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의 산림치유 일지] 뚱보 산신령의 변신, 그리고 숲의 환대

김상진 기자 2025. 11. 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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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등산을 오래도록 함께한 지인이 달라졌다.

60대 후반인 그는 새벽 등산을 30년 이상 해온 사람이지만, 비만이다.

그는 "저녁에 술을 마시기 위해 새벽 등산을 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소문난 주당(酒黨)이다.

대신, 그날의 새벽 등산이 내게 '짧지만 깊은' 가을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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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 Story 산림치유연구소장 / 산림치유지도사
김태일 Story 산림치유연구소장 / 산림치유지도사

새벽 등산을 오래도록 함께한 지인이 달라졌다. 60대 후반인 그는 새벽 등산을 30년 이상 해온 사람이지만, 비만이다. 그것도 단순한 비만이 아니라 자타가 인정하는 '뚱보'다. 그래서 나는 그를 '뚱보 산신령'이라 부른다. 그는 "저녁에 술을 마시기 위해 새벽 등산을 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소문난 주당(酒黨)이다. 밤에는 술을 마시고, 새벽엔 힘들다고 투덜대면서도 꾸준히 산에 오른다. 그의 끈질김이 늘 신기했다.

그런 그가 서너 달 전, 돌연 금주를 선언했다. 이유를 정확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건강에 적색경보가 켜졌던 모양이다. 새벽 등산회원 모두가 놀랐지만, 아무도 쉽게 믿지 못했다. 그는 워낙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는 3개월 동안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그의 몸이 증거였다. 3개월 만에 8kg이나 빠져 있었다.

뚱보 산신령은 이제 숲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듯했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조직의 명목상 회원이 아니라, 구성원으로부터 실질적인 환대를 받을 때 비로서 '성원권'을 가진다"라고 말했다. 뚱보 산신령은 30년 동안 숲을 누볐지만, 정작 숲으로부터 '성원권'을 받지 못한 '타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야 숲이 그를 받아들인 것이다.

가을이 산과 하늘을 단풍으로 물들였지만, 나는 그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했다. "바쁘다, 바빠"를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특히 11월은 주말에도 일에서 벗어나지 못할 만큼 정신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주말 새벽, 무작정 집을 나섰다. 처음엔 고산골로 가려다, 앞산 한 바퀴를 돌기로 했다. 가파른 '깔딱고개'를 힘겹게 오르다 하늘을 올려보는 순간,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페가수스 자리나 오리온 자리는 모르겠지만, 북두칠성의 일곱별은 분명히 보였다. 별빛과 함께 걸어 정상에 오르자, 붉은 일출이 온몸을 감쌌다. 동해의 장관에 비할 수는 없지만, 그 붉은 기운 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하산길에는 물들어가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봉덕시장으로 향했다. 돼지국밥 한 그릇으로 4시간의 짧은 가을여행을 마무리했다. 나는 예전부터 백양산 애기단풍을 최고의 단풍 맛집으로 꼽는다. 잎이 작고 빛깔이 곱다. 해마다 장성 남창골 몽계폭포에서 백양사까지 걷던 늦가을 산행을 올해는 포기해야 했다. 대신, 그날의 새벽 등산이 내게 '짧지만 깊은' 가을을 선물했다.

사정이 달라지면, 사람도 달라져야 한다.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은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에서 "거대한 변화의 시기, 가장 잊지 말아야 할 덕목은 가벼운 존재 만이 생존할 것이라는 새로운 진리"라고 말한다. 뚱보 산신령은 이제 '가벼운 존재'가 되기 위한 변신을 시작했다. 30년 넘게 고집하던 습관을 버리고, '술'보다 '숲'을 선택했다. 변신의 이유가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다. 그가 '숲의 가치'를 선택한 순간, 이미 변화는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숲이 뚱보 산신령을 어느 쪽으로 이끌지 궁금하다. 숲의 환대를 받은 그의 삶이 더 밝고 가벼워질 것이다. 백세시대다. 그의 삶이 메말랐던 고목에서 꽃이 피듯이, 사막 가운데 큰 물줄기가 흘러가듯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숲이 그를 받아들였고, 그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또 다른 세상으로 향하고 있다. 요즘 그의 얼굴엔 화사한 미소가 가득하다. 내게는 이미 변화한 사람의 평온이 보인다.

김태일 Story 산림치유연구소장 / 산림치유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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