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 결혼해 유복자 두고 떠난 클라크 게이블, 묘소는 3번째 아내 옆에

이한수 기자 2025. 11. 1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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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1960년 11월 16일 59세
클라크 게이블

할리우드 스타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1901~1960)은 과거 ‘케이블’로 자주 표기했다. ‘케이블’ 표기가 잘 알려져 있어 때로는 오기(誤記)인 줄 알고도 썼다.

“클라크 게이블은 클라크 케이블이라야 세어 보이고 장 갸방은 장 캬방이라야 멋이 있어 보이며 크레타 가르보는 크레타 카르보라야 직성이 풀리는 것과 마찬가지…”(1973년 6월 29일 자 1면)

1960년 11월 별세 소식을 전한 기사도 ‘케이블’이었다.

“헐리우드의 스타 크라크 케이블은 16일 밤 59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병원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한 그의 임종의 자리에는 ‘케이’ 부인이 있었다. ‘케이’ 부인은 케이블의 다섯 번째 결혼 생활에서 처음으로 얻은 어린아이를 잉태 중에 있다.”(1960년 11월 18일 자 3면)

클라크 게이블 어떤 배우? 1960년 11월 18일자.

클라크 게이블은 59년 생애 동안 부음 기사 언급처럼 다섯 번 결혼했다. 아이 출산을 4개월 앞두고 있었다. 1960년 11월 20일 자 조선일보 미니 칼럼 ‘만물상’은 클라크 게이블의 결혼 상황을 자세히 썼다.

“성림(聖林·할리우드)의 왕자(王者) 클라크 케이블이 장남(녀)의 출생을 사 개월 앞두고 심장마비로 60세를 일기로 지난 16일 장서(長逝)하였다. (중략) 결혼을 많이 한 것으로도 왕자적 관록이 충분하다. 초혼은 브로드웨이의 수년 연장(年長)의 여우(女優), 재혼은 11년 연장인 텍사스주 출신의 부자 과부, 삼혼은 윌리암 파우웰의 전처, 사혼은 다그라스 훼어뱅크스의 과부 그리고 오혼은 사탕왕(砂糖王)의 사자(嗣子) 아돌프 스프렉클스 2세의 전처와 5년 전에 결혼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말이다.”(1960년 11월 20일 자 1면)

세 번째 아내인 인기 코미디 배우 캐럴 롬바드와는 공개 불륜 관계로 시작했다. 1939년 3월 두 번째 아내에게 이혼 승낙을 받고 바로 그달에 결혼했다. 세 번째 결혼 생활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끝이 났다. 롬바드는 33세 때인 1942년 1월 비행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떴다.

클라크 게이블, 비비안 리 주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포스터.

클라크 게이블은 이후 7년간 독신으로 살았다. 앞서 두 번 이혼 때 곧바로 재혼한 것과는 달리 네 번째 결혼할 때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게이블은 아내가 사망한 후 비탄에 잠겨 술로 생활했다. 미 육군 항공대에 입대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소령으로 전역했다. 비행기를 몰며 세 번째 아내가 추락한 곳에서 아내의 스카프를 찾아냈다. 게이블은 자신이 죽을 때 스카프를 같이 묻어달라고 했다.

소원은 이뤄졌다. 클라크 게이블은 소중히 간직했던 스카프와 함께 캘리포니아 글렌데일 포레스트 론 묘지의 세 번째 아내 묘 옆에 묻혔다.

게이블은 1930년대 할리우드 미남 배우로 인기를 얻었다. 1934년 영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후 ‘남자의 세계’ ‘바운티호의 반란’이 잇달아 흥행했다. 1939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비안 리와 키스 장면은 영화 사상 최고의 키스신 1위에 자주 올랐다. 영화에서 비비안 리가 떠나려는 클라크 게이블에게 “나는 어쩌란 말이에요(What shall I do)?”라고 묻자 “솔직히, 내 알 바 아니오(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라고 한 대답은 명대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수많은 여성 팬이 게이블에게 열광했다. 여러 여배우와도 숱한 염문을 뿌렸다. 팬의 결혼 요청을 정중히 거절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그러한 대배우도 배역 중의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 하면 5000통의 결혼 신청서를 우편으로 받고 공손하게 거절하는 일이었다 한다. 혹시 부러워할 사람도 있겠지만 잘 생각하여 보면 땀이 흐를 노릇이다. 이만하면 어지간한 사람은 머리가 돌 것이다.”(1960년 11월 20일 자 1면)

영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

1960년 촬영한 아서 밀러 원작 영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은 유작이 되었다. 주연인 메릴린 먼로도 1962년 8월 사망하면서 이 영화가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영화에서 먼로와 함께 차를 타고 이야기하는 마지막 장면은 클라크 게이블이 사망하기 열흘 전에 찍었다.

유복자이자 유일한 아들 존 클라크 게이블은 아버지 뒤를 이어 배우로 활동했다. 배우 주디스 루이스는 훗날 게이블이 배우 로레타 영과 사이에서 낳은 혼외딸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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