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오랑세오녀’ 일식의 기억, 신화가 되다

곽성일 기자 2025. 11. 1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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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대동야승 비교해 본 빛의 상실과 회복의 태양신화
세오녀 비단·암석 신앙·문명 교류까지 드러난 포항의 고대 서사
▲ 조현설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가 지난 12일 포항문화재단에서 연오랑과 세오녀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해가 사라진 날, 신화가 태어났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연오랑세오녀' 이야기는 짧지만 그 안에는 천문 현상, 제의 의식, 문명 교류, 여신 전승이 복합적으로 교차한다. 해와 달이 어두워진 그 날의 기록은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신라인이 하늘의 질서를 이해한 방식이자 태양의 신화를 만들어낸 기억이다.

△해와 달이 어두워진 날 -일식의 기록으로 본 신화의 기원

삼국유사 '연오랑 세오녀' 조는 신라 제8대 아달라왕 때의 일로 "동해의 바닷가에 사는 부부가 일본으로 건너가자 해와 달이 어두워졌다"고 전한다. 왕이 제사를 지내자 빛이 돌아왔고 그 제단을 '영일(迎日)', 산을 '기도야(祈日)'라 불렀다고 기록돼 있다. 학계는 이 '일월무광(日月無光)'을 일식(日蝕) 현상의 반영으로 본다.

중국 '후한서(後漢書)'에는 기원후 173년, "일식으로 햇빛이 3분의 1 가려졌다 (光奪三分之一)" 는 천문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아달라왕 재위 후반과 일치한다. 당시 일식은 하늘의 이상으로 여겨져 국가 제의가 열렸고 삼국유사의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자 빛이 돌아왔다" 는 대목은 실제 제의의 기억이 신화화된 것으로 해석된다.

△'대동야승'에 남은 세오 전승 - 암석 신앙의 흔적

조선 후기 야담집 '대동야승'권1에는 '삼국유사'보다 앞선 형태의 '세오' 전승이 전해진다. 이 기록에서 연오랑은 "물 위에 뜨는 돌배(石舟)"를 타고 일본으로 향한다. 이는 고대 동해안에 널리 퍼진 암석 신앙 '바위를 신체이자 신좌(神座)로 보는 사상'의 반영이다.

'돌이 바다를 건넜다' 는 서술은 바위가 신의 이동 수단으로 여겨졌던 신앙의 상징이며, 신라인의 해신제·암석 제단 문화와 맞닿아 있다.

▲ 연오랑세오녀상

△세오녀와 비단 -문명 전파의 상징

세오녀가 일본에 머물며 보낸 '비단'은 단순한 제물이 아니라 신라의 양잠기술(養蠶技術)을 상징한다 당시 비단은 동아시아 문명의 최고 수준 기술이었고 '비단으로 제사를 지냈다' 는 구절은 신라가 일본에 전한 문화적 교류의 은유로 읽힌다. 따라서 이 신화는 천문과 제의뿐 아니라 기술과 문명 전파의 서사이기도 하다.

△북방 여신 전승과 세오녀의 무녀적 성격

'세오(細烏)'라는 이름은 동북아 창세 여신 전승의 '압카', '허허' 등과 유사한 어원을 갖는다. 이들은 하늘과 인간을 잇는 여성 신성(神性)으로, 빛과 생명을 다스리는 존재로 여겨졌다.

세오녀 역시 신라에서 '빛을 잃은 세계'와 '해의 회복'을 매개하는 인물로 등장하며 태양신을 섬기는 무녀적 상징으로 해석된다. 즉 그녀는 단순한 인간 부인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전달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한 존재였다.

△빛의 회복, 신화의 탄생

'연오랑세오녀'는 태양신화이자 제의 기록이며 문명교류와 여신 전승이 한 서사 안에 공존하는 복합 신화다. 그 핵심은 '빛의 상실과 회복', 즉 하늘의 질서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순간에 있다.

당시 신라인들에게 하늘의 어둠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가 흔들린 징조였다. 그날의 어둠이 세대를 넘어 이야기로 전승됐고 이야기는 다시 포항 일대의 정체성과 신앙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연오랑세오녀'는 단지 전설이 아니라 하늘의 변화와 인간의 기억이 만들어낸 천문학적·문화적 신화로 남아 있다. 빛이 사라졌던 그 날의 기억이 곧, 신화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