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프에 '비움의 미학'이 존재하는가?

방민준 2025. 11. 1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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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용과 관련 없는 참고 사진입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골프한국] 그의 방은 오랫동안 '집착의 미학'이었다. 반짝이는 상패는 그의 정진을 증명했고, 진귀한 골프 볼들은 그의 열정을 말해주었다. 술장 속에는 지난 라운드의 추억이 숙성되어 있었고 벽에 걸린 모자 하나하나가 바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방은 시간의 미술관이자 그의 삶을 조각한 성소였다.



 



그가 처음 라운드에 나가던 날의 볼, 첫 버디와 싱글 스코어, 언더파를 기록한 스코어카드들, 뜻밖의 홀인원으로 받은 상패, 그리고 땀에 젖은 모자들. 그것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그가 지나온 시간의 결정체들이었다. 그는 그 안에서 인생의 굴곡과 희열을 함께 느꼈고 골프는 어느새 그의 또 다른 자아가 되었다. 



 



그런데 최근 그는 그 방을 비우기 시작했다. 오래 아껴온 위스키도, 사랑하던 드라이버도, 추억이 밴 골프볼, 수많은 상패 등 골프의 흔적들을 하나둘 떠나보낸다. 마치 한 화가가 완성된 그림 앞에서 붓을 내려놓듯. 



 



사람들은 그에게 묻는다. "이제 골프를 그만두려는 건가요?"



그러나 정작 그는 담담히 웃을 뿐이다.



 



아마 그것은 이별이라기보다 초월에 가까운 행위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온 예술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물러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정리나 은퇴가 아니다. 그의 행위는 비움의 예술, 곧 선의 실천이다.



 



그가 방을 비우는 것은 사라짐이 아니라, 본래 있던 텅 빈 충만함으로 되돌아가는 길이다. 그는 이제 소유의 기쁨 대신 '무소유의 자유'를 배우고 있다. 그것은 또 다른 깨달음의 걸음이다.



 



한때 그는 골프라는 무대에서 완벽을 추구했다. 스윙의 각도, 임팩트의 타이밍, 바람의 세기와 마음의 떨림까지 통제하려 애썼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는 깨달았다. '완벽한 스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윙은 바람과 같다. 잡으려 하면 흩어지고, 흩날림 속에 몸을 맡길 때 비로소 모양이 생긴다.



그는 지금 그 무형의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비움이란, 사실 다른 형태의 창조다. 캔버스에서 여백은 결핍이 아니라 숨이다. 음악에서 쉼표는 멈춤이 아니라 울림의 전조다. 그가 방을 비우는 것은 인생의 여백을 다시 그리기 위함이다.



 



그 빈 공간 안에서 그는 이전보다 더 깊은 울림의 '소리 없는 골프'를 연주한다. 그가 떠나보내는 것은 추억이 아니라 향기다. 그 향기는 남은 이들의 마음속에 은근히 번져 그를 기억하는 모든 순간마다 미소로 피어날 것이다.



 



이제야 그는 알 것이다. 골프는 클럽과 공의 게임이 아니라,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었다는 것을. 그는 그 거울 속에서 젊은 날의 욕망을 보고, 성취의 기쁨을 보고, 이제는 무심한 평화를 본다.



 



그는 더 이상 골프를 '한다'기보다 골프 그 자체가 되어 있다. 그의 마지막 라운드는 아마도 이 세상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그의 마음은 완전히 맑아 바람과 하나가 될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스윙을 멈추고도 스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도달하는 마지막 경지이자 선이 가리키는 무심의 자유다.



 



그의 방은 비어 있지만, 그 빈방 안에는 한 인간이 평생 쌓아 올린 열정과 깨달음의 향기가 남아 있다. 그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순수한 형태의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그의 비움은 끝이 아니라, 예술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문득 깨닫는다. 쌓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가 있다는 것을. 그는 지금 그 공허를 응시하고 있다. 그래서 비우기 시작한 것이다.



 



골프는 본디 집착의 예술이다. 한 타의 오차, 한 순간의 흔들림이 스코어를 결정한다. 하지만 진정한 골퍼는 결국 깨닫는다. 스코어는 종이 위의 숫자일 뿐, 진짜 골프는 마음 안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그가 상패를 내려놓고 추억을 나누는 이유는 바로 그 깨달음의 징표다.



 



이제 그는 '치지 않아도 골프를 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도(道)는 흔히 버림에서 시작된다. 선사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불경을 버렸고 불상마저 태웠다. 시인들은 언어를 버리고 침묵을 택했다.



 



그의 비움 또한 그러하다. 그는 물질의 방을 비우면서 마음의 방을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빈 공간 안에서 아마 그는 더 맑고 고요한 스윙의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이별이란 어쩌면 다른 이름의 충만이다.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순간, 비로소 그것이 우리 안에 완전하게 머문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가 나눈 술잔 속에는 세월의 향이 녹아 있다. 그가 건넨 골프 볼에는 수천 번의 호흡과 기다림이 담겨 있다. 그는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무게를 덜어내며 자유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그의 방이 완전히 비워지는 날, 그는 아마도 다시 골프채를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의 스윙은 이전과 다를 것이다.



숫자와 욕심을 넘어, 바람과 하나 되는 '무심의 골프'. 그것이 바로 그가 준비하는 마지막 라운드이자 또 다른 깨달음일지도 모른다.



 



(최근 자신의 모든 것이 담긴 골프방을 정리한 지인의 마음을 담아 이 칼럼을 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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