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빠른 시대 … '느린 노동' 뜨개로 삶 엮은 취준생들 [가치탐구생활]
뜨개 독립 잡지 ‘떠바떠’ 탄생記
취준생 다섯명, 자신들의 모습인
번아웃 온 또래 청춘들 주목해
‘느린 노동’ ‘힐링’인 뜨개 주제로
독립 잡지 펼쳐낸 5개월의 모험
독립 잡지를 만든다는 건 낭만을 넘어선 모험이다. 해마다 위축되는 출판시장 속에선 잡지 한 권을 펴내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기자 지망생 5명이 모여 '뜨개 독립 잡지'를 만드는 모험을 함께 떠났다. 인생의 파도 속에서 방황하던 찰나에 만난 그들의 여정은 한권의 잡지를 엮는 일을 넘어 자신을 엮는 과정이었다.
![뜨개 독립 잡지 '떠바떠'를 들고 있는 희수ㆍ금산ㆍ지우.[사진 | 더스쿠프 포토]](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3/thescoop1/20251113185935710kzdg.jpg)
"뜨개 잡지 함께 만들지 않을래?" 그 말 한마디가 취준생 다섯 명의 마음을 엮었다. 다니던 회사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정금산(30), 대학 졸업 후 방황 중이던 박지우(28), 가치 있는 일을 찾던 전희수(28), 대학 조교로 일하던 차한별(27), 학원 강사를 했던 서현지(26).
이들은 취업 준비로 지치거나, 일터에서 번아웃을 겪는 또래의 청춘들을 주목했다. 불안과 피로가 일상이 된 2030세대, 바로 자신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은 '느린 노동, 뜨개'를 주제로 삼아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 마음이 쉽게 지치는 시대를 역행하겠다는 것, 그 자체로 '모험'이었다.
기획, 섭외, 취재, 편집, 디자인, 텀블벅 펀딩까지. 5개월간 '독립 잡지 만들기' A to Z를 함께 경험한 '떠바떠'팀의 멤버들. '처음'투성이인 이들의 뜨거웠던 5개월은 어땠을까.
✚ 한국의 첫 뜨개 잡지 '떠바떠', 그리고 '떠바떠'팀을 소개해주세요.[※참고: '떠바떠'는 '뜨개 떠봤어?'를 귀엽게 발음해 만든 이름이다.]
금산 : "'떠바떠'팀은 한국잡지교육원의 취재기자 양성과정에서 만난 동기들입니다. '떠바떠'는 뜨개 입문자를 위한 '뜨개 가이드북' 같은 잡지예요. 철저하게 초보자의 시선에서, 초보자가 궁금할 내용들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실 써봤어?'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이소에서 구할 수 있는 실을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또 에세이, 인터뷰, 인스타툰으로 뜨개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뜨개라는 따뜻한 주제에 젊은 세대 특유의 키치(kitsch)한 감성을 녹이고 싶었습니다."
키치의 사전적 의미는 '미적으로 품위가 없고 저속함'이다. 요즘은 익살스럽고 개성적인 패션 혹은 감성을 이르는 표현으로 쓰인다.
✚ 잡지라는 매체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잡지의 매력을 알려주세요!
현지 : "잡지는 한 사람의 글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조각이 모여 완성되는 책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느꼈어요. 각자의 생각과 시선, 감각이 한권 안에 어우러져 있죠. 무엇보다 '물성'이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디지털 화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손에 잡히는 감각이 있으니까요."
✚ 잡지를 만들며 첫 취재를 했을 텐데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지우 : "뜨개계의 아이콘인 '바늘이야기(쇼핑몰)' 김대리님을 섭외했던 과정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더현대에서 바늘이야기가 팝업을 진행하고 있을 때였는데, 인터뷰 요청을 하러 무작정 갔어요. 거절을 각오하고 있었죠. 김대리님 주위를 한참 맴돌며 고민하다가 용기를 끌어올려 취지를 밝히고 인터뷰 요청을 했는데, "한국 뜨개 잡지면 당연히 해야죠"라는 말과 함께 수락을 받았죠. 그때 느꼈던 희열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팀원들과 함께 "우리 됐다!"하면서 엄청나게 기뻐했어요."
![[자료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3/thescoop1/20251113185936991wgoo.jpg)
✚ 힘들었던 점은요?
희수 : "잡지를 만들었던 시기와 취업 준비 시기가 딱 맞물리며, 계속 잡지를 붙잡고 있는 게 맞을까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 시간에 자기소개서를 한번 더 고치는 게 낫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잡지를 만들 때 도움 주셨던 분들, '기대한다'라고 해주셨던 분들이 정말 많았죠. 그분들과의 약속, 그리고 함께 밤새우는 멤버들을 떠올리며 끝까지 갔습니다."
✚ 그 응원을 현실로 옮기는 데에 텀블벅 펀딩이 큰 역할을 했는데요. 텀블벅 펀딩을 선택한 이유와 펀딩 성공 후 느꼈던 감정이 궁금합니다.
한별 : "당시 멤버 전원이 취준생이었기 때문에 잡지 제작비를 자비로 충당하기에는 부담이 커서 텀블벅 펀딩을 선택했습니다. 텀블벅 홍보를 위해 연희동의 카페, 식당, 서점 등을 돌며 전단지를 붙였죠. 거절도 많이 당했어요. 펀딩 목표 금액은 가장 최소 금액인 50만원으로 정했는데, 171명에게 약 370만원을 펀딩 받는 결과가 나왔어요. 펀딩 성공 후, 퀄리티가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지만 그 부담감이 동력이 돼 더욱 불태우듯 작업을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과정 전체가 좋은 경험이자 성장의 계기였던 것 같아요."
✚ 기관들의 도움도 받으셨나요?
금산 : "네, 마포구 청년 센터인 '마포청년나루'에서 창업 지원금을 받아 홍보비와 제작비를 일부 지원받았습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기관인 '서울인쇄센터'에서는 책을 만드는 수업도 받았고 무료로 책 샘플을 만들어볼 수 있었어요. 인쇄의 경우 모르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곳 인쇄 전문가에게 많은 질문을 하며 진행했습니다. 한국잡지교육원 선생님들의 애정 어린 조언은 물론이고요. 독립 잡지를 처음 만드는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됐습니다."
✚ 완성된 잡지를 손에 쥐었던 순간이 기억나시나요?
현지 : "벅찼어요. 막판 작업으로 피곤에 절어 있었는데, 그 순간 피로가 싹 사라졌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만들었구나'라는 뿌듯함과 함께 지금까지 작업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어요. A부터 Z까지 동료들과 함께 만든 결과물이 눈앞에 있으니 감정이 북받쳤습니다."
✚ 그렇다면 뜨개는 2030세대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한별 : "설문조사 코너를 통해 뜨개인 100명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들었어요. '나에게 뜨개가 어떤 의미를 주는지'라는 물음에 '애증의 관계' '정신적인 요가' '삶의 터닝포인트' 등 다양한 답변을 얻었습니다. 뜨개는 바늘과 실만 있다면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손에 감기는 따뜻한 촉감에 저절로 복잡한 생각들을 떠나보낼 수 있고요. 요즘 지쳐있는 2030세대들에게 뜨개는 하나의 위로처럼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뜨개 카페와 매장들이 평일에도 북적이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뜨개를 즐기는 '뜨개 상영회'가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죠."
![한국의 첫 뜨개 잡지 '떠바떠'.[사진 | 더스쿠프 포토]](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3/thescoop1/20251113185938238nadr.jpg)

✚ 뜨개질이란 존재가 멤버들에게도 힘이 된 적이 있을까요?
지우 : "저는 불안이 심한 성격을 다스리기 위해 뜨개질을 시작했어요. 무언가 벌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 심장이 뛰고, 손에 힘이 풀리거나 덜덜 떨렸죠. 그때 시작한 게 뜨개였어요. 원래는 그냥 누워있다가 답 없는 현재와 어두운 미래를 그리며 죽고 싶었는데, 뜨개를 시작하니까 그 에너지를 뜨개에 쏟게 되더라고요. '아, 죽고 싶다'가 '짧은뜨기 하나, 둘, 셋, 아, 몇개까지 했더라?'로 바뀌게 됐어요. 마냥 죽고 싶던 순간들을 엮어 뜨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죠. 저를 살린 취미였던 뜨개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
✚ 이번 경험은 멤버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나요?
희수 : "이 잡지를 만들기 전까지, '난 뭘 하며 살아가야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 잡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확신을 주고 나아가는 법을 배웠죠. 잡지를 만들면서 제 쓸모를 찾은 기분이에요. 이번 경험에서 배운 뜨거움을, 꺼지지 않는 불처럼 컸다가 작아졌다 리듬에 따라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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