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232년 만의 종말… 美 조폐국은 왜 1센트 동전 ‘페니’ 생산을 멈췄나
현금 결제 시스템 변화 예고
“1센트로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됐다”
미국에서 232년 역사를 지닌 1센트(페니) 동전 발행이 12일(현지시각) 공식 중단됐다. 미 조폐국은 이날 필라델피아에서 마지막 1센트 동전 생산을 마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전 액면가치(1센트)보다 생산 비용이 4배 가까이 비싸다는 이유로 주조 중단을 지시한 데 따른 조치다.
AP 등에 따르면 이날 브랜던 비치 재무부 출납국장은 페니에 새겨질 에이브러햄 링컨 초상을 마지막으로 새길 버튼을 누르면서 1센트 동전 5개를 주조했다. 비치 국장은 “미국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우리는 납세자 세금 5600만 달러를 절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특별 생산한 마지막 동전 5개 앞면에는 링컨 어깨 위에 끝을 상징하는 오메가(Ω) 표식이 새겨졌다. 이 동전들은 시중에 유통하는 대신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다.

앞서 미국이 동전 발행을 중단한 마지막 사례는 1857년 하프센트(0.5센트) 폐지였다. 페니는 이보다 170여년이나 더 쓰이다 23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페니는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이 주도한 1792년 주화법(Coinage Act)에 근거해 1793년 처음 발행됐다. 초기 앞면 도안은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1909년 링컨 탄생 100주년을 맞은 시점부터 링컨 초상을 쓰기 시작했다. 뒷면에는 밀 이삭과 링컨 기념관 등을 새기다 최근에는 연방 방패 도안을 썼다.
월스트리트저널(WSJ) 탄생 초기 페니가 1센트로 사탕(Penny Candy)을 살 수 있을 만큼 실질 가치를 지녔다고 전했다. 이후 200년이 넘도록 페니는 미국 경제 최말단에서 윤활유 역할을 했다. 문화적 상징성도 컸다. 미국 문학과 패션에서 페니는 매번 영감을 주는 소재로 쓰였다. ‘당신 생각을 1센트에 사겠다(A penny for your thoughts)’, ‘하늘에서 떨어진 페니(Pennies from heaven, 뜻밖의 횡재)’, ‘페니를 아끼는 사람(Penny-pincher, 구두쇠)’ 등 수많은 영어 관용구에 페니는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대학생들이 신발 앞 코에 페니를 끼우고 다니는 페니 로퍼 패션도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이어지고, 동전 가치가 계속 하락하면서 어느 순간 페니는 애물단지가 됐다. 재무부는 현재 약 3000억 개 페니가 시중에 유통 중인 것으로 추산한다. 하지만 연방준비제도(Fed)에 따르면 현금 사용 비중은 2016년 31%에서 2023년 16%로 급감했다. USA 투데이는 “시중에 풀린 페니 대부분은 서랍이나 자동차 컵홀더에서 잠자는 실정”이라고 했다. Fed는 미국 가구당 평균 60~90달러에 달하는 동전이 실제 쓰이지 않고 방치된 것으로 본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소셜미디어를 통해 페니 생산이 “너무 낭비”라며 재무부에 중단을 지시했다. 올해 1월 당시 일론 머스크가 이끌던 정부효율성부(DOGE) 권고를 따른 조치였다.
미 조폐국 연례 보고서를 보면 페니 동전 1개 주조 비용은 3.69센트(약 48원)에 달한다. 조폐국은 페니를 2024 회계연도에만 30억 개 이상 만들었다. 재무부 회계에 따르면 페니 생산 중단으로 거둘 수 있는 비용 절감 효과는 연간 5600만 달러(약 730억 원)에 달한다.
1센트 동전은 1982년부터 비용 절감을 위해 구리 도금(2.5%)을 한 아연(97.5%)으로 제작하고 있다. 하지만 주재료 아연 가격이 팬데믹 이후 급등해 2022년 사상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2019년 톤(t)당 2200달러 선에서 거래되던 아연 선물 가격은 올해 11월 기준 3000달러 선으로 올랐다.
2.5%만 들어간 구리 가격은 더 빠르게 올랐다. 구리는 전기차, AI 데이터센터 등 신산업 발전 속도에 따라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올해 7월 파운드당 5.60달러를 넘어서는 등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11월 현재도 파운드당 5달러 이상을 유지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8월 수입 구리에 50% 추가 관세를 부과한 이후 상승세는 더 가파르다.
미국 전역에서는 치솟은 구리 가격을 노린 차익 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통신사 AT&T는 올해만 구리 케이블 절도(竊盜)로 4000만 달러(약 520억 원) 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화물 운송 중인 구리 제품 탈취 범죄는 2025년 3분기에만 전년 대비 5배 가까이 늘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사설에서 “가치보다 비싼 동전을 만드는 희극이 끝났다”면서도 “1센트로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됐다”고 평했다.

페니는 생산을 멈췄지만, 여전히 법정 화폐 지위는 유지한다. 이 때문에 미국 소매업 일선에서는 ‘페니 가뭄’에 따른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일선 마트 가격표 대부분이 99센트로 끝난다. 여기에 주별 소비세가 합쳐지면, 결제 시 가격이 1센트 단위로 책정된다. 현금 결제를 한다면 페니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 소매업계는 페니 생산 중단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부터 페니 공급이 끊기면 현금 결제 시 가격을 5센트 단위로 반올림하거나 내리는 ‘라운딩(Rounding)’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뉴욕, 코네티컷, 워싱턴 D.C. 등 최소 10개 주는 ‘정확한 거스름돈’ 지급을 의무화한다. 페니 공급이 끊겼다고 해서 임의로 가격을 반올림하거나 내릴 수 없다.
법조계에서는 카드 결제와 현금 결제 시 다른 가격을 적용했다는 소송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만약 소비자가 2.49달러짜리 상품을 산다고 가정할 경우, 상점이 거슬러 줄 잔돈이 없다는 이유로 2.50달러로 올림(Rounding Up) 처리를 하면 카드 결제 이용자와 다른 가격을 받게 돼 법에 저촉된다.
CNBC에 따르면 미 서부 지역 편의점 체인 퀵 트립(Kwik Trip)은 이 점을 고려해 현금 결제 시 페니로 거슬러 줘야 하는 5센트 단위 가격을 내림 처리하기로 했다. 이 정책으로 회사가 입을 손해는 연간 수백만 달러로 추산된다.
소매산업지도자협회(RILA)와 NACS 등은 “페니가 말라 붙기 전에 라운딩을 허용하는 입법이 절실하다”며 의회에 연방 차원 법안을 촉구하고 있다. ‘1센트를 지키는 미국인 연합(Americans for Common Cents)’ 마크 웰러 이사는 CNN 인터뷰에서 “2012년 페니를 폐지한 캐나다, 1992년 페니 생산 중단에 나선 호주는 명확한 정부 지침이 있었지만 미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올린 소셜미디어 게시물 하나가 지침의 전부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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