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재탄생] 호텔·공항 영어체험 한곳에서…“외국에 온 듯 실감나게 배워요”
‘가갸거겨’ 하던 학교 ‘ABCD’로 시끌
영천시 주도 지역재생·교육혁신 추진
다양한 테마 공간서 생생 체험학습
원어민 교사 지도, 무료 수업 입소문
성인반도 개설…방학 땐 캠프 ‘인기’

“굿 모닝!”
아이들이 ‘가갸거겨’를 따라 하던 시골 학교 교실에서 원어민 교사들의 영어 인사가 울려 퍼진다. 학생수 감소로 문을 닫았던 경북 영천의 한 초등학교가 아이부터 어른까지 영어의 꿈을 키우는 교육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영천시 녹전동의 폐교된 영북초등학교에 새롭게 문을 연 ‘영천영어타운’ 이야기다.
‘Yeongcheon English Town(영천 잉글리시 타운)’이라 새겨진 조형물을 지나 아담한 운동장으로 걸어 들어가면 옛 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한 영어타운 본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건물 외벽이 빨강·노랑·초록 등 생기 넘치는 색감으로 꾸며져 있다. 한쪽 벽면에는 ‘세계로 통하는 관문’을 뜻하는 문구 ‘The Gateway to the World(더 게이트웨이 투 더 월드)’가 붙어 있는데, 이곳이 글로벌 영어교육 시설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북초가 2007년 폐교되자 지역주민들의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인근에 변변한 학원조차 없는 상황에서 학교라는 믿음직한 울타리마저 사라지자 마을 존립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딱한 사정을 전해 들은 영천시는 학교 부지를 활용해 영어교육 시설을 조성하기로 했다. 영어교육에 관심이 많던 당시 영천시장은 소유주인 경북도교육청의 협조를 얻어 ‘체험형 영어교육 센터’ 건립을 추진했다. ‘지역재생’과 ‘교육혁신’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담아 시설 명칭을 ‘영천영어타운’으로 정했다.
영천시와 경북도교육청은 대구·경북 지역 영어마을을 탐방하며 운영 사례를 조사했고, 면밀한 검토와 계획을 거쳐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시가 4억원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도교육청이 리모델링 공사비를 부담해 학교가 문을 닫은 지 1년여가 흐른 2008년 10월 영천영어타운을 개원했다.




본관의 기존 7개 교실은 호텔·공항·병원과 다목적 강의실 등 다양한 주제별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영어를 사용하는 실제 환경을 그대로 재현해 학생들이 실생활처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영천영어타운엔 박혜민 총괄 교사와 원어민 교사 4명, 한국인 방과후 영어 교사 1명 등 8명이 일한다. 원장은 박광일 영천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이 겸직하고 있다.
이곳은 영천시 내 18개 초등학교 학생의 영어교육을 담당한다. 매일 오전엔 4∼6학년을 대상으로 정규 수업을 진행하고, 오후엔 3∼6학년까지 들을 수 있는 방과후 수업을 운영한다. 이밖에도 영어리딩반·영어영재반·문화반 등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학생 참여를 이끌고 있다. 원어민 교사의 열정적인 지도에 힘입어 학생수가 꾸준히 증가했고, 개원 2년 후엔 성인 대상 영어회화반도 개설했다. 모든 수업이 무료로 제공되고 교육효과가 크다는 입소문이 전해지면서 지역민의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박 총괄 교사는 “영어타운에서 근무하는 원어민 교사들은 교육부가 주관하는 EPIK(English Program in Korea)를 통해 선발된 정예 요원”이라며 “학생들의 실질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주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3년 이상 꾸준히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선생님이 잘 알려줘서 영어가 좋아졌다”거나 “체험 부스에서 선생님과 대화하면 외국에 온 것 같아서 신난다”고 입을 모은다.
방학이 되면 영천영어타운은 평소보다 더 많은 아이들로 북적인다. 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무료 영어캠프가 열리기 때문이다.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배우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히는 프로그램은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사이에서도 만족도가 높다. 캠프마다 교직원들이 새로운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춰 직접 교재를 기획·제작하는 등 프로그램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영어타운 수업은 한 학기에 한번 교실을 벗어나 지역으로 향한다. 마을 장터에서 오란다와 고추장을 만들고 박물관이나 아이스링크를 체험하며 영어를 몸으로 익힌다. 원어민 교사와 함께하는 문화체험에 신난 아이들은 “영어가 진짜 재미있어요!”라고 말한다.
박 원장은 “영천영어타운은 지역 내 유일한 원어민 영어교육 공간”이라며 “면 단위 학교 학생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스쿨버스 2대를 운행해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폐교가 다시 살아난 이곳에서 아이들은 영어로 꿈을 꾸고, 지역은 활력을 되찾고 있습니다.”
영천=박자원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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