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유량 감축·수익 하락·생산비 증가…낙농가 짓누르는 ‘多중고’
농가수 감소하고 부채도 늘어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으로
정상가격 받는 물량 줄어 수입↓
계약량 삭감 압박 유업체 ‘문제’
“쿼터 소각 등 폐업길 터줘야”


낙농가의 한숨이 깊어진다. 날이 갈수록 생산비는 치솟는데 흰우유 소비는 정체기에 접어들어서다. 내년엔 주요 낙농국 우유 관세마저 완전히 사라진다. 여기에다 유업체가 경영난을 이유로 수시로 원유 감축을 요구하면서 낙농가는 그야말로 궁지에 몰렸다.
◆ 폐업 외 답 없는 농가=“목장 규모는 똑같은데 원유량을 줄이라고 하니 버텨낼 재간이 있어요? 그냥 문 닫을 수밖에….”
경북 경산시 용성면에서 젖소 70여마리를 키우는 유길주씨(62)는 버티고 버티다 정 안되면 폐업을 하겠다고 했다. 최근 거래하던 유업체에서 생산량을 줄이라는 통보를 받으면서 낙농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완전히 꺾였다.
“우유 소비도 줄고 유업체 어려움도 익히 알아 올해도 어렵사리 3%대 감축안을 수용했는데 이젠 30% 줄이라는 얘기까지 나왔어요. 중소 농가보고 견디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거죠.”
다른 농가 사정도 마찬가지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에서 젖소 120여마리를 키우며 목장을 경영하는 김원석씨(44)는 “최근 몇년에 걸쳐 하루 200ℓ 이상 원유를 감산해야 했다”면서 “생산량은 계속 줄여야 하고 부채는 늘어나니 하루하루 버티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한계점에 다다른 낙농가 상태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한국낙농육우협회에 따르면 2018년 5146곳이던 농가수는 꾸준히 줄어 지난해 4341곳까지 감소했다. 같은 기간 농가당 부채는 3억3700만원에서 5억5700만원으로 올라갔다.
◆ 소비부진을 농가에 전가하는 구조 심화=낙농가의 어려움이 커진 데는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한몫했다는 불만도 나온다. 한국낙농육우협회에 따르면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우유 소비부진이 이어지면서 정부가 2023년 꺼내든 고육지책이다.
종전 농가가 보유한 쿼터 내에서 생산한 원유는 1ℓ당 1246원, 쿼터 초과 물량에 대해선 100원을 주게 돼 있었다. 그런데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쿼터의 88.5%를 음용유 구간으로 정해 1246원(농가 평균)을 주고, 88.5∼93.5%는 가공유 구간(단가 882원)으로, 그 이상 구간은 초과유 구간(단가 100원)으로 설정했다. 사실상 농가 생산량은 물론 수익까지 감소하는 구조로 제도를 개편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유업체가 집유량 수령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업체가 수시로 집유량 감축을 요구하면서 농가는 단기 영농계획을 짤 수조차 없는 처지에 놓였다. 올해 남양유업은 거래조합의 계약량을 전년 대비 17% 줄였고, 매일유업은 내년도 계약량을 올해보다 30% 줄이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낙농육우협회 관계자는 “외국산 유가공품 원료를 수입해 유제품을 만들어 이익을 보는 유업체가 흰우유는 돈이 되지 않는다며 농가에 집유량을 줄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꼴”이라면서 “정부 역시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준수하지 않는 유업체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약속을 사실상 져버렸다”고 비판했다.
◆ 지나친 원유 감축, 우유값 폭등으로 돌아올 수 있어=전문가들은 우유 소비가 감소한다고 해서 원유량을 무리하게 감축하는 것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대학의 식품계열학과 교수는 “젖소 사육기간을 포함해 원유를 생산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계절별 수요·공급 변동성이 크다는 점을 낙농정책 수립 때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면서 “무리하게 원유량을 줄이면 자칫 하절기 ‘우유값 폭등’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농가의 쿼터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용도별 차등가격제 하에서 일방적인 감축 요구가 계속되자 제도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고, 결국 이것이 ‘농가간 쿼터 거래 절벽 → 울며 겨자먹기식 목장 운영’으로 이어졌다는 이유에서다.
한 집유조합 관계자는 “농가 보유 쿼터는 폐업할 농가에 길을 터주고 거래 과정에서 농가규모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면서 “정부가 쿼터 거래를 촉진한다거나, 쿼터를 소각해주는 등의 대책을 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축산경영과 관계자는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안착하도록 생산자단체와 유업체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활발하게 운영해나가는 한편 제도 운영상황을 점검해 허점이 있다면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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