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실세’ 김현지, ‘드러난 실세’ 김건희…여야의 ‘리스크 블랙홀’
‘네버엔딩’ 김건희 의혹, 매관매직부터 김기현 명품백 선물 논란까지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어느 정부 때든 야권의 총구는 대통령 주변의 '실세' 인물을 겨냥해 왔다. 지난 윤석열 정부에선 '조용한 내조'에 실패한 김건희 여사가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타깃이었다. 민주당은 정권이 바뀌자마자 특검을 추진해 수사의 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민낯을 파헤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그림자 실세' 논란이 불거진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을 향해 총공세를 펼치는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 곁을 30여 년간 지킨 김 실장의 존재감과 그를 숨기려는 정부·여당의 미묘한 기류가 각종 의혹을 눈덩이처럼 키우는 모습이다. 김 실장을 두고 '김건희 여사급 실세'라는 표현마저 회자되고 있다.
실세에 대한 의혹이 커질수록 해당 조직에 대한 불신도 증폭된다. 그리고 조직에 대한 불신은 정치적 리스크로 이어지게 된다. 여야 공방이 김건희 여사와 김현지 실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각각 국민의힘과 이재명 정부의 리스크를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논란의 인물'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새로운 현안이 제기되거나 국정운영 방침을 논할 때마다 매관매직 의혹의 김 여사와 베일에 싸인 김 실장 관련 리스크가 재부상하는 분위기다. 그렇게 '김-김' 리스크는 정치권의 흐름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여권과 야당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이지 않는 공방전을 펼치는 모습이다.

李 '현수막' 불쾌감 토로, 野 '매관매직' 딜레마
윤 전 대통령 부부와 연결된 국민의힘의 리스크는 점입가경이다. 김건희 특검팀이 김 여사에 대해 수사 중인 사건만 해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부터 통일교 청탁·뇌물 수수, 국민의힘 전당대회 개입 등으로 확대된 가운데 새로운 의혹이 계속 추가되면서다. 최근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2023년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당선된 후 그의 아내가 김 여사에게 100만원대 명품가방을 선물한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이를 시인한 김 의원은 "대가성 뇌물이나, 청탁용이 아닌 사회적 예의 차원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여기에 같은 당 성일종 의원도 "100만원 정도 되는 가방이 어떻게 뇌물인가"라고 옹호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당내 일각에서도 우려가 전해진다. 통일교로부터 1억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권성동 의원에 이어 추경호 의원도 구속 갈림길에 놓인 상황에서, 현역 의원들이 줄줄이 김 여사 관련 사법 리스크에 걸려 당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 사이 중도층은 뒤돌아섰고 지지율은 수개월째 20%대 정체기에 머물러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당의 리스크는 해소하지 못한 채, 김 실장에 대한 의혹만 제기하고 실체를 밝히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대여 투쟁의 효과는 점차 떨어질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재명 정부의 악재로 꼽히는 '김현지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취임한 지 1년이 채 안 된 시점에 대통령실의 숨겨진 실세 등의 의혹을 논하는 상황이 결코 득이 될 순 없다. 의혹이 커질수록 대통령실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수준의 정무적 결정과 해명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의 첫 국정감사가 '김현지 증인 채택' 논란에서 시작해 '김현지 불출석'으로 마무리된 것이 대표 사례다. 민주당은 김 실장을 국감장에 출석시키라는 국민의힘 요구를 막아냈지만 이 대통령은 "국회가 호출하면 언제든지 가라고 김 실장에게 지시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여당은 논란을 전면 돌파하려는 반면, 정부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그림이 연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실장에 대한 야권의 공세 수위가 높아지자 이 대통령 역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11월11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당 현수막 규제'와 관련해 "길바닥에 저질스럽고 수치스러운 내용의 현수막이 달려도 정당이 게시한 것이라 철거를 못 한다"며 법 제정의 필요성을 밝혔다. 최근 일부 군소 정당이 김 실장과 이 대통령의 관계에 대한 각종 의혹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현수막을 전국에 건 데 대해 이 대통령이 간접적으로 반응한 셈이다.
대통령 입에서 '저질스럽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현수막 내용은 무엇일까. 일부 현수막에는 양쪽 끝에 각각 김 실장과 이 대통령의 눈을 가린 얼굴 사진을 넣은 뒤 가운데에 "무슨 관계?"라는 문구를 적어놨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이 정당 현수막을 지적한 다음 날 "표현의 자유 이름으로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며 법 개정과 제보·신고 절차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상황 안 바뀌면 정권 내내 논란 계속될 수도
여권이 지금 같은 스탠스를 유지한다면, 김 실장을 둘러싼 논란은 현 정권 내내 지속될 전망이다. 정치권에선 이미 김 실장과 김건희 여사를 동일선상에 두려는 기류가 강해졌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윤석열 정부의 '여사 트라우마'를 벗어나려는 듯 김혜경 여사의 조용한 내조를 강조하려는 모습이지만 김 실장의 존재감이 이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심지어 김 실장에 대한 관심은 김건희 여사보다도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건희 여사는 윤 전 대통령의 '드러난 실세'라는 평가가 있다면, 김 실장은 베일에 싸여있는 '그림자 실세'라는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구글트렌드가 지난 1개월간 김 실장과 김건희 여사, 김혜경 여사의 평균 검색량을 분석한 결과 김 실장(43)이 김건희 여사(42)보다 높았다. 김혜경 여사 검색량은 '3'으로 현격히 낮았다. 김건희 여사 관련 검색어로는 '김건희 문자' '이준수 문자' 등 최근 특검의 수사 과정에 대한 키워드가 올랐고, 김 실장 관련 검색어로는 '김현지 아들' '이재명 재판' 등이 언급됐다.
'김현지의 정체'라는 키워드도 관련 검색어에 등장했다. 김 실장은 이 대통령 정계 입문의 발판으로 평가받는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에 앞장선 인물로 알려졌다. 김남준 대변인, 윤기천 총무비서관과 함께 이 대통령의 '성남 라인 3인방' 중 한 명으로도 꼽힌다. 성남시장·경기지사·국회의원·민주당 대표를 거쳐 21대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30년 가까이 '정치인 이재명'을 보좌하며 정무적 결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꼽힌다. 단 늘 베일에 싸여 활동했다. 공개된 정보도 매우 적다. 김 실장과 배우자는 9월26일 기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에 3억7500만원에 매입한 A아파트를 공동 소유하는 등 순자산이 11억2000만원인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외에 나이, 고향, 학력 등은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그가 언론에 알려진 계기는 2022년 9월1일이다. 당시 당대표였던 이 대통령은 대장동·백현동 개발비리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국회 본회의장에서 누군가로부터 "출석요구서가 방금 왔다. 전쟁이다"는 취지의 문자를 받았다. 이 문자의 발신자가 김 실장이란 사실이 알려지자, 그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커졌다. 김 실장은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국정감사 출석에 응하지 않고 되레 대통령실의 엄호를 받는 모습까지 연출되면서 궁금증이 증폭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 운영위원들은 '김현지 방어' 숙제를 하는 학생들 같았다"며 "김현지 시즌1은 결말이 없었다. 시즌2가 곧 나온다는 얘기"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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