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27살에 죽는다던데”…이제 곧 70세, 괴물에 가까운 실력, 예술에 잠식당하지 않은 ‘그 사람’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김주리 2025. 11. 1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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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국민 밴드 ‘사잔 올 스타즈’(サザンオールスターズ) 보컬 쿠와타 케이스케(桑田佳祐)
1978년 싱글 ‘제멋대로인 신밧드’(勝手にシンドバッド) 데뷔 이후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
친근한 ‘옆집 아저씨’ 이미지·폭 넓은 장르 음악으로 범국민적 인기…일본 최고의 보컬리스트
음악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콘텐츠
쿠와타 케이스케(桑田佳祐)가 가진 압도적이고 괴물같은 에너지는 시간의 산물, 재능의 결과 등 단순화된 표현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가 가진 보컬의 기술력과 감정 통제력은 가히 인간이 닿을 수 있는 한계에 가까운 수준으로 평가된다. [팬페이지 캡처/Added by Alexmington]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누군가 말했다.

젊음이 할 수 있는 일과 나이듦이 할 수 있는 일은 익히 정해져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삶의 이치이고 시간의 흐름이며 인간의 필연이라고.

작가의 글은 세월에 따라 무르익고, 배우의 연기는 시간 속에서 깊이를 얻는다. 노년의 예술은 젊은 날의 열정보다 깊고 완숙은 미숙보다 더 많은 결을 가진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José de la Concordia García Márquez)의 나이 77세에 출간된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Memoria de mis putas tristes, 2004)이 세월의 무게를 품은 문체와 인간에 대한 이해의 절정을 보여주듯, 시간을 버텨야만 닿을 수 있는 예술의 경지가 있다. 그렇기에 때때로 예술은 세월의 풍파를 버티며 더욱 고결하게 완성된다.

하지만 반대로 무대 위의 스타들, 특히 힙합이나 댄스, 록 장르의 대중음악 예술을 다루는 뮤지션은 다르다. 그들의 존재는 청춘의 발산 위에 서 있고, 열정이 곧 생명이다. 젊음은 그들의 연료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무대 위에서 그 젊음은 강렬하게 타오르며 빛을 낸다.

그렇기에 그들의 시간은 대체로 짧다. 절정은 순간이고, 그 절정은 많은 경우에서 세월에 허락되지 않는다. 불꽃은 찬란하지만, 오래 타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의 법칙을 거슬러 서 있는 사람이 있다. 60세가 넘은 나이에 자전거를 타고 천진하게 무대에 등장해 관객을 향해 직접 물대포를 부둥켜 쥐고 쏘아대며 열정과 정열의 눈부신 빛을 잃지 않은 사람. 동시에 사랑과 삶을 통달한 노래를 겨우 44세의 나이에 완숙하게 표현해내는 사람. ‘쓰나미’(TSUNAMI)를 불렀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40대 중반이었고, ‘파도 타는 조니’(波乗りジョニー)를 부를 때 그는 이미 40대 중반이었다. 세월이 깎아내리지 못한 목소리, 그와 동시에 세월의 깊이를 고스란히 품은 사람.

쿠와타 케이스케(桑田佳祐)가 가진 압도적이고 괴물같은 에너지는 시간의 산물, 재능의 결과 등 단순화된 표현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가 가진 보컬의 기술력과 감정 통제력은 가히 인간이 닿을 수 있는 한계에 가까운 수준으로 평가된다.

“風の詩よ 黄昏よ
ためらいの道
波の音は今宵もブルー
愛しい君の名を誰かが呼ぶ”
(바람의 노래여, 황혼이여
망설임이 놓인 길거리
파도의 소리는 오늘 밤도 푸르고
사랑스러운 너의 이름을 누군가 부르고 있어)
- 사잔 올 스타즈, ‘희망의 수레바퀴’(希望の轍) 中 -
쿠와타 케이스케의 노래는 감정의 폭발인 듯 들리지만 사실상 감정의 설계에 가깝다. 감정을 바꾸지 않고 감정의 위치를 바꾸는, 그리고 감정과 기술, 절제와 열정을 완전히 병치시키는 탈인간적인 통제력 속에서 빛나는 인간적인(서술했듯,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품고 있기에) 체온. 그렇기에 듣는 사람은 혼란스러울 만큼 그의 목소리에 홀린다. 이것이 ‘서글서글하고 친근한 옆집 아저씨’, 쿠와타 케이스케의 절대적인 영역이다. [공식 엑스 캡처]

‘노래 부른다’는 개념을 무너뜨리는 보컬…“악보 밖으로, 음악이 목소리를 통해 ‘창조’된다”

쿠와타 케이스케의 노래를 듣는다는 건 인간이 목소리만으로 음악의 구조 자체를 통제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경험에 가깝다. 대부분의 보컬이 악보에 자신을 투영해 감정의 파도를 타며 보컬적 역량을 통해 곡을 표현한다면, 쿠와타 케이스케는 그 파도 자체를 목소리 안에서 조정해버린다. 악보 위에, 음악 위에 올라서서 감정의 강도를 주체적으로 조절하며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 사실상 조종(操縱)하는데, 그렇다고 그 감정을 흘려보내지도 않고 같이 품어가는 기묘한 재주를 부린다. 말 그대로, 음악과 노래를 가지고 놀며 주도권은 작품에 내주지 않는다. 그렇게 그의 노래는 온전히 그를 통해 창조된다.

기술적으로 분석한다면, 쿠와타가 호흡의 위치를 바꾸는 능력은 가히 비상할 정도다. 가슴, 비강, 구강을 자유롭게 오가며 공명의 밀도와 톤을 몇 초 사이 즉각적으로 바꿔내는데, 이 테크닉을 활용해 한 곡 안에서 음색을 자유롭게 유동시켜, 곡은 같은 음역 구간임에도 계속해서 표정을 바꾸게 된다. 여기에 음정을 갖고 노는 방식도 독특해 정확히 음을 때리는 교과서적인 방식이 아닌, 미세한 ‘흔들기’를 이용해 감정의 결을 세우는 방식이다. 리듬 또한 ‘탄다’기보다 ‘만든다’는 감각으로, 프레이징은 반주에 기대지 않고 반주를 이끌어가며 듣는 이는 박자를 타기도 이전에 흡사 쿠와타 케이스케의 보컬에 음악이 반응하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이 괴물같은 통제력은 사잔 올 스타즈의 대표곡 ‘쓰나미’와 그의 솔로 작품 ‘파도 타는 조니’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쓰나미’에는 과장된 듯 절제된, 체온없이 무너지는 슬픔과 삶에 대한 감회, 감정에 파묻힘과 감정과의 거리감이 기가 막힐 정도의 균형으로 정돈되어 있다. 슬픔을 보여주는 동시에 슬픔이 곡 전체에 공기처럼, 쏟아지는 비처럼, 몰아치는 쓰나미처럼 베어 있는데, 이같은 감흥을 만들어내는 건 곡 자체가 워낙 잘 만들어진 영향도 있지만 쿠와타의 보컬이 8할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파도 타는 조니’에서는 같은 사람의 노래가 맞나 싶을 정도로 급격히 다른 온도를 보여준다. 밝고 유희적이면서 애절한 감수성 속에서도 흐트러짐이 없고 곡의 절정을 표현하는 순간에서 감정이 압도적으로 곡을 덮을 듯하면서도 보컬적 기술은 또 촘촘하고 정밀하게 살아있다.

결국 그의 노래는 감정의 폭발인 듯 들리지만 사실상 감정의 설계에 가깝다. 감정을 바꾸지 않고 감정의 위치를 바꾸는, 그리고 감정과 기술, 절제와 열정을 완전히 병치시키는 탈인간적인 통제력 속에서 빛나는 인간적인(서술했듯,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품고 있기에) 체온. 그렇기에 듣는 사람은 혼란스러울 만큼 그의 노래에 홀린다. 이것이 ‘서글서글하고 친근한 옆집 아저씨’, 쿠와타 케이스케의 절대적인 영역이다.

“人は誰も愛求めて闇に彷徨う運命
身も心も愛しい女性しか見えない
好きなのに泣いたのは何故
思い出はいつの日も... 雨”
(인간은 누구라도, 사랑을 갈구하며 어둠을 헤매일 수 밖에 없는 운명
몸도 마음도, 사랑스러운 그대말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하지만 사랑하고 있음에도 눈물이 흐르는 건 어째서일까
추억은 그렇게, 언제나 비처럼 쏟아진다)
- 사잔 올 스타즈 ‘쓰나미’(TSUNAMI) 中 -
쿠와타 케이스케는 악보 위에, 음악 위에 올라서서 감정의 강도를 주체적으로 조절하며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 사실상 조종(操縱)하는데, 그렇다고 그 감정을 흘려보내지도 않고 같이 품어가는 기묘한 재주를 부린다. 말 그대로, 음악과 노래를 가지고 놀아버리며 주도권은 결코 작품에 내주지 않는다. 그렇게 그의 노래는 온전히 그를 통해 창조된다. [CDJournal(cdjournal.com) 캡처]

능청맞고 능글맞은 무대 위의 ‘어린이’…삶을 유희로 다루는 ‘프로페셔널 아티스트’ 혹은 ‘프로페셔널 휴먼’

“똑똑히 들어, 네가 만들고 노래한 이 곡은 ‘이렇게’ 부르는 거라고!”
과거 쿠와타는 어느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타 밴드의 보컬과 ‘노래 바꿔 부르기 쇼’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일본에서 단일 싱글로 200만장 가까이 판매고를 올린 어떤 곡의 싱어송라이터 당사자를 향해 인상을 잔뜩 쓴 채 “이 노래는 이렇게 부르는 거야”라고 경고하듯 힘 주어 말한 뒤 곧바로 해맑게 웃으며 능청맞고 능숙하게 무대를 꾸민 적이 있는데, 막상 상대편이 자신의 노래를 부를 때는 또 “뭐야, 나보다 더 잘하잖아”라고 칭찬하며 대놓고 농을 던졌다.

무대 위의 쿠와타 케이스케는 언제나 능글맞고 장난스럽다. 일본을 대표하는 거대한 아티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콘서트에서도, 초대받은 쇼에서도 언제나 노래 사이사이 농담을 던지고, 악단과 장난을 치며 관객에게 물총을 쏘거나 맞거나 하면서 아이처럼 천진하게 스테이지를 꾸민다. 마이크 앞의 그는 누구보다 진지한 예술가이지만 동시에 천연덕스럽게 무대를 끌어가는 장난꾸러기다. 그리고 이같은 양면성은 가벼움의 표현이 아닌 오히려 프로페셔널한 통제력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는 무대를 하나의 ‘놀이터’처럼 다루지만 그 장난끼조차도 공연 예술의 일부로 편입이 된다. 코미디처럼 흘러가는 제스처에도 정확한 리듬이 있고 즉흥적인 웃음과 윙크 속에도 타이밍이 있다. 그가 던지는 한 마디 멘트, 관객을 향해 흔드는 손짓, 돌연 펼치는 만담까지 음악의 결과 정확하게 맞물리는 건 ‘예능인’이 아닌 ‘예술가’가 무대를 장악하는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기술이다.

이렇다보니 쿠와타의 공연을 보다 보면 ‘노래 잘하는 사람’인 동시에 ‘살아있는 인간’을 보고 있다는 감각이 생긴다. 그의 여유는 감정의 방임이 아닌 감정의 숙련에서 비롯되며 관중은 그 균형감에 매혹된다.

무대 위의 쿠와타 케이스케는 언제나 능글맞고 장난스럽다. 일본을 대표하는 거대한 아티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콘서트에서도, 초대받은 쇼에서도 언제나 노래 사이사이 농담을 던지고, 악단과 장난을 치며 관객에게 물총을 쏘거나 맞거나 하면서 아이처럼 천진하게 스테이지를 꾸민다. 마이크 앞의 그는 누구보다 진지한 예술가이지만 동시에 천연덕스럽게 무대를 끌어가는 장난꾸러기다. 그리고 이같은 양면성은 가벼움의 표현이 아닌 오히려 프로페셔널한 통제력의 또 다른 얼굴이다. [TBS 테레비 뉴스 홈페이지 (newsdig.tbs.co.jp) 캡처]

쿠와타 케이스케의 여유는 장인정신에서도 비롯되지만 그보다는 좀 더 다른 층위에서의 발산에 가까운데, 그는 자신이 음악이라는 거대한 세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되, 그 세계에 매몰되지 않는다. 자신을 지나치게 신격화하지 않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라는 테두리로 묶어두지도 않는다. 대신 인간으로서의 감정과 유머, 허술함과 농담을 예술 속에 끌어들이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의 공연에는 눈물과 웃음이 공존하며, 그 웃음이야말로 쿠와타 케이스케가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임을 증명한다.

예술을 다루되, 예술에 먹히지 않는다. 자신의 음악을 절대적인 진리로 세우지 않고 한 발 떨어져 즐기는 감각, 이 완숙된 거리감 조절이야말로 그가 오래도록 무대 위에 설 수 있었던 이유다. 감정의 깊이를 다루면서도 그 감정에 빠지지 않고, 열정을 품지만 그 열정에 타버리지 않는다. 쿠와타 케이스케가 ‘프로페셔널 아티스트’인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지켜내고 있는 ‘프로페셔널 휴먼’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さらば青春の舞台よ
胸が jin-jin と響く
だのに太陽はもう帰らない to me
何故 砂漠のように心が渇くのでしょうか?”
(잘 가시게, 청춘의 무대여
심장이 덜컥 아파오지만
그래도 태양은 나에게 돌아오지 않지
어째서, 마음은 이토록 사막처럼 메말라 버리는 걸까)
- 사잔 올 스타즈 ‘Hotel Pacific’(퍼시픽 호텔) 中 -
감정의 깊이를 알고, 그 무게를 견디며, 그것을 일정한 거리로 바라보는 능력. 그의 노래에는 인간의 체온이 있지만 동시에 감정의 질서가 공존한다. 그 질서 속에서 그는 무너지지 않는다. 슬픔을 노래해도 슬픔에 잠기지 않고, 사랑을 노래해도 사랑에 매몰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감정을 조율한다. 그 조율의 끝에서, 예술은 더 이상 고통의 산물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타워 레코드 재팬 홈페이지(tower.jp) 캡처]

자신의 작품에 ‘먹히지 않은’ 찬란함…예술에 잠식되지 않은 인간의 ‘승리’

커트 코베인, 짐 모리슨, 에이미 와인하우스…뮤지션으로 인해 창작된 작품이 창작자를 집어삼킨 사례는 수없이 많다. 창작의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잔혹함, 어떤 예술가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길을 잃고 그 감정의 진폭 안에서 작품에 삼켜져 버리지만, 쿠와타 케이스케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 그는 예술을 주체적으로 다루고, 감정을 운용하며, 음악을 지배한다. 그에게 예술은 통제 불가능한 신비가 아닌 다룰 수 있는 생명체에 가깝다.

감정의 깊이를 알고, 그 무게를 견디며, 그것을 일정한 거리로 바라보는 능력. 그의 노래에는 인간의 체온이 있지만 동시에 감정의 질서가 공존한다. 그 질서 속에서 그는 무너지지 않는다. 슬픔을 노래해도 슬픔에 잠기지 않고, 사랑을 노래해도 사랑에 매몰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감정을 조율한다. 그 조율의 끝에서, 예술은 더 이상 고통의 산물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초인적인 보컬 능력으로 부르는 그의 노래는 그 자체로 인간의 완성이다. 그는 예술을 통해 구원받은 사람이 아닌 예술과 공존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그의 음악은 삶의 무게와 함께 걸어가는 예술혼의 발현이고, 감정과 기술이 균형을 이루는 구조체이며, 결국 인간이 예술에 잠식되지 않고도 예술을 뛰어나게 완성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다. 예술에 먹히지 않고 예술을 품어낸 인간, 그것이 쿠와타 케이스케가 만들어낸 ‘쓰나미’다.

“みんなで聲合わせ飛んでゆけ
やがて雲の切れ間から風のハ-モニ-
いつの日かこの場所で
逢えるならやり直そう”
(모두가 함께, 소리 맞춰서 하늘로 날아가면
이윽고 구름 사이에 바람의 하모니가 흐르겠지
언젠가 이 곳에서 만나게 된다면
우리 다시 시작하자)
- 사잔 올 스타즈 ‘함께 부르는 노래’(みんなのうた) 中 -
곧 70세를 앞둔 그의 노래는 여전히 변하고, 웃고, 흔들리고, 젊고도 노련하다. 쿠와타 케이스케의 음악은 ‘때’를 거슬러 남은 진짜 살아 있는 목소리의 증명이다.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쿠와타 케이스케는 그 법칙을 벗어난 곳에서 노래한다. 그는 젊음이 사라진 자리에서 더 뜨겁고 자유로워졌고 젊음의 열정을 버티지 못한 인간이 예술에 의해 먹히는 대신, 인간이 예술을 길들이는 예외를 만들어냈다.

곧 70세를 앞둔 그의 노래는 여전히 변하고, 웃고, 흔들리고, 젊고도 노련하다.

쿠와타 케이스케의 음악은 ‘때’를 거슬러 남은 진짜 살아 있는 목소리의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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