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에 ‘빨간 펜’을?”… ‘합평’이라는 낯선 문화에 눈뜬 12명의 ‘창작자’들

우예주기자 2025. 11. 1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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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시인학교' 수강생들이 최소희 작가와 함께 출판기념회를 마무리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우예주 기자
'시니어 시인학교' 수강생 황정희씨가 "시인 학교에서 시를 접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며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강조하며 참여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우예주 기자
 
51년생 최고령자 유재철씨가 자신의 창작시 '은행나무 브라보'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우예주 기자
유재철씨가 즉석에서 제안한 졸업식 노래를 틀자 '시니어 시인학교' 수강생들이 같이 합창하며 화합의 장을 이뤘다. 사진=우예주 기자
최소희 작가가 이날 수료하는 수강생들을 위해 직접 준비한 꽃다발을 건네기에 앞서 출판기념회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우예주 기자
'시니어 시인학교' 수강생 김용규씨가 최소희 작가에게 꽃다발과 시집을 건네받으며 웃음짓고 있다. 사진=우예주 기자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의 정취가 무르익은 지난 13일, 아마추어 시니어 12명 시인들의 빛나는 시편들이 은행잎처럼 쏟아졌다. 이날 12명의 시니어 시인들은 자신들의 공동 시집 <오늘부터 영원히 봄> 출판기념회를 포항포은중앙도서관에서 열었다. 이들은 수강생이 아닌, 자신의 삶을 시로 빚어낸 '창작자' 그 자체였다.

지난 9월 18일부터 11월 13일까지 총 8회에 걸쳐 진행된 2025문화상주작가 지원사업 '시니어 시인학교'는 포은중앙도서관 최소희 상주작가가 직접 이끌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서는 최 작가가 60대에서 70대 12명의 시인에게 시집과 함께 축하의 꽃다발을 건네며, 곧이어 각자 창작한 시를 읊는 낭독의 시간도 가졌다.

51년생 최고령 참가자 유재철 씨가 자작시 '은행나무 브라보'를 낭독해 뭉클함을 더한 가운데, 이들은 '배우는 이'를 넘어 당당한 '저자'의 모습으로 지난 결실을 자축했다.

유재철 씨는 낭독 전 "모든 것은 시작인 것 같습니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봄'이 또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뭉클한 소감을 전하며, 즉석에서 휴대폰으로 '졸업식 노래'를 찾아 틀어 수강생들과 다 함께 부르는 화합의 장을 연출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시니어 시인학교'는 기존의 프로그램과는 다른 특별한 점이 있었다. 바로 포항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전문가 합평' 방식을 썼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강의에 익숙한 어르신 세대에게, 서로의 시를 날카롭게 비평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문화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소희 작가는 책상을 원탁으로 만들어 수강생 모두가 둘러앉아 '빨간 펜'을 들고 토론하는 방식을 밀어붙였다.

이 '낯선' 피드백 문화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누군가 내 시를 진지하게 읽고, 더 나은 문장을 위해 같이 고민해준다는 경험이 이들의 창작 욕구에 불을 붙인 것이다. "대학 과제처럼 숙제 경쟁이 붙었다"는 후문처럼, '합평'은 이들의 자존감을 세우고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초고령사회' 포항, 15만 4천 명이나 되는 60세 이상 시민들이 단순한 여가를 넘어 '지적 성취'와 '창작의 기쁨'에 얼마나 목말라 있었는지, 이번 프로그램이 확실하게 증명한 셈이다.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시니어 세대의 가슴 속에 잠자고 있던 '창작의 불씨'를 다시 지펴줄 따뜻한 무대일지 모른다. '일상의 모든 것이 시'가 되고, '시가 비타민'이 됐다는 이들의 빛나는 고백처럼, 시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 창작을 통해 '살아있음'을 온 몸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 포항의 늦가을을 뜨겁게 달군 이 '봄날의 교실'이 더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한편, 이들 '시니어 시인학교' 수강생들이 창작한 빛나는 시편들은 본지 홈페이지 '시를 여는 아침'에서 감상할 수 있다.
최소희 작가가 창작 시 낭독이 마무리된 이후 '시니어 시인학교' 수료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우예주 기자

'포항의 '창작 불씨', 이제 시작이다

'시니어 시인학교' 진행 최소희 상주작가 인터뷰

▲포항에 시니어 문화 프로그램 중에서 필사나 서예는 있지만, 진짜 '창작'을 하는 작가가 돼보는 프로그램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어떻게 개설하게 됐나?

"포항에도 낭송이나 필사 프로그램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시니어'라는 이유로 수강생들의 수준을 낮게 보거나, 단순 여가 활동으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집을 이미 낸' 분조차 이런 '전문 합평' 수업은 처음이라고 하실 정도였다. 포항 구석구석에도 창작의 혼이 뜨거운 분들이 많은데, 이걸 배우러 대구나 서울까지 가긴 힘들지 않나. 그 불씨를 '동료 작가'가 돼 함께 지피고, '창작'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합평'이라는 문화가 낯선 세대이며, 피드백 또는 지적 당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일 수 있다. 다들 낯설었을 텐데, 현장의 반응은 어땠나?

"말씀하신 대로다. 처음엔 '종이 아깝게 왜 인쇄하냐'며 낯설어하셨다. (웃음) 아무래도 '합평'이나 '피드백' 문화에 익숙한 세대가 아니시기 때문이다. '지적' 당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원탁'에 둘러앉아 '모두가 선생님'이 돼 토론하기 시작하자, 오히려 '내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 진지하게 들어주는' 기회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셨다. '늙어간다'는 한탄으로 시작했던 시가, '지금이 봄날'이라는 고백으로 바뀌는 걸 보면서, 이분들이 원한 것은 '대접'이 아니라 '진지한 소통'이었음을 깨달았다."

▲시에 대한 강의가 아니라 '전문 합평' 방식을 쓴 이유가 궁금하다. 어떻게 프로그램에 적용하게 됐나?

"시(詩)는 정답이 없는 장르다. 내가 강사로서 '강의'를 하면 그게 정답처럼 굳어질 수 있다. 하지만 '합평'은 다르다. 내가 '은행잎'이라고 제안해도, 다른 분이 '낙엽'을 제안할 수 있고, 최종 결정은 시를 쓴 본인이 한다. 이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방적 '강의'가 아닌,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을 두고 함께 고민하는 '치열함'이었다. 내가 30년간 '니은(ㄴ)'자 하나를 붙일까 말까 고민했던 그 노하우를 이분들에게 쏟아붓고 싶었고, 다행히 이 '진심'이 통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최소희 작가는 "물론 에어로빅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그만큼이나 정적으로 앉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창작의 욕구'를 불태우고 싶은 시니어 세대도 분명히 있다"며 "이런 프로그램이 어르신들의 '자존감'을 세우고, 나아가 포항의 문화적 '품격'을 높이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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