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처질 수 없다, 미·소 핵경쟁과 한국 사교육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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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용의자의 딜레마 게임
10월 하순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가 화제다. 누가 왜 어디서 발사했는지 모르는 핵미사일 단 한 발이 미국의 대도시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한 뒤 18분간, 평범한 일상이 순식간에 악몽으로 변하는 과정을 여러 사람의 시각에서 번갈아 보여준다.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쫄깃한 연출이 압권.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평범한 일상이 단 한 발의 핵미사일로 순식간에 악몽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진 넷플릭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7/joongangsunday/20251117132147659txmg.jpg)
학자들은 20세기 냉전기에 미국과 소련이 군비경쟁을 한끝에 소위 ‘핵균형’이라고 부르는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에 3차 대전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를 완전히 초토화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각자 보유하게 되고 보니, 누군가 한쪽이 공격을 시작하기만 하면 양국 모두 멸망에 가까운 엄청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가진 두 나라가 누구도 감히 먼저 도발을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상태로 균형을 이루면서 매우 불안정한 평화가 유지되어 오고 있다.
미국·소련, 군비경쟁 끝에 ‘핵균형’ 도달
그러면 미국과 소련은 20세기에 왜 그렇게 파멸적인 군비경쟁에 몰두했을까. 국제정치 상황을 분석할 때 각 국가를 ‘인센티브에 반응하여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개인’, 즉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이라고 생각해 보면 유용할 때가 많은데 이 상황이 딱 그러하다. 그리고 경제적 인간들이 각자 특정 전략을 취했을 때 어떤 결과가 얻어지는가 하는 것을 분석하는 데 쓰이는 방법론을 게임이론이라고 부른다.
체스나 포커, 축구 같은 게임들을 생각해 보면 우선 정해진 수의 플레이어가 있다. 플레이어들에게는 각각 취할 수 있는 전략의 집합이 주어지는데, 게임에 참여한 모든 플레이어의 전략을 모아 놓으면 누군가는 승리하고 누군가는 패배한다든가 각자에게 점수가 부여되는 등 특정한 ‘결과’가 나오게 된다. 이런 것들을 모두 모아 놓으면 게임의 규칙이 된다. 몇 명이 참여하고, 각각 어떤 전략을 택할 수 있고, 그 전략들을 모았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축구는 한 팀에 11명이 참여하고, 주로 발을 이용해 공을 이동시켜야 하며, 상대방 골대에 공이 들어가면 1점을 얻고 90분이 지난 뒤 더 많은 점수를 얻은 팀이 승리한다. 이렇게 주어진 규칙 하에서 플레이어들은 각자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거기에 맞는 전략을 선택하게 된다. 이 과정은 경제적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비할 재화와 서비스의 종류와 양을 선택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시장에서 경쟁자를 늘 의식하며 경영전략을 짜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용의자들을 서로 떼어놓았기 때문에 각 용의자는 상대방이 자백할지 안 할지 모르는 상태로 자신의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상대방이 자백할 경우 내가 자백하면 5년형, 안 하면 10년형을 받게 된다. 따라서 자백하는 것이 유리하다. 상대방이 자백하지 않고 버티면 어떨까? 내가 자백하면 바로 풀려나고, 안 하면 1년형을 받는다. 역시 자백하는 것이 유리하다. 상대방이 자백을 하든 말든 나는 자백하는 게 유리한 것이다. 이렇게 다른 플레이어가 선택하는 전략과 관계없이 나에게 가장 유리한 전략이 하나 있을 경우에 이것을 우월전략이라고 부른다. 이 게임은 양쪽 플레이어에게 대칭적인 구조이므로 상대방도 자백하는 것이 우월전략이다. 결론적으로 둘 다 자백하는 결과가 얻어진다. 이처럼 모든 플레이어가 각자 우월전략을 택해서 나온 결과를 우월전략균형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 도달하는 우월전략균형은 용의자들에게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다. 만약 서로를 믿을 수 있어서 둘 다 끝까지 버틴다면 1년형만 받고 끝나니까 둘 다 5년형을 받는 것보다 나은 결과다. 이렇게 우월전략균형이 있는데도 이것보다 플레이어들에게 더 이익이 되는 다른 결과가 존재하는 게임을 용의자의 딜레마 게임이라고 정의한다. 두 사람 모두에게 더 좋은 결과가 게임 안에 존재하는데 게임구조상 그것보다 나쁜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딜레마’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게임의 구조는 냉전 시대 군비경쟁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소련이 핵무장을 하지 않을 때 미국이 핵무장을 하면 미국은 군사적으로 절대적인 우위에 올라설 수 있다. 반대로 소련이 핵무장을 할 때 미국이 핵무장을 하지 않으면 미국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큰일이 난다. 핵무장을 해야 그나마 균형을 맞출 수 있지 않겠나. 이렇게 보면 미국은 소련이 핵무장을 하든 말든 핵무장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즉 핵무장을 하는 것이 우월전략이다. 소련도 마찬가지. 그래서 양국 모두 국방비를 쏟아부어서 핵무기를 잔뜩 만드는 것이 우월전략균형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전 세계 사람들은 인류가 하루아침에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 살게 되었다. 누구도 핵무기를 갖지 않은 상태가 더 바람직한 것은 자명한 사실. 그래서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군비경쟁은 전형적인 용의자의 딜레마 게임 구조가 된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 학생들 모두가 사교육을 받으려 하는 것도 ‘용의자의 딜레마’로 설명이 가능하다. [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7/joongangsunday/20251117132148276avfh.jpg)
게임이론, 경제주체들의 전략적 선택 분석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질 높은 교육을 정규 수업시간에 받고 나머지 시간은 독서나 운동, 친구와의 교류 등에 쓰는 세상이다. 인류가 핵무기의 공포에서 벗어난 세상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용의자의 딜레마 게임은 군비경쟁이나 사교육 과열이 왜 이토록 쉽게 벌어지고 한번 빠져들면 벗어나기 힘든지 잘 설명해 준다. 그렇다고 희망을 놓을 필요는 없다.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개혁의 출발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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