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기술보다 중요한 건 협력과 공감”

이우연 기자 2025. 11. 1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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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에듀테크 아시아 콘퍼런스’
파시 살버르그 멜버른대 교수가 지난 5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0회 에듀테크 아시아 콘퍼런스에서 2000년 이후 세계 각국의 교육 지표를 설명하고 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지난 25년 동안 우리는 시장이나 기업처럼 경쟁을 교육 시스템의 핵심 가치로 두고 운영하면 (교육이) 더 나아질 것이라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학생의 학업 성취, 형평성, 복지, 소속감 등 모든 지표가 하락했습니다. 지금 전 세계의 교육 현황을 보면 좋은 소식이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인공지능이 등장했습니다. 지금이 정말 좋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때일까요?”

지난 5일(현지시각)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0회 에듀테크 아시아(Edutech Asia)’에서 파시 살베르그 멜버른대 교수가 기조연설을 시작하자 장내가 조용해졌다. 그는 핀란드 교육부에서 20년간 일하며 핀란드의 공교육 모델을 만들고 정착시킨 교육학자다. 국내에서도 출간된 저서 ‘핀란드의 끝없는 도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발표는 레노버과 구글 등 테크 기업 관계자들이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맞춤형 고품질 학습을 제공하고 있다는 장밋빛 발표를 마친 직후에 시작됐다.

살베르그 교수는 이날 자신이 제시한 개념 ‘GERM(Global Educational Reform Movement·세계적 교육개혁운동)’을 소개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을 포함해 주요국의 학교 교육이 이 ‘세균’(germ) 같은 흐름에 감염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GERM 하에서 교육 시스템은 기업처럼 운영됐고, 교육의 목적은 ‘좁은 학문적 기술’로 축소돼 문해력·수리력과 약간의 과학을 가르치는 데 그쳤습니다. 시험 기반의 책임제가 도입되면서 학교와 교사가 시험 점수에 쫓기게 됐고, 교직은 더는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업이 아니게 됐습니다.”

그는 2000년대 이후 여러 나라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교육 지표의 세계적 추세를 제시했다. 학생의 학업 성취율은 2010년까지 반짝 상승했다가 이후 하락세를 보였다. 형평성과 창의성, 교직의 위상은 꾸준히 악화했다. 학생의 복지와 소속감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반면 상승한 지표는 학생 1인당 기술·기기 보유 수와 교육비 지출뿐이었다. 그는 “우리는 더 많은 기술을 갖게 됐지만 교육의 질은 높아지지 않았다”며 “유네스코는 많은 아이가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고, 세계은행은 우리가 전 세계적 학습 위기 속에 있다고 지적했다”고 했다.

학교는 불평등을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확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는 호주 학생들의 데이터를 예로 들며, 부유한 학생과 어려운 환경의 학생 사이의 학습 격차가 초등 3학년 때 2년 수준이던 것이 6년 뒤에는 5년까지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탁월함’에 집착해왔다. 이제는 형평성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실제로 성공적인 교육 시스템은 형평성을 우선시함으로써 오히려 탁월함을 이뤄냈다”고 주장했다.

살베르그 교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있다”며 핀란드와 같은 교육 선진국의 흐름을 짚었다. 핀란드는 표준화된 시험을 줄여 경쟁보다 협력을 중시하고, 기술적인 학문에 국한된 교육과정의 폭을 넓혀 풍부한 감정과 사회적 능력을 기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교수법을 확산하고 있으며, 교육과정에 학생의 의견을 포함해 학생을 ‘가르치는 대상’이 아닌 ‘학습의 공동 설계자’로 보는 접근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 사회의 교육 목표는 ‘예상치 못한 일에 대비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을 노동시장 진입을 위한 준비생으로 바라보는 지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스스로 대비할 힘을 길러줘야 합니다.”

영국의 교육사상가이자 국제적 교육 포럼인 ‘러닝 위드아웃 프런티어스’(Learning Without Frontiers)를 설립한 그레이엄 브라운 마틴 역시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것은 인공지능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은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지식의 민주화를 촉진할 잠재력 있다며 구글 딥마인드 과학자들이 인공지능으로 생물학의 난제였던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해결한 ‘알파폴드’ 사례를 들었다. “이들은 단백질 구조 데이터를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무료로 공개하며 지식의 민주화를 실현했습니다.”

브라운 마틴은 “지식이 개방된 시대의 교육은 결국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일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야 한다”고 했다. 기후변화, 탈진실과 극단적 분열의 양상 등 인류가 맞닥뜨린 위기 앞에서 교육의 최우선 목표는 ‘함께’라는 가치라고 강조하기도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코딩,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활용법을 가르치더라도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협력하지 못하며 돌보지 못하면 그 지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교육은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직업을 준비시키는 것뿐만이 아니라, ‘존재해야 할 세상’을 함께 만들어갈 인간을 길러내는 일”이라고 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싱가포르/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파시 살버르그 멜버른대 교수가 지난 6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0회 에듀테크 아시아 콘퍼런스에서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는 교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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