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人터뷰] 작은 조각이 모여 만든 큰 변화 | 전원생활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11월호 기사입니다.

이 캠페인은 시민 참여형 플라스틱 자원순환 프로젝트로, 재활용이 쉽지 않은 병뚜껑을 시민들로부터 모아 업사이클링을 진행한다. 업사이클링을 통해 탄생한 친환경 제품은 시민에게 다시 돌려준다. 현재까지 캠페인에 참여한 시민의 수는 12만 6355명(2025년 8월 기준). 이들로부터 5285㎏에 달하는 병뚜껑을 수거했다. 무게로는 얼마 되지 않지만 플라스틱 생수병 뚜껑의 무게가 약 2g이기 때문에 개수로 치면 어마어마한 양이다.
서울환경연합은 왜 하필 작은 플라스틱인 병뚜껑에 주목했을까. 병뚜껑은 왜 재활용되지 못하는 걸까. 의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 서울환경연합의 문봄 활동가를 만났다. 현재 그는 플라스틱방앗간 캠페인 운영의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시민들이 병뚜껑을 넣어 보낸 택배 상자 등의 쓰레기가 처치 불가능할 정도로 많이 나왔어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자 마련한 캠페인인데 오히려 쓰레기를 만들었던 거죠. 이에 활동가들 사이에서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시민들이 병뚜껑을 직접 가져올 수 있도록요.”
그래서 자원순환센터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오프라인 공간이 2024년 10월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 생겼다. 문씨를 만난 장소도 여기였다. 마침 시민 한 명이 에코백에서 병뚜껑을 하나씩 꺼내 색깔별로 수거함에 넣어 분류 중이었다. 생수병, 클렌징폼, 세제 뚜껑 등을 파란색·초록색·분홍색 등으로 나눠 분류를 끝낸 그는 병뚜껑으로 만든 친환경 튜브 짜개(치약이나 핸드크림 등 튜브 형태 용기의 내용물을 끝까지 짜낼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를 받은 후 떠났다.

시민에게도 환경에도 모두 이로운 플라스틱방앗간. 이 캠페인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탄생한 걸까. 이야기는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환경연합의 활동가들은 병뚜껑 문제를 시민의 힘으로 직접 해결할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때 이집트의 한 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활동가가 ‘프레셔스 플라스틱(Precious Plastic)’을 접한 후 서울환경연합에 알려줬다.
프레셔스 플라스틱은 2013년 네덜란드 디자이너 데이브 하켄스가 설립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누구나 쉽게 폐플라스틱 업사이클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눈여겨볼 점은 이 네트워크가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데 필요한 분쇄기·압출기·사출기 등과 같은 기계의 도면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일부 기업이 독점하고 있던 폐플라스틱 재활용·업사이클링 기술을 많은 사람과 나눈 덕분에 누구나 의지만 있다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직접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계를 제작해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국내 활동가들은 프레셔스 플라스틱이 제공한 도면으로 기계를 직접 제작해 병뚜껑 쓰레기 문제를 시민과 직접 해결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플라스틱방앗간 캠페인이다.
“우리가 분리배출한 재활용품은 선별장으로 향해요. 선별장에서는 크고 작은 플라스틱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로 한꺼번에 쏟아지며 섞여요. 플라스틱 생수병, 병뚜껑, 플라스틱 용기…. 손으로 이들을 일일이 종류별로 선별해요. 문제는 큰 플라스틱을 골라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하물며 작은 병뚜껑은 선별되지 못하는 게 상당수이고 그러다 보니 일반 쓰레기로 버려지거나 소각되는 거죠.”
문씨의 말을 듣고 있으니 ‘내가 가정에서 병뚜껑을 아무리 열심히 분리해 버려도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라는 회의감이 든다. 이런 회의감을 극복하고 환경보호에 내가 기여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곳이 플라스틱방앗간이다. 그렇다면 플라스틱방앗간에는 어떤 병뚜껑을 가져와도 상관이 없는 걸까.

“대부분의 병뚜껑은 HDPE(고밀도 폴리에틸렌)와 PP(폴리프로필렌) 재질로 만들어져요. 모두 재가공이 가능한 재질이라 어떤 병뚜껑을 가져와도 상관없어요. 다만 분리배출할 때와 마찬가지로 병뚜껑에 이물질이 없어야 해요.”
플라스틱방앗간에서는 병뚜껑뿐만 아니라 작은 재질의 플라스틱도 수거한다. 작은 재질의 플라스틱의 경우 병뚜껑과 마찬가지로 ‘HDPE’와 ‘PP’에 해당하는 것만 재활용할 수 있다. 어떤 재질인지는 플라스틱 겉면에 새겨진 재활용 표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플라스틱방앗간에서 수거한 폐플라스틱은 경북 포항 남구에 있는 ‘지구공방’으로 보내진다. 이곳에서 병뚜껑은 분쇄·압축·사출 등의 과정을 거친 후 튜브 짜개, 카라비너(암벽 등반에 쓰는 도구) 등으로 재탄생한다. 과거엔 활동가들이 직접 업사이클링 작업을 진행했으나 전문성을 갖추고자 현재는 제작 과정을 지구공방에 위탁했다.
“동네에 재활용품 수거 공간이 없다면 친환경 실천 플랫폼 ‘에코야 얼스(Ecoya Earth)’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재활용품의 무게가 1㎏이 넘으면 직접 와서 수거해 가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을 시민단체와 시민이 대신 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문씨도 이에 동의한다.
“병뚜껑은 재활용을 못하는 게 아니라 선별 과정에서의 방법적인 문제 때문에 안 하는 것이잖아요. 이런 것들을 보완하는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플라스틱방앗간 같은 캠페인을 벌이다 보면 언젠가 제도적 보완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요?”
201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와 조지아주립대 공동연구팀에 따르면 1950~2015년 45억t의 플라스틱이 매립되거나 자연에 그대로 버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2g짜리 생수병 뚜껑 하나 재활용한다고 기후 문제가 과연 해결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에 대해 서울환경연합과 자원 수거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굳게 믿는다. 작은 행동이 모이면 큰 변화를 이뤄 기후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이런 마음으로 작은 병뚜껑도 귀하게 여긴다. 낙담보다는 희망을 택한 이들을 보며 집에 있는 병뚜껑을 모아본다.
글 윤혜준 기자 | 사진 전승 기자, 플라스틱방앗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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