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돌고 나니] 첫눈 오기 전에 마쳐야 할 일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2025. 11. 13.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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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 고산 지역은 평지보다 해가 빨리 진다. /이주연 제공

첫눈이 오기 전에 마쳐야 할 일이 있다. 농사일은 자연이 끝없이 순환하듯 끝이 없다. 가을엔 수확하는 것뿐만 아니라 봄을 준비해야 한다. 농사는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인간은 자연과 계절의 순환을 어기고 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서울 일을 뒤로하고, 서둘러 평창 산마루 공동체 골짜기로 향했다. 시간이 오후 4시 조금 지났는데 벌써 해가 산등성이에 걸쳐 넘어가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급경사 진입로 공사를 조금이라도 더 해야 한다. 어둠 속 급경사 공사는 매우 위험하다. 사고 경험이 있어서 아주 조심스럽다.

진입로를 완성하면 숲속에 들어가 나무를 베고 운반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울창한 숲속 일은 아무 때나 할 수 없다. 나뭇잎이 떨어져야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을걷이를 마치고 바로 농지 개간을 한다. 이전에 화전을 하다 버려둔 밭은 잡목을 뿌리째 걷어내야 한다. 세 곳 중 마지막 한 곳을 개간 중이다.

굴삭기 시동을 걸자 엔진 소리가 힘차다. 경사각 30도 이상 비탈이지만, 잘 올라가 준다. 5년 된 중고를 사서 7년째 사용 중이지만, 힘은 여전하다. 그러나 창틀이 진동으로 떨어져 나가고, 운전석 플라스틱 커버는 변형이 와서 덜덜거린다. 1시간 만에 잡목, 칡넝쿨과 큰 돌들을 다 제거해 진입로를 개척했다. 형제들이 내가 없는 동안 공사에 필요한 잡석을 미리 준비해 고마웠다.

일을 마치고 장비에서 내리니, 해발 800m의 산바람이 온몸을 파고든다. 벌써 초겨울 같은 찬바람이지만, 머리와 마음속은 후련하다. 어둠이 계곡을 삼키니, 고요함과 깊음이 찾아든다. 달은 얼굴을 내밀고, 별들이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낸다. 태곳적 신비가 하늘 가득하다. 창조주의 숨결을 실감하며, 그 신비에 감사 기도가 탄성처럼 인다.

뜻밖에 한 노인의 얼굴이 스친다. 정기적으로 나가는 서울역 광장 급식 때 뵌 분이다. 코로나 이후 확 줄었던 거리의 사람들이 또 늘기 시작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예배도 그렇다. 냄새도 심해진다. 생활이 어려워진다는 증거다. 급격한 고령화와 함께 극빈 노인도 늘고 있다. 광장에서 간편식을 드리는데, 한 노인이 내 손을 잡고 “목사님, 고맙습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하고 가다 다시 돌아와서 또 손을 잡고 고맙다 한다. 실로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분은 주일에 찾아와 예배도 드렸다. 반갑게 손을 잡으니 “목사님 말씀이 좋아요. 고마워요”라고 한다. 내가 평소 듣지 못하던 소리다. 내가 준 것을 1000배로 갚아 주는 셈이다! 무엇을 도와드릴까 하니, 빙긋이 웃는다. “저는 잘 살고 있어요. 쪽방이라 다리를 다 펴지 못하고 살아도 늘 감사해요. 부족함이 없어요.” 거리에서 만난 분이 찾아오면 흔히 도움 청하나, 그 노인은 아니었다. 나는 그가 주께서 보내신 위로자로구나 했다.

공동체 숙소에 당도하니, 한 형제가 화목 난로에 불을 피워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장작 타는 소리가 의식을 깨어나게 한다. 오늘은 평소 식사하며 듣던 음악을 끄고, 어둠의 소리를 묵상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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