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뒤' 여성 타투이스트, 양지로 나오다 [최주연의 스포 주의]
“신고 두려워 참았다", 성희롱·협박 일상이었던 과거
타투 스티커, 손톱 타투... 여성들이 주도하는 변화들
편집자주
이야기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행위를 ‘스포일러(스포)’라 합니다. 어쩌면 스포가 될지도 모를 결정적 이미지를 말머리 삼아 먼저 보여드릴까 합니다. 무슨 사연일지 추측하면서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거예요. 한 장의 사진만으로 알 수 없었던 세상의 비하인드가 펼쳐집니다.


"이젠 엄마 타투이스트라고 말해도 된다고 두 아들한테 얘기했어요."
10년차 타투이스트 이유민(44)씨는 문신사법 제정 소감을 묻자 활짝 웃었다. 두 아이를 출산한 뒤 경력이 단절됐던 유민씨에게 타투는 뒤늦게 찾은 꿈이었다. 각기 다른 굵기의 '니들'(타투용 바늘)을 바꿔가며 세밀하게 작업하다보면 유민씨는 어릴 적 꿈이었던 화가가 된 듯했다. 2년차 어느 날, 그는 달콤한 꿈에서 깼다. 작업실에 경찰 8명이 들이닥쳤다. 복도를 울리던 구둣발 소리에 유민씨는 외면하던 '불법'이라는 꼬리표를 직면했다.


비의료인 타투이스트가 불법이 된 것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법원이 '문신시술은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의 타투를 시술한 타투이스트 '도이'는 기소돼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는 일도 있었다. 눈썹 반영구 시술 등 문신이 일상화됐음에도 법이 시대의 흐름에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대중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법안 제정은 쉽지 않았다. 2007년 첫 발의 이후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22대 국회에 연이어 발의했으나 의료계의 강한 반발, 인식 부족으로 번번이 실패했다. 분위기는 2020년 민주노총 산하 타투유니온 등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마침내 지난 9월, 문신사법이 22대 국회 본회의를 통과됐다. ▲면허 및 신고 ▲위생·안전 규제 등을 갖추는 조건으로 비의료인 타투이스트가 제도권으로 들어온 것이다.



문신사법 제정 소식에 여성 타투이스트들은 환영의 목소리를 보내고 있다. 그동안 ‘불법’의 굴레는 특히 여성 타투이스트들에게 가혹했다. 신고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고객의 협박이나 성희롱에도 대응하기 어려웠다.
대한문신사협회 소속 A씨는 남성 손님이 리터치(수정작업)를 집에서 요구해 거절하자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당했다. 결국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객의 집을 방문했다. 이유민씨 역시 “시술 중 ‘그곳은 성감대라서 만지면 안 된다’, ‘아내가 타투이스트면 섹시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신고할 생각은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불법 시술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잡음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고 회상했다.
'칼리'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15년차 타투이스트 강미진(35)씨도 “타투 상담을 핑계로 자신의 중요 신체 부위 타투 문의를 보내는 남성 고객도 있다"라며 "여성 타투이스트라면 한번씩은 겪는 일 "라고 말한다. 신대방역에서 타투를 하는 3년차 타투이스트 김남령(32)씨는 “여성 타투이스트를 엄연한 직업인으로 존중하는 인식이 퍼져서 여성 타투이스트들이 맘놓고 일하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성 타투이스트들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 만큼, 주도적으로 새로운 시도들을 해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은평구에 위치한 미진씨의 1층 골목 통창 작업실엔 벽부터 도안이 가득 붙어있다. 타투 작업실은 어두운 지하일 것이란 고정관념을 깨고 누구나 호기심을 갖고 쉽게 들어올 수 있게끔 의도한 것이다. 미진씨는 핼러윈에 지역 행사에 나가 아이들에게 타투 스티커를 붙여주기도 했다. 미진씨는 "영구성이 타투의 본질이 아니"라며 "감정과 기억, 경험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이라면 모두 타투"라고 말했다.
남령씨는 최근 손톱 타투 작업에 관심이 많다. 아프지도 않고 손톱이 자라면 자연스럽게 없어져 부담도 없기 때문이다. 남령씨는 "최근에 친구 어머니에게 이 작업을 해드렸는데 좋아하셨다"며 "타투를 그저 자신의 삶에서 할 수 있는 표현방식 중 하나로 인정하는 인식변화가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보란 대한문신사협회 회장은 “그동안 불법의 그림자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했던 타투이스트들이 이제는 연구 활동 등에도 더 적극적으로 임하며 전체적인 기술력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문신사법 도입이 타투이스트의 안전과 자부심, 위생 강화로 인한 고객의 안전을 모두 지켜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주연 기자 juicy@hankookilbo.com
임지훈 인턴 기자 jeremy06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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