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베뮤’ 창업자 저서가 ‘산재’ 코너에 배치된 까닭

11월1일 오후 2시경,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 흰색 옷을 입은 홀 담당 직원 10여 명이 미소를 띤 채 손님을 맞았다. 모두 20~30대로 보였고 여자 직원들은 양갈래 머리를 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손님이 빵을 주문하면 발라 먹을 것을 추천하고, 한 명씩 계산대까지 안내했다. 주말 오후 시각, 매장 대기 줄에는 외국인을 포함해 다섯 사람 정도만 서 있었다. 매장 앞을 지나던 한 커플이 속삭였다. ‘여기 거기잖아. 과로로 사람 죽은 데.’
이곳에서 일하던 정효원씨(26)가 지난 7월16일 인근 숙소에서 심정지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정씨는 2024년 5월 입사 후 14개월 동안 유명 베이커리인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기간제로 일했다. 그는 올해 7월12일로 예정되어 있던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 개점을 앞두고 7월1일 인천점 주임으로 배치받았다. 유족 측 주장에 따르면, 스케줄표와 카카오톡 대화 내역 등으로 추정한 결과 정씨는 사망 직전 일주일 동안 80시간 12분을, 12주간 평균 약 60시간 21분을 일했다(밤 10시부터 오전 6시 사이 야간 근무는 주간근무 시간의 30%를 가산해 계산한 수치). 사망하기 하루 전날에는 오전 8시58분에 출근하고 밤 11시54분에 퇴근해 약 15시간 동안 계속해서 근무했다. 연인에게 ‘자도 자도 졸리다’ ‘오늘 밥을 못 먹으러 갔다’ ‘일하느라 하루 종일 연락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긴 것이 그의 유언이 되었다.
〈시사IN〉이 입수한 정효원씨 유족 측 자료에 따르면, 정씨는 근로계약서상 홀(매장) 담당으로 채용되었지만 실제로는 손님 응대와 매장 청소 및 관리를 넘어서는 일을 맡았다. 매장에 배송 온 택배를 하루 200~500개씩 옮기고, 직원을 채용하고 교육했을 뿐 아니라 스케줄표와 영업 매뉴얼을 작성하는 등 광범위한 업무를 수행했다. 오전 7~8시경 출근해서 자정이 넘어 퇴근하는 날이 허다했고 휴무일에도 매장에 출근하기 일쑤였다. 그는 본 거주지였던 경기도 수원시 소재 런던베이글뮤지엄 수원점에서 일하는 것을 전제로 채용되었으나 회사 측의 필요에 따라 잠실점(서울 송파구), 도산점(서울 강남구), 인천점으로 근무 장소를 옮겼다. 인천점 매장 개점 전 회사가 마련해준 단기 숙소에 머물기 전까지는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를 다녀야 했다. 지점을 옮겨 다니며 근로계약서 역시 4~8개월 단위로 세 번 갱신했다.
10월27일 〈매일노동뉴스〉 보도에 따르면 회사의 고위급 임원은 유족에게 “과로사로 무리하게 (산재를) 신청한다면 진실을 알고 있는 저와 직원들이 과로사가 아님을 적극적으로 밝히겠다”라는 문자를 보내고 “효원이가 과로사했다는 거짓에 현혹돼 직원들이 거짓 협조는 하지 않을 예정이니 양심껏 모범 있게 행동하시길 바란다. 굉장히 부도덕해 보인다”라고 폭언했다. 더불어 회사는 “고인의 근무 기간 평균 주당 근로시간은 44.1시간이다” “주 80시간까지 근무했다는 주장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라는 입장문을 냈다. 이후 성명문이 논란이 되자 10월28일 강관구 런던베이글뮤지엄 대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당사의 부족한 대응으로 인해 유족께서 받으셨을 상처와 실망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진심을 담아 사과드린다”라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10월29일 고용노동부는 고인이 일한 런던베이글뮤지엄 본사와 인천점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에 착수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은 2021년 9월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처음 문을 연 이후 전국에 7개 지점을 내며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11월5일 식당 예약 앱 ‘캐치테이블’에 따르면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의 일평균 대기 인원은 2157명이다. 서울 여의도점은 1972명, 잠실점은 1856명, 제주점 1589명, 수원점 1352명, 인천점 1161명, 서울 도산점

955명에 이른다. 런던베이글뮤지엄(법인명 LBM)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매출액 796억원, 영업이익 243억원을 기록했다. 폭발적 성장세를 바탕으로 올해 8월에는 국내 사모펀드 JKL파트너스가 런던베이글뮤지엄 지분 100%를 200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창업자이자 매각 후에도 고문직을 맡고 있는 이효정 브랜드 총괄 디렉터는 자신이 좋아하는 세 단어를 조합해 ‘런던베이글뮤지엄’이라는 가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는 각종 방송 인터뷰, 저서를 통해 성공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온전한 나다움’ ‘인간을 향한 다정한 시선’이라는 철학을 강조했다. 이씨는 2023년 유통산업포럼 강연에서 “매장에서 구성원들이 그 어떤 오브제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배치나 인테리어를 할 때도 직원들을 역광에 두지 않고 자연광을 제일 잘 받는 위치에 두는 편이다. 그들이 가장 예뻐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라고 말했다.
기간제 고용으로 굴러가는 F&B 업계
그러나 LBM의 신규 직원 입사 가이드에는 ‘개인의 업무역량 부족으로 인해 예정된 시간 내 업무를 완료하지 못한 경우, 동료 대비 업무처리 속도가 느려서 연장 근무한 경우, 자발적으로 출퇴근 시간 외 근로를 한 경우 등은 연장근로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2022년부터 올해 9월까지 63건의 산업재해가 승인된 것으로 드러났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의 2024년 산재 승인 건수는 29건으로 SPC삼립(11건)과 비교해도 두 배 이상 많다. 제주의 독립서점 ‘소리소문’은 이효정 디렉터의 저서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을 ‘산재 코너에 박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식품·음료(F&B) 업계에서도 이런 방식의 초장시간 노동은 드문 편이다. 임종린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은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같은 경우에는 주 52시간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런던베이글뮤지엄 사례처럼 장시간 노동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업무 외 수당을 받지 못하거나 유연근무를 하는 경우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2013년 ‘커피전문점 바리스타와 스태프 노동과정과 실태’ 보고서에서 F&B 업계 노동을 조사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한국 F&B 업계 대기업들은 (장시간 노동 등의 문제가 불거졌던) 10여 년 전 이후 인적자원 관리를 해온 결과 초단시간으로 주당 15시간 미만 쪼개기 계약을 해왔다. 런던베이글뮤지엄 사례처럼 주 80시간씩 과로해 목숨을 잃는 사례는 고질적으로 노동 감수성이 없는 가족 기업 혹은 신규 창업 기업에서 나타난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기간제 노동자를 중심으로 매장을 운영하는 방식은 런던베이글뮤지엄을 비롯한 F&B 업계 전반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고용노동부 고용형태 공시정보(3월31일 기준)를 보면 LBM의 전체 노동자 750명 중 726명(96.8%)이 기간제(단시간 포함)였다. 동종 업계에서 직영점으로만 운영하는 주식회사 GFFG(노티드 도넛 운영사)는 직원 524명 중 313명(59.7%)이, 커피빈의 경우 전체 1965명 중 732명(37.2%)이 기간제였다. LBM의 기간제 노동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F&B 업계 전반이 본사에서 근무하는 정규직을 제외하고 매장은 대부분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채운다. 김종진 소장은 “계약직으로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권리를 주장하기가 어렵다. 결국 서비스 산업의 노동조건을 바꾸려면 단체협약 효력 확장 제도를 통해 일부 조직된 노동조합에서 체결된 협약을 유사 업종의 노동자에게 확대하는 것이 방법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11월3일, 유족 측 법률대리인은 “유족과 회사는 오해를 해소하고 상호 화해에 이르렀다”라며 산재 신청을 취소하고 합의했음을 밝혔다. 그와 별도로 고용노동부는 11월4일부터 LBM 전 계열사(18개 사업장)로 감독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그간 제기된 의혹에 대해 묻는 〈시사IN〉의 질문에 LBM 측에서는 “고인의 유족과 오해를 풀고 합의한 상황이다. 제기된 의혹에 관해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답변드리기 어렵다”라고 답했다.
권은혜 기자 kik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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