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5억 원 '핫플' 런던 베이글 뮤지엄 뒤에 숨겨진 26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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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런던 베이글 뮤지엄(런베뮤)이란 이름은 어쩌면 아이러니 투성이다. '런던'은 베이글의 본고장이 아니다. 베이글은 뉴욕 유대인들의 음식이다. '뮤지엄(박물관)'은 빵을 파는 곳이 아니다. 브랜드 창업자인 료(본명 이효정) 대표는 이 이름들이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단어들의 조합이라고 설명했지만, 시장은 그것을 '감성'으로 읽었다. 논리보다 분위기, 실체보다 이미지였다. 그리고 이 전략은 완벽하게 먹혔다.

2021년 서울 안국동에 문을 연 런베뮤는 이국적인 이미지를 앞세워 대한민국 '핫플레이스' 지형을 바꿨다. '오픈런 명소'이자 '핫플 성지'로 떠올랐고, 창업 4년 만인 2024년 79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창업자 이효정 대표는 '청년 창업가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2025년 7월, 화려한 이미지의 조합은 가장 비극적인 현실과 충돌했다. 이 성공 신화의 현장을 지탱하던 26세 청년 정효원 씨가 입사 14개월 만에 회사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겉보기엔 그럴싸하지만 아무런 논리적 연결이 없던 이름처럼, 이 기업의 화려한 성공과 그 이면의 노동 현실은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자정 직전, 한 줄의 메시지
"오늘 밥 못 먹으러 가서 계속 일하는 중." 메시지 전송 시각은 밤 11시 52분. 정 씨가 연인에게 보낸 대화였다. 그날 아침 9시부터 시작된 근무는 15시간째 이어지고 있었다. 끼니는 커녕 제대로 앉을 시간도 없었다. 주 80시간. 일주일의 절반을 일터에서 보내는 삶이 한 달 넘게 계속됐다.
15시간 후인 다음날 아침 8시 20분. 인천 미추홀구 회사 숙소에서 동료들이 그를 발견했다. 이미 차갑게 식은 상태였다. 키 180cm, 몸무게 78kg의 건장한 청년. 농구와 헬스로 다져진 체력을 가진 20대가 갑자기,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면접 때 찍은 사진이 영정사진이 됐습니다." 빈소에서 아버지가 남긴 이 한 마디에, 모든 비극이 압축돼 있었다.
기록이 증언하는 죽음의 전조
정효원 씨의 마지막은 예고된 것이었다. 그의 휴대폰에 남은 카카오톡 대화, 대중교통 이용 내역, 회사 근무표는 끔찍한 진실을 드러냈다. 생의 마지막 7일간 그가 일한 시간은 80시간 12분. 한 주의 거의 절반이다.

그 이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망 2주 전부터 12주 전까지 추적하면 주당 평균 58시간. 법정 상한인 52시간을 매주 초과하는 만성 과로였다. 사망 전날, 그는 15시간 내내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여자친구에게 "오늘 밥 못 먹으러 가서 계속 일하는 중"이라거나 "이슈가 있어서 밥 먹으러 갈 수가 (없었어)"라는 내용을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겼다.
고용노동부는 사망 전 일주일의 노동 강도가 직전 12주 평균보다 30% 이상 급등하면 과로 위험 신호로 본다. 정효원 씨는 37% 상승. 급성, 단기, 만성 과로라는 세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전형적 사례였다.
모순으로 점철된 해명
유족이 산재를 신청하겠다고 하자 회사의 태도가 돌변했다. 근로시간을 입증할 출퇴근 데이터 요청에 "지문인식 기기에 오류가 있었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회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회사가 파악한 고인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4.1시간"이라며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정확히 밝혔다. 10월 27일 런베뮤 과로사 의혹 단독 보도 후, 회사는 28일 1차 입장문에서도 "지문인식기기의 오류로 사고 직전 고인의 실제 근로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면서도, "직전 일주일 함께 근무한 동료 직원들의 근로시간은 분명 평소 근로시간 대비 높은 수준"이라고 인정하며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더 큰 문제는 장례 기간 중 벌어졌다. 회사 고위 임원이 유족에게 "과로사라는 명목으로 무리하게 산재 신청을 밀어붙인다면, 과로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입증하겠습니다", "매우 부도덕한 행동"이라는 위협성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회사는 10월 28일 입장문에서 "현장 운영담당 임원의 부적절한 대응"이었다며 "통렬히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위법으로 설계된 고용
법률 전문가들은 정 씨 근로계약서를 두고 "블랙기업 매뉴얼을 보는 것 같다"고 평했다. 계약서에 명시된 수당을 역산하면, 주당 최소 14시간 초과근무를 기본 전제로 깔고 있었다. 처음부터 법정 상한 52시간을 넘도록 설계된 계약이었다. 근로자 본인 서명조차 빠져 있었다.

계약서 한구석에는 "근로기준법 59조에 따라 주 12시간 초과 연장근로가 가능하다"는 문구가 있었으나, 해당 조항은 운송업·보건업 같은 특례 업종에만 적용될 뿐 베이커리와는 무관하다.
'쪼개기 계약'은 또 다른 꼼수였다. 정효원 씨는 14개월 재직 기간 동안 3개월짜리 단기 계약을 네 차례 갱신했다. 1년 이상 근무 시 발생하는 퇴직금, 2년 이상 근무 시 정규직 전환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전형적 수법이다.
'주임' 명함 뒤의 현장 책임자
정효원 씨의 명함에는 '주임', 계약서에는 '홀(매장)' 한 단어뿐이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그는 40명 규모의 인천점에서 사실상 현장 책임자 역할을 했다.
그가 떠안은 업무는 신입 직원 면접과 채용, 교육, 배치 등 인사 전 과정부터, 근무 일정표 작성, 영업 매뉴얼 제작, 물품 발주와 재고 정리까지 방대했다. 여기에 실제 매장 서빙과 계산, 하루 200박스가 넘는 택배 정리, 금속 차단봉 140개를 나르는 육체노동까지 그의 몫이었다.
"너무 덥다, 백화점인데도", "창고는 더 심하다. 힘이 쭉 빠진다" 연인에게 보낸 메시지마다 지쳐가는 몸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정효원 씨가 사망한 건 이 회사를 인수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JKL파트너스에 2000억 원대로 매각된 직후였다. 경영진이 투자자들에게 "사건은 잘 정리됐다"고 전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다만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JKL파트너스도 피해자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제가 기존 창업자의 경영 방식에서 비롯됐고, 실사만으로는 개별 사업장의 근로 환경을 모두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핫플'의 민낯: "우리는 장식품이었다"
화려한 브랜딩 뒤편에는 전혀 다른 현실이 존재했다.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어요. 매장을 꾸미는 장식품, 오브제 같았죠." 진보당 의원실에 익명으로 제보된 전 직원의 증언이다.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자 회사의 초동 대응은 통제였다. 전 직원에게 "어떤 형태의 취재도 응하지 말 것"이라는 일괄 지시가 내려갔다. 전국 모든 매장의 고객 리뷰 게시판이 동시에 비공개로 전환됐고, 창업자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도 즉시 잠겼다.
직원들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데는 입사 시 쓴 영업비밀보호 서약서도 한몫했다. "중대한 위반 사항의 경우 1억 원의 위약금을 회사에 지급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 서약서가 근로 환경 문제를 외부에 알리기 어렵게 만드는 구속 장치로 작동했다고 분석했다.
자기 매장을 꿈꾸던 청년
정효원 씨는 언젠가 자신의 이름을 건 작은 카페를 열고 싶다는 꿈을 키우던 26세였다. 부모님과 무엇이든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다정한 아들이었다.

빈소를 찾은 동료들은 "정효원 씨가 없었다면 매장 개점을 제시간에 맞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어느 매장에 가든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성실함이 더 많은 업무와 더 긴 근무시간으로 되돌아왔다.
아버지는 "휴무 날에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하루 종일 잠만 잤다"고 기억했다. 어머니는 "그만두라고 여러 번 권했다. 이전에 특급호텔에서도 일했는데, 그때는 이 정도로 힘들어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합의, 그리고 남겨진 과제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 가린 것들
11월 3일, 유족과 회사가 합의를 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족은 산재 신청을 자진 취하했다. 산재 신청은 철회됐지만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은 별개 사안이다. 노동부는 11월 4일, 법 위반 정황을 다수 포착했다며 런던베이글뮤지엄 전 계열사로 감독 범위를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강관구 런던베이글뮤지엄 대표는 11월 10일에야 "사업이 급격히 확장되는 과정에서 운영 체계와 조직 관리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공식 입장을 냈다. 회사는 뒤늦게나마 HR 전문 ERP 시스템 도입, 산업안전 관리 체계 신설, 인사제도 전반 재설계 등을 약속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은 2024년 795억 원을 벌었다. 약 6개 지점, 빵만으로 이뤄낸 엄청난 성과였다. 그 화려한 성공 뒤에 가려진 것들이 있었다.
정효원 씨는 서명도 없는 불법 계약서로 일했다. 주 80시간, 15시간 연속 근무에도 밥 한 끼 먹지 못했다. 3개월짜리 계약을 네 번 반복하며 퇴직금과 정규직 전환을 피했다. 그리고 과로로 죽었다.
11월 3일, 안국점 앞에서 시위가 열렸다. '노동자는 오브제가 아니다'라는 팻말 뒤로, 여전히 손님들이 줄을 서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여전히 그곳에서 베이글을 산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다. 그 '감성'의 값은 어디로 갔을까.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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