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나면 정치인 찾던 기자들, 이젠 과학자 찾아"…SMC가 바꾼 과학언론

"예전에는 호주에서 대형 산불이 나면 기자들이 화재 현장이나 소방관, 정치인을 찾았지 과학자를 취재하진 않았습니다. 보통 이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합니다. 사건을 제대로 보려면 과학자의 의견이 필요합니다."
수잔나 엘리엇 호주 사이언스미디어센터(SMC) 센터장은 11일 서울에서 진행된 공동인터뷰에서 SMC가 호주의 과학 보도 문화를 바꿨다고 강조했다.
2002년 영국에서 처음 설립된 SMC는 미디어와 과학계를 잇는 비영리 독립조직이다. 감염병이나 기후변화, 인공지능(AI) 등 민감하고 파급력이 큰 과학 주제에 대해 전문가의 근거 기반 의견을 언론에 신속하게 제공한다. 신뢰성과 독립성 등 SMC만의 기준과 철학을 공유한다는 원칙 아래에 호주, 뉴질랜드, 독일, 대만 등으로 확산했다. 한국과학기술미디어센터(SMCK)는 올해 9월 23일 개소했다.
엘리엇 센터장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매일 새로운 분야의 과학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화재가 발생하면 먼저 불의 원인과 확산 방향을 파악해야 한다. 다음날부터는 산불로 인한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는 응급의학 정보나 건물 화재 피해를 예방하는 건축공학자의 설명 등이 필요한 식이다.
2008년 설립된 뉴질랜드 SMC의 다시아 헤르불로크 센터장은 "SMC 설립 이전에 뉴질랜드의 과학 언론은 전문성도 부족하고 과학자와 언론 사이도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뉴질랜드 SMC 설립 이후 수년에 걸쳐 과학자와 언론 사이의 신뢰를 쌓은 결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당시 목표치였던 백신 접종률 90%를 달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2017년 문을 연 대만 SMC의 쉬네이드 첸 센터장은 "대만처럼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경우 외국 뉴스 번역 과정에서 오역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언론이 번역 기능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과학자를 인터뷰하고 증거를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기자들의 질문 수준이 높아지고 정부 발표에 대해 연구논문 등 과학적 근거를 요구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각국 SMC 센터장들은 SMCK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한 조언을 건넸다.
SMC 운영의 핵심으로는 크게 투명한 펀딩을 통한 독립성과 언론과의 신뢰 관계가 꼽혔다. SMCK는 3년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인 한국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독립기관으로 설 예정이다.
엘리엇 센터장은 "SMC는 정부와 미디어 등에는 알려졌지만 일반 대중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자금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호주 SMC는 펀딩 기관의 홍보 담당자들이 연구 관련 보도자료 등을 자체 과학 속보 포털사이트에 올릴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후원한 과학자와 언론을 대상으로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그 혜택을 돌려준다. 70여곳의 대학과 연구소 등으로부터 펀딩을 받는 호주 SMC는 한 기관에서 전체 펀딩의 10% 이상 받을 수 없는 상한선을 그어 독립성을 강화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100%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뉴질랜드 SMC의 경우 독립성을 보장받는다는 내용을 정부와의 계약에 명시한다. 내부에 독립적인 자문단을 운영하기도 한다.
한국과 비슷하게 설립 후 4년 동안 정부의 전액 지원을 받은 대만 SMC가 처음 맞딱드린 과제는 '불신 해소'였다. 첸 센터장은 "정부 지원을 받으니 친정부적 메시지만 내놓을 것이라는 기자들의 우려가 있었다"며 "하지만 몇 년간 오직 근거에 기반한 정보만 제공하는 모습에 신뢰가 쌓였다"고 설명했다.
SMC를 통해 과학자와 기자들의 신뢰가 어느 정도 쌓이고 나면 특히 젊은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먼저 의견 제안이 오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첸 센터장은 "과학자들이 기자들에게 적절한 시기에 메시지를 전달하면 잘 전달되고 효과를 낸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헤르불로크 센터장은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 어떤 상황이 터졌을 때 대중이 부족한 정보로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양극화되기 전에 빨리 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자들이 현재까지 이해한 것,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 등을 구분해서 증거 기반으로 사건 시작과 중간, 마무리 단계까지 최신 근거를 발견할 때마다 언론을 통해 공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기술적인 얘기를 쓰기보다는 주제에 집중해서 쉽게 알려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견을 내는 과학자들을 보호하는 것 역시 새롭게 대두된 과제다. 엘리엇 센터장은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표한 과학자들이 온라인으로 살해 협박을 받는 일도 있었다"며 동료 과학자들의 의견을 보태 힘을 실어주는 등의 공동대응이 필요하다고 봤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호주 SMC는 2005년 말 설립됐으며 약 7000명의 과학자가 기자 2000여명과 소통한다. 2015년에는 과학 속보 포털사이트인 '사이맥스(SCIMEX)'를 출시해 태평양 지역 과학 기사와 전문가 반응 등을 미디어에 제공한다.
SMCK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SMC의 과학 소통 경험을 나누고 한국 사회가 겪은 사회적 갈등을 줄일 방안을 모색하는 국제 포럼 '글로벌 사이언스 미디어 포럼'을 13일 서울 중구 온드림소사이어티(온소스퀘어)에서 개최했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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