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나당 연합군’ 수장된 정용진…쿠팡 아성 위협할 수 있을까

허인회 기자 2025. 11. 1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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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알리바바와 합작법인 이사회 의장으로…12년 만에 등기임원 복귀
‘주도권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지마켓 매각설도 수면 아래로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지난해 12월22일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 당선인을 만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신세계와 알리바바인터내셔널 합작법인 '그랜드오푸스홀딩스' 이사회를 이끌기로 했다. 지마켓 매각설을 잠재우며 초대 이사회 의장으로서 이커머스 사업에 사활을 걸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성공 가능성은 예단하기 어렵다. 쿠팡과 네이버의 존재감이 워낙 공고한 데다 알리바바의 자금력 종속 등의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신세계·알리바바 합작법인 그랜드오푸스홀딩은 이사회 구성을 완료하고 초대 이사회 의장으로 정 회장을 선임했다. 등기이사 선임 절차도 마무리됐다. 정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은 그랜드오푸스홀딩은 신세계그룹과 중국 알리바바인터내셔널이 5대 5로 출자해 설립한 합작법인이다. 지난 9월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승인으로 G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는 합작법인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정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는 2013년 ㈜신세계 및 이마트 사내이사직을 내려놓은 지 12년 만이다. 정 회장은 2011년 이마트 대표이사 선임 이후 계열사에 대한 부당 지원 의혹, 노조 설립 방해 의혹 등으로 잡음이 잇따르자 2013년 2월 사퇴한 바 있다. 이후 2020년 이마트 최대주주에 오른 뒤에도, 지난해 회장 승진 이후에도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등기임원은 법인의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미등기임원으로 경영에 나선 셈이다.

업계에선 정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는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특히 신세계그룹이 아닌 알리바바와의 합작법인으로의 복귀를 선택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분석이다. 지마켓 부활에 사활을 걸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2021년 미국 전자상거래 기업 이베이로부터 G마켓 지분 80.01%를 약 3조4400억원에 사들였다. 그러나 이커머스 시장에서 쿠팡과 네이버가 부상하자 고전을 면치 못하며 수년째 적자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이에 정 회장이 찾은 돌파구는 중국을 넘어 글로벌 상거래 플랫폼을 보유한 알리바바와의 합작이었다. 이커머스 시장 재패를 위한 현대판 '나당 연합군'을 결성했다는 얘기가 나온 이유다.

합작법인 설립에 이어 이사회 합류까지 결정한 정 회장의 선택은 알리바바와의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사회는 총 5명으로 정해졌는데 이 중 현재까지 알려진 멤버는 정 회장과 알리바바그룹의 해외 이커머스 사업을 책임지는 제임스 동 AIDC 인터내셔널 마켓플레이스 사장, 제임스 장 지마켓 대표,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 등 4명이다. 제임스 장은 알리바바의 동남아시아 플랫폼인 라자다를 공동 창업한 이커머스 전문가로, 지난 9월 지마켓의 새 수장으로 임명됐다. 합작법인의 운영 주도권이 사실상 알리바바로 기울었다는 해석이 나온 이유다. 업계에선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정 회장이 등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신세계 측은 "합작법인 이사회는 주요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시 만장일치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정 회장의 이사회 합류로 '지마켓 매각설'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는 평가다. 지난해 12월 알리바바와의 전략적 제휴가 발표된 이후 업계에선 향후 지마켓을 알리바바에 매각하려는 포석이 담긴 선택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정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만큼 현재로선 매각 가능성이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지마켓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제임스 장 지마켓 대표가 사업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에만 7000억 투자…이커머스 판 흔들까 

합작법인의 출범과 정 회장의 등판에도 갈 길은 멀다. 쿠팡과 네이버의 시장 지배력이 공고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쇼핑몰 거래액 기준 시장 점유율은 쿠팡 22.7%, 네이버 20.7%다. 지마켓은 10%에 미치지 못한다.

지마켓은 일단 투자를 통해 덩치를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21일 지마켓은 미디어데이를 통해 내년에만 약 7000억원에 달하는 비용 집행을 통해 셀러들이 가장 신뢰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2030년까지 거래액을 지금보다 100% 이상 늘려 대한민국 대표 오픈마켓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밝혔다. 제임스 장 지마켓 대표는 "지마켓이 다시 한 번 국내 1등 오픈마켓으로 올라서기 위해 국내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확장이라는 두 축의 중장기 전략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했다.

알리바바의 플랫폼을 활용해 해외 매출도 신장하겠다는 목표도 알렸다. 합작법인을 통해 G마켓 셀러 60만 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알리바바의 AI 기술을 활용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지마켓은 이미 알리바바의 동남아시아 지역 플랫폼인 라자다를 통해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필리핀·베트남 등 5개국에서 상품 2000만 개를 판매 중이다

다만 구체적인 움직임은 알리바바에서 먼저 시작됐다. 지난 9월 온라인 마트 채널 '알리프레시(Ali Fresh)'를 출시하며 신선식품 배송에 뛰어든 것이다. 이마트와 SSG닷컴이 새벽배송을 전개하는 만큼, 이들 물류망을 활용하며 한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넓히겠다는 의도다.

신세계그룹 측은 "지마켓을 자회사로 두는 합작법인 이사회 의장을 정 회장이 맡는 것은 알리바바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한 지마켓 재도약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며 "정 회장은 신세계그룹과 알리바바가 손잡은 합작법인 국내외 이커머스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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