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금융사의 미공개 정보 이용 범죄들…과연 개인의 일탈일까
대통령은 “패가망신” 외쳤지만…처벌도, 감시도 제자리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로 구성된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은 10월28일 이아무개 NH투자증권 IB1부문 대표의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 대표는 NH투자증권이 주관한 11건의 공개매수 관련 정보를 지인에게 전달해 약 2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사건 직후 내부 통제 강화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리고, 11월4일 전 임원의 국내 상장주식 매매를 금지하는 등 내부 통제 강화에 나섰다. 그러나 공개매수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했던 NH투자증권을 향한 시장의 불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증권선물위원회가 이범진 전 메리츠화재 사장과 상무급 임원들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시세차익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은 2022년 11월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이 메리츠금융지주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된다는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주식을 대거 매입한 뒤, 호재성 정보인 합병 및 대규모 주주환원 정책이 발표된 후 매도해 약 5억원의 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사 임직원이 업무상 알게 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수억원대 부당이익을 챙기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주가조작을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겠다"며 강도 높은 처벌을 예고했지만, 금융권 내부에 뿌리내린 윤리 의식 해이와 비도덕적 행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3대 불공정거래(미공개 정보 이용, 주가조작, 부정거래)에 가담한 상장사 임직원은 총 41명이다. 이 가운데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부정거래가 60.2%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가벼운 처벌이 범죄 키워…기소율 30%대
불공정거래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약한 처벌 강도에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미공개 중요정보로 부당이득을 취하는 경우, 1년 이상 징역 또는 부당이득액의 4~6배 수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불공정거래 수법이 해마다 정교해지는 반면, 실제 법정 형량은 수사 장기화 등으로 인해 동력을 잃으면서 오히려 낮아지는 경우가 많다. 검찰에 따르면, 불공정거래 사건의 평균 기소율은 30%대로 전체 경제사범 기소율(42.6%)보다 낮은 수준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불공정거래 조사는 거래소 심리 → 금감원 및 금융위 조사 → 증선위 의결 → 검찰 수사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만 혐의를 특정할 수 있어 사건 파악 자체도 오래 걸리고, 실제 처벌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며 "사건이 장기화되면 증거인멸로 인해 처벌이 어려워지고, 여론의 관심도 역시 떨어져 형량이 낮아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2023년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부당이득의 2배에 달하는 과징금 징수를 제도화했지만, 정작 첫 과징금이 실제로 부과되기까지는 1년9개월이 소요됐다.
처벌 수위가 낮다 보니 불공정거래 재범률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1년 약 21.2%였던 불공정거래 재범률은 지난해 29.2%로 상승했다. 10명 중 3명꼴로 다시 불공정거래에 가담했다는 의미다. 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원 스트라이크 아웃'을 위해 법적 처벌 외에도 금융투자상품 거래 제한, 상장사 임원 선임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한다고 하지만, 해외와 비교하면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이라며 "미국·일본에서 불공정거래를 저지르는 경우 시장 참여가 영구 제한되는 경우도 있는데, 한국은 아직도 최대 5년에 불과하다. 금융 범죄에 대한 인식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방증"이라고 답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공정거래에 대한 처벌 수위가 과거보다는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과징금 등 제재에 비해 거래를 통해 얻는 이득이 더 크다고 판단하는 것"이라며 "임직원의 행위를 관리해야 하는 기업 역시 (내부 통제에 실패했을 때) 큰 제재를 받지 않으니 내부 기강이 해이해지는 등 감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직원 1인당 투자자 11만 명 감시하는 현실
감시 조직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를 최초로 포착하는 역할은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가 맡고 있다. 그런데 시장감시본부 직원 수는 120명으로, 직원 1인당 약 11만 명의 투자자(주식 투자 인구 1400만 명 기준)를 감시해야 한다. 감시 대상을 국내 상장사 임직원으로만 좁히더라도 직원 1인당 약 1만 명의 거래 동향을 들여다봐야 하는 셈이다. 금융위 소속 조사공무원과 금감원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을 합쳐도 관련 인력은 150여 명에 그친다. 결국 인력 부족으로 불공정거래 감시에 공백을 만들어 범죄를 부추기는 형국이 반복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주가조작 같은 불공정거래를 막기 위해선 감시 체계 전반에 대한 개편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거래소, 금감원, 금융위, 증선위, 검찰 등으로 나뉜 조사 권한을 일원화하고, 조사 주체에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현행 조사의 경우 금융위와 금감원이 각각 진행하고, 동일한 안건에 대해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 심의와 증선위 의결을 중복해 거치도록 하는데, 중복 조사로 시간만 지연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면서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 업무를 수행한 경험으로 신속한 조사가 가능한 금감원이 불공정거래 조사를 담당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집행부와 일본 증감위의 경우 업무부서별로 불공정거래 조사를 담당해 좀 더 효율적으로 조사를 전담하고 있다"며 "금감원은 조사에 집중하고, 금융위는 불공정거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 조사된 사건의 검찰 이첩 여부 등을 결정하고 과징금 부과를 전담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금감원에서도 소속 특별사법경찰관에게 인지수사권 및 강제조사권이 부여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현재 금감원 특사경은 서울남부지검 소속으로 분류돼 인지수사권이나 강제조사권이 없다. 이 때문에 혐의 인지 단계에서 조속한 수사가 어렵고, 현장 조사를 해도 강제권이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는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10월2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를 시정하는 데 있어 금감원만큼 효능감 있는 기관이 없다"며 "검찰 수사가 진행되더라도 금감원과 특사경 조사를 병행해 진행하는 등 특사경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금융위도 입장을 선회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에 과도하게 권한이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감원을 관할하는 금융위원회는 금감원이 민간 조직이니만큼, 인지수사권과 강제조사권을 부여하면 권한을 남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지난 9월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통해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격하하려고 시도했던 만큼 금감원이 수사 권한을 추가로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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