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관세장벽 걷히자 ‘800조 보따리’ 내놨다…투자계획 지켜질까

오유진 기자 2025. 11. 1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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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SK, 현대차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향후 5년간 약 800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를 단행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을 비롯해 한화·HD현대·셀트리온은 전날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논의를 위한 민관 합동회의에서 총 833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계획을 공개했다. 기업들이 힘을 합쳐 대규모 국내 투자를 공언한 건 정부의 한·미 관세 협상 타결에 화답하기 위한 차원이다.

지난해 계획했던 중장기 투자 금액을 상향해 2026~30년 125조2000억원을 국내 AI, 모빌리티, 수소 등 미래 산업에 투자하겠다는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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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투자 본격 시동…美 투자에도 국내 '마더팩토리' 강화 의지
협상 타결이 부른 정부 첫 대규모 투자, 지역균형도 겨냥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여승주 한화그룹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재명 대통령,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하준경 경제성장수석 ⓒ 연합뉴스

삼성, SK, 현대차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향후 5년간 약 800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를 단행한다. 한·미 관세 협상으로 주춤했던 국내 산업계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다. 대미 투자를 확대하더라도 '마더팩토리(핵심 공장)'인 국내 투자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기업들의 의지가 담긴 행보다. 이번 투자는 성장 동력이 식은 한국경제가 다시 발돋움할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을 비롯해 한화·HD현대·셀트리온은 전날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논의를 위한 민관 합동회의에서 총 833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계획을 공개했다. 기업들이 힘을 합쳐 대규모 국내 투자를 공언한 건 정부의 한·미 관세 협상 타결에 화답하기 위한 차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6일 모두발언을 통해 "대미 투자가 강화되면서 국내 투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걱정이 나오는데, 여러분이 잘 조치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며 "가급적 국내 투자에 지금보다 더 마음을 써달라"고 당부했다.

재계, 정부에 화답…"국내 투자 소홀하지 않겠다"

삼성은 이날 향후 5년간 연구개발(R&D)을 포함해 총 450조원을 국내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투자계획으로는 반도체 한파로 중단됐던 평택사업장 5공장(P5) 건설 프로젝트 재가동이 꼽힌다. 미국 텍사스주 등에 반도체 설비투자를 이어가는 동시에, 국내 거점 사업장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축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국내 산업투자와 관련한 우려가 일부 있겠지만, 그런 일이 없게 하겠다"며 "지난 9월 약속한 대로 향후 5년간 6만 명을 국내에서 고용하고, R&D 등 국내 시설 투자도 더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강조했다.

SK는 2028년까지 계획된 국내 투자계획을 이행하면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총 60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당초 2028년까지 128조원의 국내 투자를 계획했으나, 투자 예상 비용이 늘어나고 있다"며 "추산은 어려우나 용인 팹(공장)만으로도 향후 600조원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 관계자는 "메모리반도체 수요, AI 인프라 구축 등 산업 발전 속도에 맞춰 투자 범위와 시기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관세 협상 타결 이후 "정부에 큰 빚을 졌다"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사상 최대 규모의 중장기 국내 투자계획을 공개했다. 지난해 계획했던 중장기 투자 금액을 상향해 2026~30년 125조2000억원을 국내 AI, 모빌리티, 수소 등 미래 산업에 투자하겠다는 골자다. 투자안에는 현대차그룹과 거래하는 1차 협력사가 올해 미국 측에 납부하는 부품 관세를 전액 지원하겠다는 상생 협력 내용도 포함됐다.

LG는 지난해 공개한 100조원 투자계획을 이날 구체화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향후 5년간 계획된 100조원의 투자 중 60%를 소재·부품·장비 기술 개발 및 확장에 투입할 계획"이라며 "협력업체 설비 자동화, AI 적용 노하우 등을 활용해 협력사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한·미 협상으로 조선·방산 분야에서 수혜를 받게 된 한화는 향후 5년간 11조원의 투자를 약속했으며, HD현대는 조선·해양 분야를 중심으로 총 15조원의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이날 "미국에 있는 저희 로비스트들이 너희 나라 정부 대단하다고 그러더라"며 협상 결과에 보은하는 차원으로 4조원을 투자해 인천 송도, 충북 오창, 충남 예산 등에 국내 생산시설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부터)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16일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세 협상 계기로 '투자 공백' 해소 시동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대규모 국내 투자는 관세 협상 타결 이후에서야 본격 시동을 걸고 있다. 통상 재계는 매년 대통령 임기 초반에 맞춰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는데, 올해는 조기 대선이 치러진 데다 관세 협상 등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투자계획을 내놓지 못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조 단위 국내 투자계획을 밝힌 곳은 LG디스플레이가 유일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은 정권 초기 정부 정책들을 살피며 투자 시점과 규모를 조율하는데, 올해는 정부 경제 정책이 관세 협상에 집중되면서 투자계획이 미뤄진 측면이 있었다"며 "이번 협상을 통해 정부와 기본적인 신뢰 관계가 구축됐음을 확인했고, 앞으로도 정부 정책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정부가 '코스피 5000' 달성을 위한 증시 부양에 나서는 등 기업 지원 정책을 내놓은 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기업 총수들과의 면담에서 "친기업·반기업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규제 완화 또는 해제, 철폐 등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신속하게 정리하겠다"며 규제 완화 가능성도 열어뒀다.

기업도 지역 균형발전에 동참…비수도권 집중 투자

이번 발표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지역 균형발전 투자 방안이다. 그동안 기업은 투자 금액과 분야에 집중해 계획을 밝혔지만, 이번 계획에는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신규 설비가 들어설 입지가 구체적으로 언급됐다. 이재명 정부의 최대 과제인 지역 균형발전에도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이날 AI 인프라 확대를 위해 전남 국가 컴퓨팅센터, 구미 AI 데이터센터 등을 건립하고, 이달 초 인수한 플랙트그룹의 한국 생산라인을 광주광역시에 짓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화와 HD현대는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 발맞춰 지역에 위치한 국내 조선소 단지 및 조선 기자재 업계와 협력해 상생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강조하는 지역 균형발전 문제에 대해 기업들도 절실히 공감하고 있다는 시그널"이라며 "정부가 동남권(제조업), 서남권(재생에너지) 등 각 지역에 맞는 발전 전략을 짜고 있는데, 기업들도 이 계획에 발맞춰 신규 설비투자를 집행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투자가 산업뿐 아니라 고용·건설 등 전방위적 영역에서 파급효과를 낳을 것으로 내다본다. SK그룹은 내년부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팹 1기당 연간 2만 명가량을 고용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며, 현대차그룹도 올해 7200명 수준인 신규 채용 인원을 1만 명으로 확대하겠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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