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언제까지 ‘이에 따라’ 춤출 것인가

중국 상무부는 지난 10일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5곳을 겨냥한 제재를 철회하며 이렇게 밝혔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해사·물류·조선업에 대한 조치를 1년간 중단한다. 이에 따라 한화오션에 대한 제재를 유예한다.” 이 발표문에서 ‘이에 따라’라는 접속어가 모든 걸 설명한다. 한국 기업의 족쇄가 풀린 건 한중 협의의 성과가 아니라 미·중 무역 전쟁 휴전의 결과라는 뜻이다.
지난 1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관계 회복 의지를 확인했지만, 정작 우리의 시급한 현안을 풀어준 건 그보다 이틀 앞선 미·중 정상회담이었다. 1970년대 닉슨의 방중 이후 우리의 외교와 경제는 늘 미·중 관계의 파도에 휩쓸렸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특히 심하다.
한국 첨단 기술 산업을 흔드는 중국의 희토류 공급 문제도 미·중의 틀 안에서 논의된다. 작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중국과 협의를 이어오며 일부 성과를 냈지만, 구조적 한계는 갈수록 뚜렷해진다. 우리 반도체 산업은 2018년 미·중 무역 전쟁 이후 미국의 규제와 중국의 수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거듭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중국이 한국 콘텐츠를 ‘미국 문화의 파생품’으로 인식하기에 국내 문화 기업들의 중국 시장 확대가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 없는 한반도 논의’도 고착화되고 있다. 내년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중할 경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이 성사될지, 또 중국이 북한과의 경제·외교 협력을 어느 수준으로 복원할지가 한반도 정세의 향방을 좌우한다.
그러니 미·중이 ‘휴전’하면 우리는 안도할 게 아니라, 이런 틀을 뒤집을 궁리를 해야 한다. 중국이 미국을 주어로 놓고 한국을 ‘이에 따라’ 움직이는 졸(卒)로 보는 한, 주체적인 대(對)중국 외교가 불가능하다.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재명 대통령을 만난 시진핑이 샤오미폰을 선물로 건넨 장면은 중국이 한국을 자국 산업 공급망의 종속국으로 본다는 인식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트럼프 또한 한국을 ‘인도·태평양 안보의 주변 파트너’라면서 체스판 위에 놓인 말로 취급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이에 앞서’다. ‘사기’에는 먼저 꾀하는 자가 이긴다(先計者勝)는 말이 나온다. 대만 문제에선 중국이 펄쩍 뛰는 ‘두 국가론’을 북한이 의기양양하게 떠들 때, 우리가 한반도 논의의 주도권을 가져왔어야 했다. 글로벌 반도체 경기가 회복됐다고 축배를 들지 말고, 한국 반도체의 생존 전략을 고민할 마지막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핵심 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었다고 한숨 쉬지 말고, 작은 기술 영역이라도 기술 우위를 갖추며 ‘표준 설계자’로 재부상해야 한다. 정부는 원자재 분야가 경제 사안이 아니라 핵심 국익이란 인식을 갖고 중국과 양보 없는 협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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