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토리] K-신스틸러를 만나다… 서이숙 "15년 무명세월, 그힘으로 지금까지 왔다"

이세영 2025. 11. 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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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신스틸러'(scene stealer)란 어떤 배우가 출연 분량과 관계없이 주연을 뛰어넘는 큰 개성과 매력을 선보여 작품에 집중하게 하는 인물 혹은 캐릭터를 이르는 말입니다. 단어 그대로 등장만으로도 시선을 강탈한다는 뜻입니다. 연합뉴스 K컬처팀은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한 배우 중 드라마, 영화 등의 매체로 영역을 확대해 '신스틸러'로 활약하는 배우의 릴레이 인터뷰 콘텐츠를 연재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배우 서이숙(57)은 "배우에게 나쁜 훈련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배드민턴 선수에서 비정규직 체육 강사를 거쳐, 수원예술극장 연기단원, 극단 미추의 간판 배우, 그리고 TV와 무대를 넘나드는 '신스틸러'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 궤적은 한마디로 '훈련과 버팀'이다.

15년의 긴 무명 시절을 버텼던 그는 "그 힘으로 지금 배우 노릇을 하고 있다"며 웃었다.

연극평론가 김수미, 후배 배우 박현서와 함께 서이숙의 연극 인생과 훈련론, 그리고 암 투병 이후 다시 무대·브라운관으로 나아가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배우에게 나쁜 훈련은 없다"…극단 미추에서 다져진 기본기

-- 연극과 전혀 다른 출발점인 '배드민턴 선수' 얘기부터 해볼까 한다. 어떻게 라켓을 내려놓고 무대로 오게 됐나.

▲ 지금은 배드민턴하고는 거리가 먼 삶이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는 선수였다. 전국체전에서 대한민국 랭킹 3위 선수와 붙었다가 완패했다. 그때 '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를 확실히 깨달았다. 선수 생활을 정리했는데, 그 인연으로 수원과는 끈이 생겼다. 비정규직 배드민턴 강사로 수원에 취직했고, 어느 날 우연히 연극을 보러 갔다. 그게 수원예술극장이었는데, 공연을 보다가 '난 여기 취직해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월급 주는 줄 알았다.(웃음) 인력이 하나 들어오니까 극단도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 수원예술극장에는 얼마나 있었나.

▲ 3년이다. 그때는 지역 연극제였는데 지금의 '대한민국연극제' 전신 같은 느낌이었다. 그 현장에서 '어, 이거 내 적성에 맞네'라는 생각했다. 기존에 있던 선배님들보다 화술이 좋다는 얘기도 들었고, 자꾸 역할을 줬다. 전국연극제 경기도 대표 작품에 처음엔 코러스(앙상블)로 시작했다. 홍난파 선생 이야기였는데, 진짜 3년을 죽어라 했다. 결국 '박고지'라는 노역으로 상을 받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 서울에 올라와서는 극단 미추를 선택했다. 어떤 이유였는가.

▲ 서울 극단을 일일이 조사해 봤다. 그런데 극단 미추만 교육 커리큘럼이 있었다. 연기 수업, 트레이닝이 체계적으로 잡혀 있었다. 다른 극단엔 그런 게 거의 없었다. 그래서 '여기다' 싶었다.

-- 그 극단의 훈련이 그렇게 좋았나.

▲ 나는 '훈련은 뭐든지 좋다' 주의로 살았다. 배우에게 나쁜 훈련은 없다. 배움은 배우의 무기고, 숨 쉬는 것도 공부라고 생각한다. 마음만 먹으면 다 내 것이 된다고 믿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미추의 커리큘럼은 좋았고, 기본기가 거기서 많이 다져졌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 구체적으로 어떤 훈련을 받았나.

▲ 화성학도 했고, 몸 쓰는 건 거의 다 했다. 배우에게 필요한 건 '신체 트레이닝'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걸 '감각 트레이닝'이라고 한다. 몸을 자기가 통제해야 표현도 정교해진다. 팔 하나를 들어도 각도에 따라 감정이 달라진다. 그런 걸 하려면 몸 훈련을 다 해야 한다. 현대무용, 재즈, 한국무용 등도 했고 미추라서 한국무용은 기본이었다. 재미있었던 건, 미추산방에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들이 들어오면서 '스타니슬랍스키의 즉흥 상황극'(Etude)을 막 뜨끈뜨끈하게 들고 왔다. 그 친구들은 실험해야 하고, 우리는 새로운 걸 배우니까 서로 '윈윈'이었다. 파리에서 공부한 친구들도 합류하면서 나는 속으로 '땡잡았다' 했다. 그렇게 15년 동안 대부분은 코러스였지만, 그 힘으로 지금까지 배우 노릇 하고 있는 거다.

-- (박현서 배우) 15년 무명이라니…선배님을 보니 태양 앞에 선 기분이 든다(웃음).

◇ "전통 연기, 생활 연기? 연극엔 연극만의 언어가 있다"

-- 마당놀이 연기를 오래 하다가, 이른바 '생활 연기'가 요구되는 작품을 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

▲ 사실, 좀 무식해도 된다.(웃음) 나는 그 차이를 잘 모르겠다. 요즘은 정통 연기, 생활 연기 이렇게 나누기도 하는데 내 지론은 '연기는 다 똑같은 거지'라는 생각이 강하다. 주변에서 "너희는 정통 연기라 연기가 거칠어", "짚신 냄새 나, 토속적인 냄새 나"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보인다니 '그러면 그렇겠지' 했다. 내 뿌리가 한국무용, 마당놀이 극단이니까. 그건 오히려 제 장점이라 생각한다. 반론을 하나 제기하자면, 연극에는 연극만의 언어가 있다. 체호프나 셰익스피어 같은 고전을 완전히 생활 연기 톤으로 하면 이상하게 안 맞는 부분이 있다. 셰익스피어 무대에서 "야, 너 밥 먹었냐?" 하면 웃기지 않은가. 그 '높이'가 필요한 게 연극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미추가 워낙 대극장용 작품을 많이 해서 나도 17년을 대극장에서 굴렀으니, 표현이 좀 크긴 하다.

-- 대극장이 정말 잘 어울리시는 배우시다.

▲ 그건 인정한다. 근데 "너 생활 연기는 안 돼" 이 말은 인정 못 한다.(웃음) 내가 생활 연기를 보여드릴 기회가 적었을 뿐이고, 앞으로 보여드릴 기회가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 "20년 버텼는데, 상 하나는 오겠지"…'허삼관 매혈기'와 눈물의 상

-- 2020년 이해랑연극상 심사평에 "좋은 발성과 훌륭한 앙상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느낌"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에 앞서 중요한 분기점이 바로 연극 '허삼관 매혈기'였다.

▲ '허삼관 매혈기' 하자고 해서 대본을 읽었는데, '이건 딱 내 스타일이다' 싶었다. 내가 과하게 하는 걸 불편해하는 편인데, 이 작품은 뭘 보태지 않아도 대본 자체가 좋았다. 책에 있는 대사만 그대로 읽어도 갈 수 있었다. 전체 줄거리는 막장에 가깝지만, 대본이 탄탄했다. 그런데 내가 그 작품의 주연으로 발탁됐다. 깜짝 놀랐다.

-- 그 결과 2003년 히서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상', 2004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연달아 받았다.

▲ 사실, 당시에 내가 주위에 '예상은 했다'고 말했다.(웃음) 20년을 그렇게 했는데, 뭐 하나는 안 오겠나. 안 오면 말고. 20년 했으면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말이다. 히서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상'을 받을 때는 정말 아기처럼 울었다. 수상 소감 하면서도 엉엉 울었다. 지나고 보니, 그 상을 내가 얼마나 받고 싶어 했는지, 얼마나 인정받고 싶어 했는지 알았다. 연극 평론가 구히서 선생님이 한국일보 기자 시절부터 연극을 진심으로 사랑하신 분이라, 그런 분께 인정받았다는 게 더 울컥했다.

◇ 암 수술 이후의 눈물, 그리고 또 다른 길

-- 이후에도 수많은 작품으로 내공을 쌓았지만, 한때 갑상샘암으로 투병도 했다. 무대에서 잠시 떨어져 있었던 시간은 어땠나.

▲ 17년 만에 처음으로 남이 해주는 '정식 세끼 밥'을 먹어본 게 병원이었다. 누가 병원 밥 맛없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너무 맛있었고 그렇게 잘 쉬고 나왔다. 그런데 퇴원하고 나니 재공연 제안이 우르르 왔다. '오이디푸스', '고곤의 선물', '대학살의 신' 등 내가 다 아끼는 작품들이었다. 특히 '대학살의 신'은 한태숙 연출팀에 내가 새로 합류하는 거라 더 욕심이 났다. 퇴원 한 달쯤 지나 목소리도 어느 정도 돌아와서 연습에 들어갔는데, 문제는 템포였다. 다들 한 번 해본 팀이라 속도가 엄청 빠른데, 목 근육이 못 버텼다. 움직이질 않는 느낌이 와서 '아, 이건 욕심이다. 지금은 안 되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한태숙 연출에게 "정말 너무 하고 싶은데, 안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연출님도 "그래, 오케이" 해주셨는데, 집에 와서… 암 수술할 때도 안 울었던 내가 그날은 엉엉 울었다. '아, 이건 내 것이 아니구나. 인생이란 게 이렇게만 좋을 수는 없구나'라는 걸 몸으로 배운 순간이었다.

-- 그런 좌절 뒤에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고 들었다.

▲ 그때 SBS 홍창욱 PD가 드라마 제안을 했다. '명성황후' 역할이라는데, 내가 "그걸 제가 어떻게 해요?"라고 했다.(웃음) 홍 PD님이 "이름만 큰 역이고, 실제 분량은 적다"고 하셔서 용기 내서 들어간 게 SBS 드라마 '제중원'이다. 그걸로 드라마 데뷔했다. 촬영 후에 "저 사람 누구야, 왜 이렇게 목소리가 좋아?"라는 반응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러고 나서 MBC '짝패'에 캐스팅됐다. 연극을 못해 좌절하고 있던 때, 또 다른 길이 내 앞에 열렸다.(2편에서 계속)

<기획·제작총괄 : 김희선, 구성 : 민지애, 진행 : 김수미·박현서, 촬영 : 박소라, 웹기획 : 박주하, 스튜디오 연출 : 박소라, 연출 : 김현주>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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