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이야기, 드라마로 만들면 진짜 재미있을 거야 [콘텐츠의 순간들]

‘우리 회사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면 진짜 재미있을 거야.’ 장르는 청춘물, 로맨스, 스릴러, 코미디에 막장까지 다양하겠지만, 회사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회사는 모든 면에서 드라마틱한 상황이 난무하며 천국과 지옥이 공존한다. 윤태호 작가의 인기 웹툰을 각색한 〈미생〉(2014), 회사 내의 암투와 회계 부정 등을 현실적이면서도 코믹하게 다룬 〈김과장〉(2017),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리메이크한 〈직장의 신〉(2013), 스타트업 회사를 만든 청춘의 드라마틱한 도전을 그리는 〈스타트업〉(2020),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무역회사를 그린 최신작 〈태풍상사〉(2025)까지 ‘회사’에는 일과 사랑을 포함한 인생의 모든 것이 농축되어 있다.
제목만 보면, 2025년 2월22일 시즌 1 방영을 시작한 〈직장인들〉은 직장 생활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드라마 같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형식은 정통 드라마가 아니다. ‘모큐멘터리’다. 모큐멘터리는 카메라가 전체적 과정은 물론이고 은밀한 상황까지 따라다니며 사건을 관찰하고 각 인물의 인터뷰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같지만, 모든 것은 각본이다.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걸 알면서도 캐릭터의 속내를 털어놓는 인터뷰나 개인적인 모습을 보면 은근히 공감하게 되고, 전우 혹은 공범의 기분이 든다. 모큐멘터리 시트콤은 영국의 〈더 오피스〉(2001)가 성공을 거두고, 미국에서 리메이크되며 더욱 인기를 끌어 주류 장르로 성장했다.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그럴듯한 상황과 인터뷰를 보여주여 관객을 현혹하는 모큐멘터리는 가상 리얼리티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르다.
〈직장인들〉은 모큐멘터리이며, 즉흥 연기로 끌어가는 시트콤이다. 〈직장인들〉은 〈더 오피스〉의 영향을 받은 동시에 버라이어티 코미디 쇼 〈SNL(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연장선에 있다. 〈SNL 코리아〉의 인기 코너 ‘MZ 오피스’의 성공에 힘입어 스핀오프로 만들어졌다. 신동엽은 소규모 광고회사 DY기획 사장이다. 개그맨은 사실이고, 광고회사 사장은 픽션. 부장 김민교, 과장 이수지, 대리 현봉식, 주임 김원훈, 사원 차정원, 사원 지예은, 인턴 심자윤은 모두 진짜 이름으로 나오지만 개그맨, 배우, 가수가 아니라 광고회사 직원이다. 〈직장인들〉은 사실과 픽션 사이에 절묘하게 놓인 시추에이션이다. 에피소드마다 기본 설정과 스토리는 있지만, 주고받는 많은 대사는 현장에서 튀어나오는 애드리브다.
〈직장인들〉로 가장 인기를 얻은 캐릭터는 ‘김원훈’이다. 〈직장인들〉에서 김원훈은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자기 의견과 주장을 공격적으로 내뱉는데, 대부분 논리가 없고 억지에 가깝다. 하지만 많은 ‘직장인들’은 김원훈에게 공감한다. 상사의 말 한마디에 싸늘해지거나 억지웃음을 터트리는 사무실, 퇴근 10분 전에 일 던져주는 상사, 아이디어 내라고 웃으며 말하지만 정작 내놓으면 깎아내리며 무시하는 동료들, 다들 웃고 떠들지만 모두 집에 가고 싶어 하는 회식 자리 등등. 할 말은 많지만 차마 할 수 없는 직장인의 답답함을 김원훈의 공격적인 농담을 통해 해소한다. 합리적 해결이나 논리적 이유 대신 감정 배출이라도 해야 숨이 트인다. 일종의 해방구랄까.
〈직장인들〉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보이는 캐릭터를 과장하여, 평범하지만 다사다난한 회사원들의 좌충우돌을 보여준다. 항상 합리적이고 온화한 얼굴이지만 자기 이익만 챙기는 신동엽, 사람은 좋지만 무기력한 김민교, 〈나는 솔로〉에 출연하며 연예인이 되었다는 자뻑에 빠진 이수지, 별다른 존재감 없는 현봉식, 자기 일 잘하지만 냉소적인 차정원, 할 말 다 하고 자기 일에만 관심 있는 지예은과 심자윤.
백현진과 김원훈의 티격태격
시즌 1도 흥미로웠지만 신동엽과 호형호제하는 백현진이 새로운 부장으로 들어온, 2025년 8월9일부터 시작한 시즌 2는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미술가이자 뮤지션이며 배우인 백현진은 ‘개저씨’ 연기에 단연 한국 최고다. 〈모범택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무빙〉 등 작품마다 백현진의 연기는 돋보였다. 〈직장인들〉 시즌 2에 갑자기 부장으로 발탁된 백현진은 기존 부장인 김민교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고, 고급스러운 말투·단어 사용과는 상반된 유치하고 치사한 꼰대 캐릭터를 선보여 사무실 분위기를 후끈하게 만들었다. 특히 백현진과 김원훈의 주고받는 즉흥 연기가 압권이다. 백현진은 잘난 척하고 아는 척하고 합리적인 척하는 상사이며, 사장과 직원 사이를 이간질하고 때로 탄압하는 중간관리자다. 김원훈의 막무가내식 공격은 백현진을 제대로 긁고, 백현진의 차분하지만 답답한 꼰대 스타일은 김원훈과 상극이다. 백현진과 김원훈의 티격태격을 보는 것만으로도 직장 스트레스가 조금 풀리는 것 같다.

〈직장인들〉의 인기는 MZ 세대를 비롯한 현대인의 콘텐츠 소비 방식과 부합한다. 현실의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풍자하고 조롱하는 모습을 짧은 쇼츠나 릴스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소비하기에 적합하다. 전체를 보지 않고 하나의 에피소드만으로, 순간 주고받는 대사만으로도 만끽할 수 있다. 〈직장인들〉은 현대의 ‘직장’이라는 모순덩어리를 신랄하게 해부하고, 한편으로 시청자가 도망칠 길을 제시하는 탈출구다. 하고 싶은 일에서는 돈을 벌기 힘들고, 먹고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하고, 그러자니 나도 지루하고 폭력적인 시스템의 일부로 전락해간다. 왜소한 내가 미치지 않는 방법은, 싸우거나 도망치는 일뿐. 대개는 후자다.
〈직장인들〉을 보는 일은 다소 씁쓸하다. 직장에서 겪은 악몽을 되살리기도 하고, 웃음으로 해결되는 일들이 현실에서 불가능함을 알고 있고, 대체로 현실이 픽션보다 더 사악하고 잔인함을 각인한다. 그럼에도 〈직장인들〉을 보며 그저 웃기만 해도 좋다. 적어도 웃음은, 우리들의 현실이 뭔가 뒤틀려 있음을 아는 것이니까. 〈직장인들〉이 직장 생활의 온갖 아이러니를 극적으로, 웃음으로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김봉석 (대중문화 평론가)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