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안 무섭다' 일본 곰의 무서운 진화 [세계는 왜]

곽주현 2025. 11. 14.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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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만 건 출몰, 5년 래 최다
도시 밖 인구 감소로 서식지 확대
'민가에 먹이 많다' 학습 가능성
북미 곰과 달리 인간 공격성 강해
편집자주
매일 보도되는 국제 뉴스를 읽다 보면 사건의 배경이나 해당 국가의 역사 등을 알지 못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5월 9일부터 격주 금요일에 만날 수 있는 '세계는 왜'는 그런 궁금증을 쉬운 언어로 명쾌하게 풀어주는 소화제 같은 연재물입니다.
지난달 25일 일본 아키타현 인근 산 입구에 곰 출몰 경고문이 붙어있다. 아키타=AFP 연합뉴스

이달 7일 일본 홋카이도 남부 도로를 달리고 있던 자동차 앞에 갑자기 거대한 물체가 나타났습니다. 기겁한 운전자가 눈을 깜빡이는 사이 이 물체는 일어서서 자동차를 똑바로 마주 봅니다. 2m가 족히 넘는 키에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침을 흘리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곰입니다. 운전자가 곧바로 차량을 후진시켜 도망가는데 곰이 무서운 속도로 차를 쫓아오더니 보닛 쪽을 강하게 후려칩니다. 차체가 강하게 흔들리고, 혼비백산한 운전자는 최고 속도를 밟아 재빨리 현장을 벗어납니다. 곰은 한참 동안이나 이 차를 쫓아갔습니다.

다행히 이 사건에선 다친 사람이 나오지 않았지만, 곰이 자동차를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쫓아갔다는 점에 주민들의 공포심은 더 커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들어 일본에서는 곰의 습격으로 죽거나 실종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지난달 12일 홋카이도 지방의 한 주택가에서 신문을 배달하던 70세 남성이 사망했고, 17일에는 도호쿠 지방 이와테현에서 온천 직원이 안경과 샌들만 남긴 채 실종됐습니다. 산속에서 버섯을 채취하던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되는 일도 계속 보고되는데, 수색 중 머리가 없는 시신이 발견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모두 곰 소행입니다.

일본 환경성 분석 결과, 올해 4~9월 전국 곰 출몰 건수만 2만 건을 넘어서면서 지난 5년 내 최다 기록을 세웠습니다. 일본 NHK방송에 따르면 이달 11일 기준 곰에 의한 인명 피해는 전국 21개 도도부현에서 최소 220명에 달했는데, 이는 종전 최대 피해 건수를 기록했던 2023년(219명)을 넘어선 수치입니다. 이 중 사망자 수만 13명(2023년 6명)에 달합니다. 어쩌다 일본은 '곰과의 전쟁'을 벌이게 된 걸까요.


늘어난 개체 수... '신세대 곰'의 출현

지난달 7일 일본 군마현 누마타시의 한 슈퍼마켓 내부에서 곰이 돌아다니고 있는 폐쇄회로(CC)TV 장면. 경찰이 제공하고 지지통신이 보도했다. AFP 연합뉴스

원래 곰은 경계심이 강하기 때문에 일본 국토 3분의 2를 차지하는 삼림 지역에 숨어 살았습니다. 전후 곰 사냥이 유행하면서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곰 사냥을 금지하고 도시 밖 인구 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곰의 서식지는 넓어졌습니다. 일본 환경성에 따르면 2003년부터 15년 동안 곰 분포 지역은 홋카이도에서 1.3배, 혼슈에서 1.4배 확대됐습니다.

그사이에 곰의 성향도 바뀌었습니다. 곰의 출몰 지역이 인적 드문 산속이 아닌 민가와 도심으로 옮겨간 것이 대표적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신세대 곰'이 등장했다고 설명합니다. 곰들이 사람을 봐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는 겁니다. 곰은 학습 능력이 높고 과거의 경험을 많이 축적하는 동물로, 부모 세대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합니다. 곰의 '한 세대'는 1년 반에 불과하죠. 올해 이전 곰 출몰 건수가 가장 많았던 2023년 '사람들이 사는 곳에 내려가면 음식을 구할 수 있다'고 학습한 곰들은 이를 자식 세대에 전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곰이 다른 나라 곰보다 훨씬 포악하고 공격적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미 와이오밍주 지역 매체 카우보이스테이트데일리는 일본의 곰이 시베리아 호랑이가 서식하는 대륙 지역에서 진화한 아시아흑곰으로, 북미에서 발견되는 것과는 종이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겁을 주면 도망가는 북미흑곰과 달리, 아시아흑곰과 불곰은 훨씬 사납고 사람을 끈질기게 공격한다는 겁니다. 재팬타임스 분석에 따르면 일본에서 곰에게 사람이 살해될 확률은 미국에 비해 4.2배 높다고 하네요.

곰의 주식인 너도밤나무 열매가 '대흉작'이 된 것도 2023년부터입니다. 올해도 곰 출몰이 잦은 5개 현에 흉작이 들었습니다. 곰들이 먹을 것을 찾아 민가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거죠. 최근에는 곰들이 나무 열매를 먹어야 할 봄 시기에 살아 있는 사슴을 잡아먹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곰 출몰 사건이 가을에 집중됐던 과거와 달리 올해는 4~6월에도 37명의 부상자가 나왔습니다.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곰의 먹이 환경도 상당히 달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긴급 사냥' 가능해졌지만 한계... 자위대도 후방지원만

피해자가 급증하면서 일본 정부도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일단 정부는 올해 9월 조수보호관리법을 개정해 '긴급 사냥'이라는 이름 아래 경찰 협조 없이도 사냥꾼이 곰을 즉시 사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난달 15일 센다이시에서 처음으로 긴급 사냥이 진행됐고, 점점 더 많은 지역에서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는 전적으로 개인들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맹점이 큽니다. NHK 조사에 따르면 많은 지역에서는 비품이 부족하거나 사고 발생 시 보험 여부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긴급 사냥 제도 운영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사람이 사냥꾼 총에 맞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법적인 문제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사냥꾼들이 지자체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하려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NHK는 "애초에 취미로 사냥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민의 생명을 의존하는 현재의 체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방 정부 단위 해결이 불가능해지면서 이제는 자위대까지 동원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달 27일 곰 피해가 가장 심각한 아키타현에서 방위성에 자위대 파견을 요청했고, 방위성은 이달 5일부터 아키타현 곰 피해 대책 지원 활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 헌법에 따라 자위대의 무기 사용은 엄격히 금지됩니다. 자위대가 곰을 만나더라도 직접 사냥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일단 자위대는 총기를 사용하지 않고 곰 사냥에 나서는 멧돼지 사냥협회 회원 등에게 덫을 옮겨주는 등 '후방 지원'만 담당하기로 한 상태입니다. 과거 사례와 현행 법률을 검토했을 때, 당장 자위대가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건 어려워 보입니다.

일본 정부는 아직도 곰 개체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국 단위 체계적인 대책이 나올 수가 없는 상태인 거죠. 현재 일본 뉴스에서 찾을 수 있는 대책은, 편의점에 곰 퇴치 스프레이를 배치하고 곰이 좋아하는 감나무를 베어내도록 주민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등 다소 지엽적입니다.


곰 나타날라... 도시의 풍경이 바뀐다

나카에 하지메 일본 아키타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지난달 26일 야생 곰을 마주쳤을 때 사람이 취해야 하는 자세를 설명하고 있다. 아키타=AFP 연합뉴스

곰 출몰이 흔해지면서 도시의 풍경도 바뀌고 있습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키타현 아키타시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이달 6일 육상 대회를 진행하면서 경기 방식을 바꿨습니다. 기존에는 도심 공원이 달리기 코스에 포함됐는데, 최근 주변에서 곰 목격 신고가 들어오면서 경기장 안에서만 달리기로 한 겁니다. 대회 중에는 곰이 접근하지 못하게 음악과 폭죽음 등이 크게 울려 퍼졌고, 경기장 근처에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됐습니다.

이 밖에 야마가타현 사카타시 수도 검침 업체는 직원들에게 곰 퇴치 스프레이 등을 지급하고, 곰이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진 시간대 업무를 피하도록 조치했습니다. 일본우편은 곰 출몰이 확인될 경우 일시적으로 우편물 수거 및 배달 업무를 중단할 수도 있다고 최근 공지했고요. 곰 출몰이 잦은 도시의 경우 아예 밤거리를 걷는 사람 수가 줄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과연 적절한 대책은 무엇이 있을까요? 확실한 건 일본인들은 더 강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NHK가 11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곰 피해 관련 '정부 대응이 더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은 71%로, '현재 대응으로 충분하다'(19%)는 의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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