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흔드는 ‘원맨쇼’…관세도 GPU도 트럼프 한마디에 ‘출렁’
말과 정책 사이 불일치 커…美에서도 ‘정책 불확실성 요인’으로 인식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정책적 신호'인가 '정치적 계산'인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는 강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관세·기술·투자 등 많은 영역에서 즉각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와 연설, 인터뷰 등을 통해 협상 카드나 정치적 무기가 될 돌발 발언을 던졌고, 글로벌 금융시장과 각국의 정책 방향은 흔들렸다. 때로는 정책보다 앞서가고, 때로는 실제 조치와도 엇갈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한미 관계와 한국 경제의 핵심 변수로도 작용하고 있다. 한미 관세 협상과 그에 수반된 대미 투자,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 문제 등을 둘러싸고 내놓은 발언의 파장에 시선이 모인다.

트럼프의 말 따라 들썩이는 국제 금융시장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많은 국제기관은 '불확실성'을 얘기했다. 미국 우선주의로의 복귀를 예고한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면서 관세 정책과 공급망 재편 등에서 방향을 급격하게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변동성은 가시화됐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최대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언급하자마자 달러 가치는 급격하게 상승하고 캐나다 달러와 멕시코 페소 가치는 하락했다. 관세 관련 언급이 없었던 일본의 엔화 가치가 상승하는 등 그의 한마디에 국제 금융시장이 들썩였다.
그는 한국을 겨냥한 발언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4일(현지시간) "한국은 군사적인 도움을 주는 미국에, 미국의 4배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제품 대부분에 무관세가 적용되기 때문에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불공정한 무역흑자를 누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해당 발언을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책과 정치를 오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목소리는 지난 4월 국가별 상호관세 부과 발표를 기점으로 더 커졌다. 미국과 수교 중인 나라들에 관세를 무차별적으로 난사한 그는 이를 또 90일간 유예하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나라별 '협상'을 예고한 만큼 전 세계의 시선이 트럼프 대통령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한 차례 연장된 관세 유예의 데드라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SNS를 통해 밝혀졌다. 자신의 트루스 소셜에 "8월1일은 미국에 중대한 날이다. 마감시한은 확고하며, 연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적은 것이다. 그는 1차 관세 협상 타결 전날인 7월30일에도 "한국과의 관세 협상을 끝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협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한국에 부과한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협상은 타결됐지만,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방식을 놓고는 입장차가 이어졌다. 미국은 지분 투자 형태로 현금을 받아 자체적으로 투자처를 결정하길 원했으나, 한국은 보증 형태를 선호했다. 이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선불' 발언을 이어가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9월25일(현지시간) 무역 협상 성과를 언급하던 기자회견에서 "일본에서 5500억 달러, 한국에서 3500억 달러를 각각 받는다"며 "그것은 '선불'"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선불 방식이 관세 인하 전제조건임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원하는 방식의 합의 타결을 유도하는 것으로 풀이됐다.
그는 10월15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도 "한국은 3500억 달러를 선불로 합의했다"며 현금 투자 요구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발언 직후 한국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을 돌파해 1420원대까지 치솟은 바 있다. 결국 한미 양국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금 중 2000억 달러를 현금 투자하되, 연간 한도를 200억 달러로 제한하는 절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공식 발표가 미뤄지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관세 변덕'에 대한 긴장감도 여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엔비디아 GPU 놓고도 설왕설래
관세의 고비를 넘긴 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기술'로 향했다. 그는 10월31일 녹화돼 11월2일 방송된 CBS 인터뷰에서 "최첨단 (인공지능 반도체) 제품은 미국 외 다른 누구도 못 갖게 할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전용기 내 회견에서도 "새 블랙웰(엔비디아의 최신 칩)은 다른 모든 칩보다 10년 앞서있다"며 "다른 나라에 그것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AI 반도체 중 최첨단 칩을 다른 나라에 판매하지 않을 것이란 취지로 해석되면서 시장은 다시 출렁였다.
이 발언이 공개된 직후,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밝힌 'GPU 한국 공급 계획'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한국에 26만 장의 GPU를 공급하겠다는 발표 내용이 서면계약까지 가지 않은 시점에 최첨단 칩이 미국에 갇힐 가능성이 떠오르면서 분위기가 얼어붙은 것이다. 인터뷰가 방송된 다음 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5% 이상 동반 하락했다.
그러나 하루 후 마이크로소프트(MS)는 미국 상무부로부터 블랙웰 기반 GPU인 GB300을 포함한 GPU 6만4000장의 아랍에미리트(UAE) 수출을 승인받았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으나, 결과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실제 정책이 엇갈린 사례로 인식된 바 있다.
미국 내부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 정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쏟아진다. 미국 외교협의회(CFR)는 "미국 무역 정책이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배경에서 펼쳐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일부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불안이 미국의 경제·안보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발언이 무역 정책 불확실성지수(TPU)를 급등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TPU는 트럼프 재선 이후 전례 없는 수준으로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은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서 미국 공급망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발언이 잦아질수록 기업의 투자·입지 결정 비용은 증가하고, 정부도 통상 협상의 예측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은행은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증대된 미국의 무역 정책 불확실성이 한국 성장률을 2025년 0.13%포인트(p), 2026년 0.16%p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불확실성으로 인한 의사결정 지연으로 부정적 영향이 커진다는 것이다.
주진철 한국은행 경제모형실 금융모형팀 차장은 "트럼프 2기 행정부 통상 정책의 급격한 변화와 무역 정책 관련 불확실성은 관세 부과 여부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우리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한국과의 무역 정책 불확실성이 향후 증대되지 않도록 세부적 측면에서 양국 간 긴밀한 통상 협의를 지속해 나갈 필요가 있다. 기업들의 투자 및 수출시장 진출이 위축되지 않도록 무역금융 지원과 투자 여건 개선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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