주기 자립·우주전력이라는 세 가지 전략축을 완성해야 한다. 이 세 축이 갖춰지는 순간 대한민국은 단순한 동맹국을 넘어 국제질서의 한 축을 스스로 설계하는 국가가 된다.
강대국은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전략적 자율성, 기술주권, 그리고 국가적 결집력이 함께 작용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그 결정적 문턱 앞에 서 있다. 남은 과제는 이를 완성하기 위한 국가적 의지와 초당적 결단이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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