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내려도 삶은 계속되니까… 연극배우 이야기 쓴 위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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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 마지막 공연이 끝난 후 뒤풀이 자리.
여주인공 '메리' 역을 맡은 '기옥'은 스캔들과 프로포폴 이슈로 배우 삶이 끝날 위기에 놓였으나 이번 무대로 재기를 꿈꾼다.
소설 속 중년의 배우 기옥은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태인 역시 배우로는 승승장구하지만 자신만의 고통을 가슴에 품고 산다.
소설 속 배우들이 연기하는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는 음울하고 비관적인 작가로 꼽히는 오닐의 비참했던 가족사가 담긴 자전적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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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정 소설 'fin'

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 마지막 공연이 끝난 후 뒤풀이 자리. 여주인공 '메리' 역을 맡은 '기옥'은 스캔들과 프로포폴 이슈로 배우 삶이 끝날 위기에 놓였으나 이번 무대로 재기를 꿈꾼다. 전회 매진으로 막을 내린 터라 술자리 분위기는 한껏 달아오른다. 남주인공 '제임스'를 연기한 톱배우 '태인'도 술이 오른다. 평소에는 점잖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돌변해 암암리 기피 대상이 된 인물. 이날도 태인은 예외 없이 난동을 부리고, 매니저 '상호'에게 끌려 나간다. 다음 날, 태인이 간밤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위수정 작가의 소설 'fin'은 이렇게 서막을 올린다. 두 번째 소설집 '우리에게 없는 밤'으로 지난해 제57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펴낸 신작. 위 작가가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한 번은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배우 이야기다. 위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도 삶의 전성기가 있고, 그 시기를 지나면 소위 '현타'를 맞게 되듯 배우는 그게 더 심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썼다"고 했다.
소설 속 중년의 배우 기옥은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태인 역시 배우로는 승승장구하지만 자신만의 고통을 가슴에 품고 산다. "무대에 서지 않는 우리도 삶이 연극 같다고 여겨질 때가 있는데 정말 무대에 서는 인물들은 그런 걸 더 깊게 느끼지 않을까. 어떻게 견딜까, 하는 궁금증을 풀어보고 싶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매니저들은 이야기의 다른 축이다. 어린 시절 배우를 꿈꿨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서른 살이 넘어 태인의 매니저가 된 상호와 10년 넘게 기옥의 차를 모는 매니저 '윤주'. 사고 난 차를 운전했던 상호는 이 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고, 윤주는 불안에 잠긴 기옥을 곁에서 챙긴다. 상호와 윤주의 마음속엔 태인과 기옥에 대한 동경과 질투, 분노와 연민이 뒤얽혀 있다.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을 위 작가는 포착해 낸다. 프랑스어로 '끝'을 뜻하는 'fin'은 결국 인생에 대한 이야기. 위 작가는 "하나의 극이 끝난다고 해서 모든 게 막이 내리는 것은 아니다"라며 "암전이 의미 있는 이유는 조명이 다시 밝아지기 때문"이라고 제목을 설명했다.
fin은 끝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예고한다. "영원한 암전은 소설에서 말한 것처럼 종말이나 죽음일 텐데 소설은 설령 영원한 암전에 대해 이야기할지라도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위 작가는 "삶에 죽음이 포함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어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시도하게 되는 것 같다"며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인과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소설 속 배우들이 연기하는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는 음울하고 비관적인 작가로 꼽히는 오닐의 비참했던 가족사가 담긴 자전적 작품이다. 위 작가는 "그 특유의 비극성, 정말 희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서 어찌할 바 모르는 인물들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쉽게 잊을 수 없었다"며 "제가 설정한 소설 속 세계와도 닮아 있다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초고를 쓸 때 "너무 괴로워 왜 나는 이런 암울한 이야기만 쓰고 있는가 자괴감에 시달렸다"고도 털어놨다.
내년 장편소설 출간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어떤 사람들 이야기를 써볼까' 그런 작은 단초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fin'은 '현대문학 핀 소설 시리즈' 56번째 책이다. 월간 '현대문학'이 분기마다 뚝심 있게 출간하는 소설선이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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