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재능이, 너의 혈통이…그토록 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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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나를 지켜줄 피가 없어. 할 수 있다면 지금 너의 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
배우 인생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공연을 앞두고 가부키 배우 기쿠오(요시자와 료)는 불안에 손이 떨려 분장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가부키 명문가에 들어가 견습생으로 살아온 기쿠오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혈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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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나를 지켜줄 피가 없어. 할 수 있다면 지금 너의 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
배우 인생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공연을 앞두고 가부키 배우 기쿠오(요시자와 료)는 불안에 손이 떨려 분장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가부키 명문가에 들어가 견습생으로 살아온 기쿠오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혈통이 없다. 반면 가문 당주(와타나베 겐)의 아들로 후계자가 예약된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는 기쿠오만큼의 재능이 없다. 자신에게 돌아올 줄 알았던 배역이 기쿠오에게 가자 낙심했지만, 슌스케는 상처를 애써 숨기며 마치 자신의 피를 나눠 주듯 하얗게 칠한 기쿠오의 얼굴에 붉은 눈화장을 직접 해준다. 슌스케는 기쿠오의 압도적인 연기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을 떠난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다.

20년 가까이 침체 일로에 있던 일본 실사 영화계에 벼락같은 흥행 열풍을 일으킨 ‘국보’가 19일 국내 개봉한다. 가부키라는 소재는 낯설지만 이상일이라는 감독의 한국식 이름 때문에 눈길이 가는 영화다. 3시간을 꽉 채운 상영 시간과 영화의 중요한 축인 가부키 공연 장면들이 한국 관객에게는 도전이 될 수 있지만,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가로지르는 이야기의 속도감과 예술가의 본질에 집요하게 다가가는 보편적 주제가 우려를 가볍게 날려버린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고,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일본 영화 대표로 출품된다.
‘국보’는 동갑내기로 함께 자란 기쿠오와 슌스케의 10대 시절부터 일생을 교차하면서 예술가의 재능이란 무엇인가, 최고가 되기 위해 예술가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이야기로 엮어간다. 재능과 혈통이 맞붙으며 두 인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겪는 좌절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질긴 악연을 그린 ‘아마데우스’를, 최고를 만들기 위해 자식까지 내치는 당주의 비정함, 최고가 되기 위해 우정·사랑 같은 삶의 중요한 의미들을 포기하며 “악마와 거래했다”는 기쿠오의 자조는 득음을 위해 자식의 눈을 멀게 하는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중국 전통 경극을 소재로 한 ‘패왕별희’에서 가면 같은 분장을 뚫고 나오는 절절한 슬픔을 연기했던 장궈룽(장국영)을 연상시키는 요시자와 료의 쓸쓸하고 아름다운 얼굴과 온나가타(가부키에서 여성 역할을 맡는 남성 배우) 연기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국보’는 요즘 일본인들에게는 보편적 관심사가 아닌 가부키라는 소재 때문에 투자를 구하는 데 애를 먹었고, 지난 6월 초 개봉 첫 주에는 별 관심을 못 받았다. 하지만 입소문으로 역주행을 하며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2003년 작 ‘춤추는 대수사선 2’가 가진 일본 실사 영화 최고 흥행수입 기록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 뉴스에서 보도할 정도로 신드롬급 흥행 가도를 달리면서 가부키에 대한 관심까지 높이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1993),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5) 이후 전통문화에 대한 이렇다 할 영화적 재해석의 시도가 거의 없었던 한국 영화계가 눈여겨봐야 할 이웃 나라의 성공 사례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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