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세계에서 동등하게 만나는 방법은 ‘거짓말 게임’ 뿐?! [북적book적]

김현경 2025. 11. 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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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재해석하며 민주주의 위기 진단
진실 다툼·과시 경쟁 넘어선 공존 모색
소셜미디어 앱. [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소한 것부터 큰일까지 거짓말을 일삼는다. 자신의 첫 번째 취임식 때 그는 비가 그쳤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연설 내내 비가 왔고, 재선에 실패했던 미국 대통령 선거는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첫 번째 임기에만 3만573번의 거짓·왜곡 주장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일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는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습니다”라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국가비상사태는 그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선언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는 파면된 이후 사저로 당당히 걸어 들어가면서는 지지자들에게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 마세요”라고 말했다.

한 국가의 수반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뭘까. 발언의 사실 여부를 떠나 말 자체로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2021년 1월 6일 조 바이든 후보의 대선 승리를 공식화하기 위해 의원들이 모여 있던 미국 의사당을 점령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20~30대 남성을 주축으로 한 윤석열 지지자들은 그에게 내란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서부지법 담을 넘고 방화를 시도하는 등 폭동을 벌였다. 폭도인 듯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모두 평범한 시민이었다.

정치학을 연구하는 조무원의 신간 ‘거짓말 게임’은 ‘진실이냐 거짓이냐?’라는 질문을 내려놓고, 현실을 이해할 틀로서 모든 진리를 잠정적으로 만드는 ‘거짓말 게임’을 제시한다. 각각의 개인과 사회가 표현하는 말과 행동을 ‘지위 과시’를 위한 일종의 연기로 이해하는 것이다.

저자는 고전을 재해석하며 현재의 민주주의 위기를 독창적인 관점으로 진단한다. 장자크 루소와 토머스 홉스의 사상을 중심으로 몽테스키외, 니콜로 마키아벨리, 존 로크, 애덤 스미스 등 17~18세기의 정치철학과 정치경제학을 폭넓게 아우른다.

거짓말 게임의 기원은 근대적 자아가 출현했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근대적 자아를 지닌 개인들이 모이면서 “저마다 타인들을 바라보고 타인들도 자기를 바라보아 주기를 바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타인들로부터 받는 호의적 평가와 존경은 가치를 갖게 되었다”고 포착했다. 현대인들이 사로잡혀 있는 매력 경쟁과 닮은 모습이다.

토머스 홉스도 ‘리바이어던’에서 자연 상태를 이야기할 때 타인을 깎아내림으로써 우월해지려고 하는 인간의 성향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타인을 증오하는 말이나 행동은 투쟁을 유발하기 때문에 이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현대에 만연한 ‘혐오 표현’에 반대한 것이다.

저자는 나아가 소스타인 베블런, 막스 베버, 한나 아렌트, 클리퍼드 기어츠, 어빙 고프먼 등 정치와 권위,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탐구했던 사상가들의 이론을 ‘거짓말’이라는 키워드로 엮는다. 정체성 정치, 인정 투쟁, 극장 국가 등 현대 정치를 설명하는 개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프랜시스 후쿠야마, 악셀 호네트, 대런 애스모글로우 같은 유명 사상가들과도 대결하면서 음모론과 탈진실 정치, 주목 경제, 정치적 양극화 같은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정치적 다툼과 과시 경쟁은 특정 국가나 집단에 국한되지 않는다. 좌파와 우파 모두 ‘진리의 정치’에 의존하고, 각자가 믿는 진실이 진리가 될 때 모든 갈등은 해결 불가능한 국면으로 치닫는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텍스터힙’이나 영어권에서 유행하는 ‘퍼포머티브 메일’ 현상의 배경에도 그 행위 자체를 중시하기보다 멋있게 보이려는 과시가 깔려 있다는 분석은 흥미롭다.

특히 소셜미디어는 가장 큰 과시의 무대로 자리 잡았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전 세계가 나를 바라봐 주기를 바라며 매일 인정 투쟁을 벌인다. 개인은 스마트폰 속에서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는 타인의 삶을 접하면서 고독과 열등감을 느낀다.

저자는 불평등한 세계 속에서 지위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서로 폭력에 이르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거짓말 게임’을 모색한다. 서로의 불평등한 지위를 ‘말할 수 없는 진실’로 만드는 대신 너와 내가 동등하게 마주할 가능성을 열 수 있는 ‘우아한 거짓말’은 어쩌면 효과를 발휘할지도 모른다.

거짓말 게임/조무원 지음/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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