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택의 그림 에세이 붓으로 그리는 이상향] 89. 속초시립박물관을 다녀와서
대낮처럼 밝혀진 가을마당 떠올라
전쟁 후 턱없는 재료로 만든 깔대기
기능 충실한 정직한 조형미 돋보여
소임 다한 쭈그러진 간드레 등잔
세월이 남긴 경건한 형태미 선사
굴 채취 도구 조새 곽상의 미 체감
실용적인 아름다움 본질 나타내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서 … 유물에서 발견한 미의식 뿌리
달포 전(9월 26일) 속초시립박물관에 가 유물을 관람했다. 두 번째 방문.

# 호야등
석유를 넣은 그릇의 심지에 불을 붙이고 유리로 만든 등피를 끼운 등이다. 다른 우리말로 남포등이라고도 한다. 아직도 이 호야등을 보면 저절로 넓은 들판처럼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흡족해진다. 잔물결에 흔들리는 가을 풀같이 사부자기 마음이 고요해진다.
어린 시절 늦가을의 추수철, 툇마루 언저리까지 밀려났던 산 그늘이 가만히 추녀를 타고 넘고 사방에서 잿빛 어둑발이 스물스물 내려앉으면 어김없이 부엌이나 마루 옆 기둥에 이 호야등이 매달렸다. 우렁우렁 탈곡기로 벼를 훑으면 감청색 남기가 묻은 여닫이문의 문풍지가 바르르 떨리곤 했다.

# 깔때기
남포등 같은 등잔에 석유를 넣는데 사용된 도구이다. 처참한 한국전쟁을 겪은 직후, 한국인들은 턱없이 부족한 재료를 가지고도 이렇게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었다. 함석판을 잘라 접고 붙여 모양을 낸 이 물건에서 나는 뛰어난 조형미를 보았다. 이 얼마나 건강하고 정직한가. 건강하다는 말은 구조가 군더더기가 없이 알차고 용도에 따라 주어진 기능이 쓸모 있다는 뜻이고, 정직하다는 것은 장식에 허식과 잔재주가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그냥 우연히 나온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싹이 터서 수천 년 동안 생활 속에서 단련한 미와 손맛이 버무려져야 비로소 가능하다. 생활미의 조촐한 터전 속에서 우리 조상들이 만든 수많은 공에품을 보라. 건강과 정직이라는 말뜻이 제대로 밴, 한국미의 본성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결정체들이 아닌가.

# 간드레 등잔
어로 도구이다. 코를 베어 가도 모를 밤바다의 어둠 속에서 모진 샛바람에 얼마나 흔들리고 부딪쳤으면 이런 모양이 되었을까.

# 조새
중국 서진의 사상가 곽상(郭象)은 말했다. “하늘의 아름다움과 비견될 지상의 미는 곧 소박미이다.”
#누구 #유물 #미의식 #호야 #발견
Copyright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 ‘암표 팔면 수익금 10배 이상 과징금’…신고포상제도 도입 - 강원도민일보
- ‘항문에 은닉’ 유럽서 45억대 마약류 밀반입 유통한 일당 검거 - 강원도민일보
- 英 비트코인 9조원 압수 ‘사상 최대 규모’…자금세탁 중국인에 징역 11년8개월 선고 - 강원도민
- 강원 대표 IT기업 더존비즈온, 1조3000억원에 외국계 자본 품으로 - 강원도민일보
- ‘원산지 허위 표시 의혹’ 백종원 무혐의…실무자는 검찰 송치 - 강원도민일보
- 속초 물회·춘천 닭갈비 강원 맛집 전국 상위권 랭크 - 강원도민일보
- 강원 소형아파트 가격 ‘천정부지’…미분양 증가 우려 - 강원도민일보
- ‘논알코올’ 점심회식 증가에 주점·호프집 사라진다 - 강원도민일보
- "지름 60cm" 초대형 말벌집 제거 작전 - 강원도민일보
- [집중진단] 춘천 수열에너지클러스터 미분양 장기화 - 강원도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