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하나, 여자 둘이 함께 떠난 우정 여행…장난 편지 한장에 바뀐 결말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5. 11. 16.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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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169] 영화 ‘연애소설’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말로 전했다면 뻔하게 느껴질 이야기를 들을 만하게 바꿔주는 도구다.

이를테면 남의 돈에 손을 대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말로 하면 어린아이 훈계하는 소리가 될 뿐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우연히 발견한 돈 가방을 챙겼다가 자신을 지옥까지 쫓아오는 악당을 만나 고생하는 스토리가 영상으로 바뀌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돼 관객에게 머리가 띵 해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빈부격차는 가난한 사람뿐 아니라 부자도 관심 갖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얘기하면 공자님 말씀이라고 외면받을 것이다. 하지만 한 빈곤층 가족이 부잣집에 위장취업을 했다가 생기는 해프닝을 담아 이를 영화 ‘기생충’으로 찍으면 세계인이 귀 기울일 만한 메시지가 된다.

지환(차태현)은 수인(손예진)에게 고백한 뒤 거절당하지만, 친구가 된다. 수인의 단짝 경희(이은주)까지 포함해 셋은 어디든 함께 다니는 사이가 된다. [코리아픽쳐스]
이한 감독의 ‘연애소설’(2002)도 영화라는 틀을 통해 들을 만한 얘기를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남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영화 속 남자의 후회를 들여다보면서 관객은 자신도 같은 실수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첫눈에 반한 여자에게 고백했다 친구가 됐다…우정, 유지될까
이야기는 지환(차태현)이 수인(손예진)에게 첫눈에 반한 뒤 고백하면서 시작된다. 단짝 경희(이은주)와 함께 있던 수인은 지환에게 단번에 불편해하는 표정을 드러내며 거절하지만, 지환의 용기로 세 사람은 친구가 된다. 온전히 우정으로만 엮인 남자 한 명, 여자 둘의 사이가 언제까지 지속 가능한지가 영화의 첫 번째 관람 포인트다.
경희와 수인은 친구로서 지환이 보여주는 진중한 매력에 마음을 사로잡힌다 [코리아픽쳐스]
그저 우정으로만 이어진다면 애초 ‘연애소설’이라는 제목이 안 붙었을 것이다. 지환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인이 아닌 경희를 향한 애정을 키워가게 되고, 그건 경희 또한 마찬가지다. 수인 역시 두 사람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남몰래 응원하고, 세 사람은 우정 여행을 떠나게 된다. 선한 의지만 있다면 인간관계는 순조롭게 풀린다는 순수한 믿음으로 가득한 영화로 보인다. 적어도 여기까진 말이다.
“우리 다시 만나면 친구 하는 거야” 지환은 수인에게 무리한 고백을 한 후 시계를 들고 사과한다. 자신이 시곗바늘을 되돌려 둘 테니, 없었던 일로 하고 친구가 되자는 제안이다. 다소 유치해 보일 수도 있는 이와 같은 장면들이 이 영화에 개성을 부여한다. 그건 인간의 순수한 마음에 대한 신뢰다. [코리아픽쳐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친 대가
관계의 균열은 지환이 친 장난 때문에 발생한다. 지환은 경희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네며 수인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그 편지 안에 담긴 내용은 다름 아닌 경희를 향한 사랑 고백이다. 자신은 경희를 좋아하고 있으니 좀 도와달라는 얘기다. 심지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도 담긴다. “김경희, 너 지금 이거 보고 있지? 너도 나 좋아하지?” 장난꾸러기인 경희가 자신의 편지를 몰래 뜯어보리라고 확신한 것이다.
경희는 장난꾸러기로 나온다. 지환은 경희의 장난기를 이용한 고백을 계획한다. 그녀의 성격에 일관성이 있으리라고 본 것이다. [코리아픽쳐스]
그러나 사람은 우리 기대와 다르게 그다지 일관적인 존재가 아니다. 늘 장난을 치던 경희가 하필이면 그 순간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문제가 생긴다.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경희의 성향을 고려하면 편지를 몰래 읽어보는 장난은 백번을 치고도 남았겠지만, 그 편지를 몰래 뜯어보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경희는 지환의 편지를 찢어버린다.
늘 해맑은 사람이라고 해서 해맑은 부분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조차 100%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남의 성향을 완전히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코리아픽쳐스]
결국 경희를 향한 지환의 마음은 단 한 번도 전해지지 않은 채 공중으로 흩어진다. 오랜 시간이 지나 병환으로 죽게 된 경희가 남긴 편지를 통해 지환은 자기 고백이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미 경희는 세상을 떠나고 없다. 아무리 후회해도 그 마음은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지환이 친 장난은 아주 사소했지만, 결국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긴 셈이다.
언제 어디서든 함께일 것만 같았던 세 사람의 동행은 순식간에 종료된다. [코리아픽쳐스]
이 영화가 말하는 건 단순하다. 사람의 마음을 두고 장난을 치는 건 너무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사소한 장난이라고 할지라도, 누군가의 자존심을 건드리게 되면 애초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사건의 전말을 안 순간, 지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고 싶었겠지만 이제는 소용이 없다. 수신인을 잃은 사과의 말만 허공을 맴돌 뿐이다.
연애소설 포스터 [코리아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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