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종묘 일대 재개발 계획에 ‘유산영향평가’ 요청…서울시 ‘미적’

박현정 기자 2025. 11. 1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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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오세훈 서울시장. 연합뉴스

유네스코가 지난 4월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인 ‘종묘~퇴계로’ 세운지구 재개발 계획 전체에 대해 종묘의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세계유산영향평가 시행을 요청했다. 종묘 맞은편 건물 높이를 최고 145m로 올려 논란이 된 세운 4구역뿐 아니라 지난해 변경·고시한 세운재정비촉진계획 전반에 대한 영향평가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서울시는 “영향평가 절차를 밟을 경우 장기 표류한 세운지구 사업이 지연될 우려가 있다”며 반년이 넘도록 시행 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가 서울시에 세계유산영향평가를 권고한 배경과 그간 논의 과정을 정리해 보았다.

“종묘에 악영향 우려 해소 필요”

16일 국가유산청 설명을 종합하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2023년 8월 서울시가 추진하는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 앞서 지역시민단체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200m 이상 건물을 허용하는 재개발 계획이 종묘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시는 박원순 전 시장 시절 수립한 세운재정비촉진계획(2014년)을 전면 수정해 종묘 맞은편 세운상가 등 오래된 상가 7곳을 철거하고 광화문 광장 3배 규모의 녹지 공간을 조성하는 대신 개발사업자가 짓는 건물 최고 높이를 90m에서 200m 이상으로 올리고 용적률 규제도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2014년에 고시한 계획을 보면, 세운지구의 최고 건물 높이는 90m였다.

서울시는 재개발 계획 변경 절차를 마무리할 무렵인 2024년 6월 유산청을 통해 해당 사업에 대한 보고서를 유네스코에 보냈다. 이후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자료를 검토해, 올해 4월 다시 세계유산영향 평가를 권고하는 공문을 유산청을 거쳐 전달한 상황이다. 유산청은 외교 관례에 따라 유네스코의 공문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이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부정적 영향에 미칠 우려가 있고, 이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선 완전하고 포괄적인 세계유산영향평가가 필수라는 방침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개발과 보존, 균형을 찾기 위한 과정

세계유산영향평가(HIA)는 주로 개발 사업이 세계유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점검해,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안을 찾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엔 원주민, 지역사회 및 각종 권리 보유자 등 직·간접적인 이해관계자들의 참여가 권고된다. 특히 2022년 유네스코 지침서에선 세계유산지구(유산구역 및 완충구역)뿐 아니라 그 너머의 주변 환경(wider setting)에 대한 영향평가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강동진 경성대학교 도시계획학과 교수(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는 “세계유산영향평가는 세계유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발 행위에 대해 개발과 보존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라며 “영향평가를 하면 사업이 지체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선 지역의 경제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산청에 따르면, 지난 1995년 종묘가 세계유산에 등재될 당시 이코모스 권고 사항엔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지역에서의 고층건물 건축 허가는 없을 것을 보장해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세운지구 재개발 계획 변경 과정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유산청은 2023년 11월 서울시가 계획 변경에 대한 협의를 요청하자 세운 4구역 높이 55m(종로변)·71.9m(청계천변) 초과 땐 문화재청 협의, 3·5·6 구역은 향후 세계유산영향평가 등 검토가 필요할 수 있다고 회신했다. 세운 4구역 변경 계획이 고시되기 전, 관계기관 협의 과정에서도 유산청은 높이를 변경하지 말 것을 요청했으나 서울시는 사업 여건 변화 등에 따라 높이·용적률 상향이 불가피하다며 이런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

앞서 서울시의회는 ‘서울특별시 문화재 보호 조례’를 개정(2023년 10월4일 시행)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서울시 국가지정문화재는 외곽 경계서 100m) 밖이더라도 건설공사가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면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가 해당 조례 의결이 무효라며 소송(최근 패소)을 내긴 했지만, 서울시의 재개발 행보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서울시는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을 통해 세운상가군을 철거해 공원 등 녹지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개발사업자가 녹지를 조성하는 대신 건물 용적률과 높이 제한을 완화해주는 방식이다. 서울시 자료

서울시, 밀어붙이고 정부는 소극 대응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영향평가를 권고하며, 언제까지 하라고 시일을 못박은 건 아니다. 그러나 상황이 긴급하다고 판단할 경우, 시한을 제시하기도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유네스코 영향평가 권고 자체를 세계유산협약 당사국이 수용하지 않은 사례는 찾기 어렵다. 더구나 2026년 7월 부산에서 열릴 예정인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국제회의를 앞두고 자칫 종묘 일대 재개발 문제가 국제적인 논란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크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 회의는 세계유산협약 가입국 대표단과 유네스코 사무총장 등이 참여하는 문화유산 관련 가장 큰 국제 행사다. 강동진 교수는 “지금으로선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은 뒤 재개발 진행이 국가적 위신을 세우는 유일한 길”이라고 짚었다.

한편, 유산청은 종묘 주위 19만4089.6㎡를 국내법에 따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하기로 한 데 이어 17일 허민 청장이 서울시에 세계유산영향평가 시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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