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국민이 복지에 중독돼”…연금개혁 결국 백기투항한 ‘이 나라’

김제관 기자(reteq@mk.co.kr) 2025. 11. 14.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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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하원 중단안 가결
대선 후 2028년으로 유예
野 예산 협조 얻으려 양보
7년간 정년 2년 연장 불구
국민 70% 반대·시위 거세
재정감축 계획 타격 불가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PA = 연합뉴스]
프랑스 하원이 시행한지 2년이 지난 연금개혁조치를 중단하고 재개 시기를 다음 대선 이후인 2028년으로 미루기로 했다. 여론과 야당의 반대에 마크롱 정부의 핵심 사업인 연금개혁을 중단하면서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1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하원은 이날 정부가 제출한 연금 개혁 일시 중단안을 찬성 255표, 반대 146표로 가결했다. 이에 따라 정년 연장을 골자로 한 연금 개혁안은 차기 대선 후인 2028년 1월까지 유예된다.

마크롱 정부는 재정 적자를 줄이고 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연금 개혁법을 2023년 9월부터 시행했다. 당시 야당과 여론의 반대에도 정부는 의회 표결을 생략할 수 있는 헌법 특별 조항을 이용해 개혁안을 밀어붙였다.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혁안은 정년을 기존 62세에서 매년 3개월씩 늘려 2030년까지 64세로 연장키로 했다. 또 연금을 100% 수령하기 위해 기여해야 하는 기간도 기존 42년에서 2027년까지 43년으로 늘렸다.

여론과 야당은 연금개혁이 몰고오는 긴축재정에 대해 반발했다. 프랑스 주요 여론조사기관의 집계에 따르면 연금개혁 반대 비율은 꾸준히 70% 안팎을 유지해 왔다.

노조는 연금 수령 시작 연령을 늦출 경우 퇴직 후 소득 공백이 발생해 노후 대비가 더 어려워져 저소득층이 받는 타격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대기업과 부자로부터 세금을 충분히 걷지 않고, 그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려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9월 18일(현지시각) 프랑스 니스에서 열린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마크롱, 나가!”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EPA = 연합뉴스]
프랑스 청년세대도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연금 개혁이 ‘기성세대가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젊은 층과 노조의 불만은 올해 대규모 시위로 폭발했다. 파리·리옹·마르세유 등 주요 도시에서는 수백만 명이 참여한 시위가 반복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시위가 폭력 충돌로 이어졌다.

마크롱 정부는 연금 개혁을 핵심 정책으로 추진했지만 소득 감소를 반대하는 여론에 올라탄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행태와 노조 등 강경 반대세력의 과격 시위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시기적으로도 마크롱 정부에 불리했다.

내년도 예산안 통과를 위해 야권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해진 상황은 연금 개혁 일시 중단에 결정타로 작용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 마크롱 대통령은 연정 구성에 번번이 실패했다. 그 결과 지난 2년간 총리가 다섯 번이나 교체되는 혼란이 계속됐다.

12일 연금 개혁 중단 논의중인 프랑스 하원 [로이터 = 연합뉴스]
이날 의회 표결에서 사회당, 녹색당 등 온건 좌파 진영과 극우 국민연합(RN)은 찬성표를 던졌다. 사회당의 올리비에 포르 대표는 “마크롱 정권의 절대적 상징이 흔들렸다. 이는 단계적 승리”라고 엑스(X·옛 트위터)에 올렸다.

반면 연금 개혁 지속을 요구해 온 우파 공화당은 반대표를 던졌다. 공화당의 브뤼노 르타이오 대표는 “연금 개혁 중단은 항복이다. 정부가 정치적 생존을 위해 젊은 세대의 미래를 희생시킨 비겁함에 경악스럽다”고 비판했다.

극좌 성향의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와 공산당은 이번 안이 연금 개혁 시행을 단순히 ‘연기’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반대표를 던졌다. 집권 여당인 르네상스 소속 의원들은 기권했다.

이번 표결은 지난 2년 가까이 이어진 연금개혁 갈등이 일단락되는 전환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좌파 정당들은 르코르뉘 총리를 지지할지 여부를 놓고 여전히 분열돼 있고, 극우와 극좌 강경파 정당들은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있어 정치적 갈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마크롱 정부는 당장 정치적 위기를 넘겼지만, 연금 개혁 중단에 따라 내년 재정적자를 300억유로(약 51조849억원) 줄이려는 정부의 목표는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게 됐다.

프랑스의 지난해 재정적자는 총 1686억유로(약 287조971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5.8%에 달해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이어 유럽연합(EU)에서 세 번째로 높다. 공공 적자는 EU 규정이 허용하는 60% 상한선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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