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 벗을 날만 기다리던 동생, 옆방 사형수 집행장 가는 발 소리에 무너져"
일가족 살해 누명 48년 복역하고 풀려나
2020년 재심 개시 확정 후 2024년 무죄
"억울한 이 있을 수도, 사형제 돌아봐야"

'48년을 복역한 세계 최장기 사형수.' 일본 프로복서 출신 하카마다 이와오(89)는 2024년 9월 누명을 벗었다. 사건 발생 58년 만이다. 그는 선수 생활을 마친 뒤인 1966년 6월, 자신의 근무지였던 일본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 시미즈구 소재 된장 제조회사의 전무 일가족 4명을 살해하고, 그 집에 불을 지른 혐의로 1980년 사형이 확정됐다. 경찰의 폭행과 강압수사에 의해 만들어진 허위 자백 등이 주요 증거였다.
거듭 억울함을 호소한 이와오는 유죄의 핵심 증거였던 범행 당시 입었다고 추정된 '혈흔 묻은 옷'으로 반전을 맞았다. 혈흔에서 나온 유전자가 이와오 유전자와 불일치한다는 감정 결과가 새로 나온 것이다. 시즈오카지법은 2014년 재심 개시 결정과 함께 보석을 허가했고, 2020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이를 확정했다. 지난해 9월 시즈오카지법은 "수사기관의 조작이 확인됐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도 항소하지 않으면서 그의 기나긴 싸움은 끝났다.
이와오의 누나 하카마다 히데코(92)를 지난 8일 도쿄 시나가와구 릿쇼대에서 만났다. 히데코는 동생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평생을 싸운 인물이다. 억울한 옥살이 시절엔 재심 청구를 이끌었고, 무죄가 인정된 지금은 동생과 함께 살며 그를 돌보는 한편 망상 장애로 소통이 어려운 이와오 대신 언론 등과 만나 사건의 진상과 사형제 폐지 필요성을 꾸준히 알리고 있다. 히데코는 사형제 폐지 국제 단체인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해 하나로(Together Against the Death Penalty·ECPM)'가 주최한 제5회 동아시아 사형제 총회(7~9일) 참석차 도쿄를 방문했고, 개회식 연사로 연단에 섰다.

히데코에 따르면 동생은 수감 생활 내내 면회와 편지를 통해 "내가 왜 감옥에 있는지 모르겠다"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다시 사회에 나가면 후배 복서들을 키워 챔피언을 배출하겠다는 목표 아래 감옥에서 끊임없이 몸을 단련했다. 다른 수감자들에게 복싱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러나 사형수로 장기 복역하며 동생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히데코는 전했다. 이와오는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내가 나서야 한다"는 식의 망상 장애를 앓기 시작했다. 일본 사형수는 독방에서 지내며 사형 집행은 당일 아침 통보된다. 극심한 고립과 언제 죽음을 맞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셈이다.
히데코는 평소 수감생활의 고통을 거의 털어놓지 않던 동생이 딱 한 번 극심한 불안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옆방 사형수에 대한 집행을 보고 자신도 하루아침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빠진 것이다. "동생이 면회실로 달려와 몸을 숙이며 말했어요. 어제 옆방 사형수가 집행장으로 이동하는 발 소리를 들었다면서요. 그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유일해요."

동생의 무죄를 이끌어낸 히데코의 목표는 두 가지다. 이와오의 건강을 지켜 여생을 오래 함께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일본에서 사형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현재 105명의 사형수가 수감된 일본은 여전히 사형을 집행하고 있다. 올해 6월에도 2017년 피해자 9명을 살해한 시라이시 다카히로(34)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한동안 재심을 청구한 사형수의 처형은 멈췄지만 2018년부터 재심 절차를 진행 중인 사형수도 집행 대상에 포함해 논쟁이 벌어지기도 횄다. 일본 국민 여론도 사형제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지난해 10~12월 일본 내각부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8명꼴(83.1%)로 사형제가 존치돼야 한다고 답했다. 히데코는 "억울한 사람이 사형당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달라"며 "이와오 사건을 계기로 사형제를 다시 돌아봤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도쿄= 허유정 기자 yjhe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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