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재일교포 3세 이상일 감독, 韓 관객과 만나는 의미 [인터뷰]

일본을 휩쓸고 마침내 한국 땅을 밟는다. 일본 실사 영화 역사상 두 번째 천만 타이틀을 얻은 '국보'가 국내 관객과 만남을 앞두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배급사 NEW 사옥에서 '국보'를 연출한 이상일 감독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국보'는 국보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서로를 뛰어넘어야만 했던 두 남자의 일생일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물들의 50년이라는 거대한 여정을 담아냈다.
개봉 전부터 국내 반응이 뜨겁다. 지난 9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국내 관객과 만난 '국보'는 호평세례를 받았다. 이상일 감독은 "앞서 부산에서 관객들의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정식 개봉은 다른 느낌이다. 진지한 자세로 임하고 있다"고 국내 개봉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앞서 6월 일본에서 개봉된 '국보'는 102일 만에 천만 관객을 달성했다. 장기 흥행에 돌입한 영화는 지금까지 1,200만 관객을 동원했으며 역대 일본 실사 영화 흥행 1위 경신을 앞두고 있다. 국제적인 주목도 또한 높다. 칸 영화제에 이어 일본 영화를 대표해 제98회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후보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일본에서) 20년 만에 이런 숫자가 나왔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영화의 흥행은 있었으나 실사 영화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TV드라마와 달리 정보가 많지 않은 휴먼 드라마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아준 관객에게 감사하다. 흥행을 통해 '국보'와 같은 작품을 사람들이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수적인 가부키 세계, 우려를 찬사로 바꿀 수 있던 이유
'국보'는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요시다 슈이치는 3년간 가부키 분장실 취재를 이어오며 작품을 완성했다. 가부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고전 연극으로 전통과 형식, 계승성을 중시하는 보수적 성향이 강한 예술로 익히 알려졌다. 높은 장벽을 뚫고 '국보'라는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
"협력이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웃음) 가부키 전문 배우가 아닌 영화배우가 가부키를 표현하는 것을 두고 많은 질문을 받았다. 전통이 있는 예술이다보니 표현을 어떻게 할지 우려했던 거 같다. 하지만 '국보'가 개봉된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가부키 배우들이 SNS나 유튜브를 통해 좋은 감상평을 많이 올려주셨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관객이 감소했던 가부키 극장은 지금 티켓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전해들었다. 감사한 일이다."

175분의 러닝타임은 아름다움으로 채워져있다. 스크린에 흐르는 영상미, 몰입도를 높이는 촬영기법, 가슴을 요동치게 만드는 음악은 '국보'가 가진 힘이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촬영감독 소피안 엘 파니, '킬 빌'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미술감독 타네다 요헤이의 저력이 작품에 녹아있다.
"타네다 요헤이와는 20년의 인연이 있다. 이번 작품을 만들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50년이라는 시간을 담고 있지만 당대의 사회적 상황이나 사건이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타네다는 무대 뒤 분장실, 통로 등에서 배우들이 생식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자고 제안했다. 소피안은 '파친코2'에서 만났다. 일본어와 한국어가 오가는 현장이었는데 언어의 장벽을 넘어 모든 걸 구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국보' 감독으로서 환희를 느꼈던 순간
라인업도 화제다. 요시자와 료, 요코하마 류세이, 와타나베 켄 등 일본의 스타 배우을 비롯해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을 통해 국내 관객에게도 친숙한 배우 쿠로카와 소야가 출연한다. 총 1년 반의 제작 준비 기간 동안 배우들은 혹독한 훈련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가부키 배우의 정신과 육체를 만들어내기 위해 연기뿐만 아니라 표현력까지 모두 섭렵해야 했다는 후문이다.
"감독으로서 가부키 전문 배우가 아닌 영화배우가 이 작품에 출연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감정의 내면을 카메라에 포착하는 데 있어 영화배우가 세밀한 표현을 더 잘해낼 거라 믿었다. 하지만 외부에선 우려의 시선이 있었다. 영화 배우여야만 하는 이유가 필요했다."
러닝타임을 달려가다 보면 아름다움의 경지에 다다른다. 이상일 감독 또한 아름다움이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잡고 작품을 완성했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인간이 진정한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전하고 싶었다. 아름다움이란 가치관은 모든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고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국내 개봉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175분의 상영 시간은 '국보'에 진입하는 데 높은 장벽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일 감독은 러닝타임보다 그 시간을 끌고 가는 영화의 힘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그의 뚝심과 용기가 '국보'를 기대작으로 만들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보여줄 때 2시간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OTT 시리즈의 모든 회차를 정주행하는 시대다. 흥행에 대한 기대? 잘 모르겠다.(웃음) 그동안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오늘을 맞이했다. 운이 좋았다. 내일부터는 모르겠다."
'국보'는 오는 19일 국내 개봉 예정이다.
김연주 기자 yeonju.kim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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