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교 사무처장의 사의 표명 뒤 철회는 신의 한 수? [안녕 진화위②]
자괴감 억누르게 한 직원들의 응원

‘안녕’은 작별이자 환영의 인사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국가폭력 사건을 조사해온 독립기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또는 진화위)가 분기점을 맞는다. 5년간 조사활동을 벌인 제2기는 11월26일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국회는 제3기 탄생을 위한 법안 통과를 준비 중이다. 3기 설립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한겨레는 2기를 돌아보고 3기를 바라보며 ‘안녕 진화위’를 시작한다.
‘진화위’는 그동안 부정적 뉴스로 자주 등장했다. 내란 옹호 논란이나 설립취지에 반하는 발언으로 시끄러웠던 몇몇 위원장과 국회에 나와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 기행을 벌인 국정원 출신 간부 탓이었다. 부정기 연재될 ‘안녕 진화위’는 그동안 조명되지 못한 얼굴과 목소리를 찾아 나선다. 과거사 조사와 규명에 진심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3기로 가는 여정의 의지와 기대를 담아본다.
굿바이 진화위! 헬로 진화위!!
이처럼 신임 위원장 임명은 부당하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명확한 사과와 재검토가 없는 상황에서 사무처장으로서 신임 위원장의 지휘를 받아 업무를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선 자리의 무거움을 알기에 이러한 제 입장과 의견 표명에 대해서는 마땅히 책임을 질 것입니다. 동고동락한 동료 직원분들에 대한 죄송함과 고통스러움, 그리고 항의의 의사를 담아 사직의 뜻을 밝힙니다.”
송상교 진실화해위 사무처장(52)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직후 윤석열 대통령의 박선영 위원장 임명에 항의하며 사의를 표명했다가 철회한 일은 2기 진실화해위 최대의 해프닝이라 할 만하다. 송 사무처장이 12월9일 사의를 밝히자 하루 만에 20명 넘는 내부 직원들이 실명으로 “누구 좋으라고 나가냐”, “남아서 부당함에 싸워달라”는 취지의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 송 사무처장은 일주일간 고심하다 16일 사의를 철회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7일 박선영 위원장이 주재하는 전체위원회에 참석했다.
이 일에 대해 정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진실화해위 지부장은 “신의 한 수였다”고 표현했다. 직원들은 송 사무처장의 사퇴가 오히려 박선영 위원장의 환영을 받을 일이라고 여겼다. 박 위원장과 비슷한 보수 성향의 사무처장이 올 게 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사건을 계기로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자각했다. 4년간 자신들의 권리를 대변할 아무런 조직을 만들지 않았던 이들이 올해 1월 처음으로 공무원직장협의회(직협)를 결성했다. 박 위원장이 “조사관은 법적으로 직협 가입이 금지된다”며 설립증 교부를 거부하자 내처 노조를 결성하고 더 큰 목소리를 냈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6층 사무처장실에서 만난 송 사무처장은 분주해 보였다. 2기 종료를 앞두고 관련 회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11월26일 활동 종료와 함께 사무실 계약이 만료돼 진실화해위가 입주한 퇴계로 남산스퀘어빌딩 5·6층 중 6층을 비워줘야 한다. 위원회 청산을 위한 인력 20여명만이 5층에 남는다. 송 사무처장은 정식 인터뷰는 거절했다. 그러면서도 몇 가지 잊을 수 없는 순간들에 관해 짧게 털어놓았다.
송 사무처장은 변호사다. 법무법인 덕수 소속으로,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과 재일동포 간첩조작 사건 등이 주요 변론 이력에 있다. 2021년 4월30일 진실화해위에 합류하기 직전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장을 지냈다. 임기가 정해지지 않은 사무처장은 “위원장의 지휘를 받아 사무처의 사무를 관장하고 소속 직원을 지휘·감독하는” 자리다. 기본적으로 위원장을 챙기며 그 지시를 이행하는 것이 사무처장의 법적인 임무다. 초대 정근식 위원장(현 서울시 교육감) 시절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딜레마에 빠진 것은 2022년 12월10일 김광동 위원장 취임 뒤 각종 희생자 폄훼 논란과 유족들의 반발이 이어지면서다.

그가 처음으로 사표를 깊게 고민했던 시점은 지난해 7월이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피학살자유족회) 회원 20여명이 7월2일과 3일 진실화해위에서 1박2일 점거농성을 했을 때다. 고령의 유족회원들은 김광동 위원장에게 그간의 망언에 관해 사과하고 면담에 응하라고 요구했다. 김 위원장은 이들을 만나주지 않았다. 유족들은 “다른 날에 면담 약속을 잡자”는 송 사무처장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서울 중부경찰서 직원들이 출동해 유족들의 사지를 들어 올려 강제로 끌어냈다.
이때 자신이 제대로 중재를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극에 달했다고 한다.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조직에 별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 사표를 막아섰다. 사퇴는 김광동 위원장에게 공간만 더 내줄 뿐이라고 봤다. 박선영 위원장이 취임했던 지난해 12월도 마찬가지였다. 숨이 막혔다. 잠이 오지 않았다. 사무실에 출근하기 정말 싫었다. 그래서 사의를 표명했다. 실명으로 ‘그만두지 말라’는 글이 내부망에 올라오자 놀랐다. 밖에서도 사표는 어리석은 일이라며 말렸다. 일주일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결국 자괴감은 접어두고 버티기로 했다.
직원들에게 그는 ‘기댈 언덕’이었다. 진실화해위 한 조사관은 “온후한 성품의 송 사무처장이 평소 직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잘 챙겨줘 의지하고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업무에 어려움을 겪는 직원들이 그를 찾아가 갖가지 애로사항과 고민을 말하고 상담을 받으며 위로 받았다고 한다.
또다른 조사관은 “송 사무처장을 보면 ‘괴로운 지식인’이 떠오른다”고 했다. “내부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해결하는 모습은 부족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사무처장이라는 자리의 특성상 김광동·박선영 위원장 체제에서 사안마다 건건이 대립하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면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송 사무처장은 상임위원회와 주요 간부회의에서 위원장과 일부 상임위원에게 때로는 모멸에 가까운 질책을 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대부분 묵묵히 받아넘기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런 송 사무처장이 이례적으로 전체위원회 등 공개석상에서 박 위원장과의 논쟁 등을 피하지 않은 것은 지난 5월26일 조사활동 종료 뒤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할 종합보고서 작성만을 남겨둔 상황에서였다. 박 위원장은 자신이 직접 주요간부회의를 주재하며 보고서 작성을 주도하겠다는 입장이었고, 송 사무처장은 효율성과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별도 집행 체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이후에도 3·15의거 보고서 제작 등을 둘러싸고 공개 마찰이 이어졌다. 그는 한겨레에 “(4월24일 이옥남·이상훈·이상희·차기환·오동석 위원 등 임기 만료로) 위원들이 대부분 빠지다 보니, 직원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위원장이) 과하다 싶으면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과 독대하고 건의도 했는데 수용이 쉽지 않았다”고도 했다.
진실화해위 사무처장은 같은 직급(고위공무원 가급)의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과는 달리 조사에는 관여하지 못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행정사무만 관장할 뿐이다. 이는 그 자신에게도 큰 한계와 아쉬움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보람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대해선 “직원 차원에서 해결이 안 되는 유족이나 피해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드린 것”이라고 했다 “더 많이 들어드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3기 진실화해위와 관련해서는 “피해자 신청을 받기 위해 전광판 광고 등 아무리 홍보를 해도 조사 업무가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3기는 직권조사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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