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대만 발언’ 후폭풍…중 ‘한일령’ 시작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자위대 출동 가능성’을 공식 거론한 것과 관련해 중국 쪽이 반발하면서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강경 보수 지지층을 고려한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적 발언에 맞서 중국 정부가 중국인 관광객 등 일본과 교류를 제한하는 ‘한일령’으로 사실상 보복조처를 시작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16일 “중국 외교부가 지난 14일 호소문을 내어 ‘일본 정치 지도자가 대만과 관련해 노골적으로 도발적 발언을 했다고 지적하며 중국 국민들에게 당분간 일본 여행 자체를 촉구했다”며 “이번 사태가 경제나 관광 교류 감소 등 실질적 영향으로 번질 수 있는 단계로 발전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는 “중·일간 인적 교류 분위기가 현저히 악화됐으며, 중국인의 신체·생명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발생했다”는 입장과 함께 자국민의 일본 여행에 대한 사실상 통제를 나섰다. 중국 국적기를 포함한 6곳 항공사가 자국민이 이미 구매한 일본행 항공권을 취소·변경할 경우, 수수료를 면제해 준다는 방침을 공지하며 정부 방침에 말을 맞추고 있다. 12월31일까지 항공권이 일단 무료 환불 대상이 됐다. 중국 정부는 일본 치안이 불안하고 중국인을 겨냥한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고도 지적했지만,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앞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7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 관련 질문에 “무력 공격이 일어나면 (일본의) ‘존립위기 사태’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이 군함을 동원한 무력행사를 수반하면 어떻게 보더라도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라고 말했다. ‘존립위기 사태’는 주변국 사태 등으로 일본 영토·국민에 큰 위협이 있을 경우, 일본이 직접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집단적 자위권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을 뜻한다.
이후 중국에선 쉐젠 주오사카 총영사가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멋대로 쳐들어온 그 더러운 목을 벨 수 밖에 없다. 각오는 되어 있는가”라는 극언을 적어 다카이치 총리를 겨냥했다. 그는 “대만 유사시가 일본의 유사 상황’이라는 것은 일부 머리 나쁜 정치꾼들이 선택하려는 죽음의 길”, “부디 최소한의 이성과 법 존중 정신을 회복해 패전과 같은 민족적 멸망을 겪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에서는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이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극히 유감”이라며 중국에 강하게 항의했지만 중국 정부는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대만해협 문제에 무력 개입 가능성을 암시한 것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정치적 약속에 심각하게 어긋난다”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어 린젠 중국 대변인은 지난 13일 브리핑에서 “대만 문제에 불장난해서는 안 되며, 스스로 불에 타 죽을 수 있다”고 했고, 같은 날 가나스기 겐지 주중 일본대사가 초치되기도 했다.
기하라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 15일 “일·중 정상간 확인한 전략적 호혜 관계 추진과 건설적 안정적 관계 구축이라는 방향성과 맞지 않는다”며 ‘적절한 대응'을 요구했다. 또 외무성 차원에서도 중국 정부의 ‘일본 여행 자제’ 조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지만 중국 정부가 요지부동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이미 ‘대만 유사시는 일본 존립위기 사태’라는 발언을 내뱉은 만큼, 중국의 반발에 태도를 굽힐 경우 갓 출범한 정부의 ‘유약함’으로 비춰질 것을 염려해 진퇴양난 처지에 놓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은 다카이치 총리 발언으로 대중 외교 뿐 아니라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분야에 뜬금없는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특히 관광 분야는 중국 정부의 ‘방일 자제’ 방침으로 실질적 타격이 예고됐다.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올해 1∼9월 일본을 찾은 중국인은 748만명에 이른다. 국가·지역별로 가장 많은 인원이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관광객 차단으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중국에선 일본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갈등이 있었던 지난 2012년 극심한 반일 분위기와 함께 정부 차원의 경제 보복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2012년 대중국 수출액이 전년대비 10% 넘게 줄어드는 등 경제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일본 언론들은 2016년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뒤 중국 정부가 지금까지 ‘한한령’을 해제하지 않은 점 등을 거론하며 일본에서도 자칫 비슷한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다카이치 총리 발언 이후 중·일이 “경제를 중심으로 개선 기조를 보이던 상황이 대립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며 “중국의 일본 여행 자제 촉구 등 실물 경제에도 파급되기 시작했으며 어떤 타협점을 찾아낼지가 다카이치 정부의 외교 시험대가 되게 됐다”고 짚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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