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으로 하는 일에는 진심이 담긴다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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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이발소에 갈 일이 있으면 미리 전화를 했다.
반면 두 손으로 하는 일은 대개 진심이 담긴다.
무방비 상태로 제 몸을 믿고 맡긴 사람들을 위해 칼과 가위를 들고 일하는 외과의사나 헤어디자이너 모두 두 손을 쓴다.
사람의 마음에 닿는 일은 언제나 두 손의 온기로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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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이발소에 갈 일이 있으면 미리 전화를 했다. 비교적 먼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이발사 아저씨는 대기하는 사람이 없으니 바로 오면 된다는 소리를 했다. 그 말에 늘 속았다. 딱딱한 대기의자에 앉아 내 순서를 기다리다 보면, 바리캉 소리와 담배 연기 사이로, 푸쉬킨의 시가 적힌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이발소들은 푸쉬킨을 참 많이도 걸었다. 대기 손님들의 화를 누그려뜨려 계속 붙잡아 두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나이가 들어서는 조금 더 현대적인 공간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미용실이나 미장원이라 불렀는데, 요즘은 헤어샵, 줄여서 샵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임상 술기가 많이 부족했던 인턴 시절, 채혈 같은 업무로 많은 환자들에게 하루 종일 고통만 안겨주고 힘없이 퇴근하던 주말 오후가 생각난다. 피폐해진 심신으로 미용실 자리에 앉아 거울에 비친 부끄러운 나와 마주했던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날 내 담당은 빠른 손과 현란한 기술을 가진 미용사였는데, 그의 손놀림으로 나의 지저분했던 머리칼이 깔끔하게 정리된 것은 물론 복잡했던 머릿속까지 깨끗해진 듯한 상쾌함을 느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일이 저렇게 즐겁고 보람있는 일일 수 있다는 생각에 비슷한 직업인으로서 많이 부러웠다. 숙련 노동의 진정한 위대함은, 마음으로 상상한 것을 두 손으로 손쉽게 만들어내는 순간에 느껴진다.
요즘 다니는 샵은 젊은 헤어디자이너 부부가 운영하는 곳처럼 보였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들은 결혼은 하지 않은 친구 사이라고 한다. 가게 이름은 남자 원장의 이름을 썼는데, 대신 여자 원장은 매장 안의 플레이리스트의 전권을 갖는 실리를 택했다. 들리는 음악이 조용하고 좋다고 그의 취향을 칭찬하자, "고객님도 늘 이어폰을 꽂고 다니시던데, 역시 음악 들을 줄 아시는 군요" 라는 답이 돌아온다. 사실은 주식 방송을 듣고 있었지만, 안주인의 낭만을 깨고 싶지 않아 잠자코 있었다. 남자 원장은 큰 사업이나 정치를 해야 할 사람이다. 구순이 돼 보이는 할머니 손님 앞에서는, "저는 어르신이 예약자 명단에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요"라고 너스레를 떤다. 이 말이 너무 듣기 좋아, 언젠가 진료실에서 써먹을 요량으로, 감고 있던 눈을 떠 급하게 메모를 해놨다.
담배 피우는 일, 마우스로 하는 클릭, 그리고 삿대질처럼, 한 손으로 하는 일은 성의가 없게 느껴져 당하는 사람은 기분이 좋지 못하다. 반면 두 손으로 하는 일은 대개 진심이 담긴다. 빗자루로 하는 청소, 키보드로 쓰는 글, 그리고 박수치는 일들이 그러하다. 무방비 상태로 제 몸을 믿고 맡긴 사람들을 위해 칼과 가위를 들고 일하는 외과의사나 헤어디자이너 모두 두 손을 쓴다. 사람의 마음에 닿는 일은 언제나 두 손의 온기로 해야 하니까. 이번에 찾아본 푸쉬킨의 시는 이렇게 끝난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훗날 소중해지리라."

오흥권 분당서울대병원 대장암센터 교수·'의과대학 인문학 수업' '타임 아웃'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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