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꺼낸 바다 <52> 300년 전 해도에 그려진 북극항로의 꿈

김종호 국립해양박물관 교육문화팀 연구원 2025. 11. 12.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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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북극항로에 관한 관심이 뜨겁다.

그런데 북극항로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세상에 등장한 지는 벌써 500년이 지났다.

만약 두 대륙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면, 북극항로는 성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리정보의 부족으로 북미 서해안, 사할린, 홋카이도, 그리고 북극해 대부분이 상상으로 채워진 미지의 영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도는 북극항로의 가능성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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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북방원정대 항해 기록한 첫 자료, ‘미지의 북극항로’ 개척 도전 이어져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북극항로에 관한 관심이 뜨겁다. 그런데 북극항로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세상에 등장한 지는 벌써 500년이 지났다. 열강들은 아시아로 가는 가장 빠른 항로를 북극해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었고, 원정대를 조직해 북극항로를 개척하고자 했다.

국립해양박물관 소장 ‘북태평양에서의 새로운 발견들에 대한 최신의 해도’.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항해사가 바로 비투스 베링(Беринг, Витус Ионассен)이다. 러시아의 해군 장교였던 베링은 1725년 표트르 대제로부터 훗날 ‘베링해협’으로 불리게 되는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 사이의 지형을 조사하라는 비밀 임무를 받게 된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아시아와 북미 대륙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지 여부였다. 만약 두 대륙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면, 북극항로는 성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시베리아를 횡단해 오호츠크에 도착한 베링은 1728년, 마침내 태평양에서 베링해협을 지나 북극해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다. 아시아와 북미는 바다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렇게 북극항로의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1차 원정에 고무된 러시아는 북태평양 근처의 러시아 영토에 대한 조사, 북미 원정, 동아시아까지의 항로 개척 등 다양한 역할을 가진 7개의 분대로 구성된 대북방원정대를 구성한다. 그중 북미로 가는 항로 개척의 책임자가 된 베링은 1741년 6월 4일 캄차카를 떠나 7월 16일, 마침내 알래스카 해안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원정 도중 폭풍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괴혈병에 걸려 건강이 악화된 베링은 결국 1741년 12월 8일 태평양의 한 무인도에서 사망하고 만다.

국립해양박물관이 소장 중인 ‘북태평양에서의 새로운 발견들에 대한 최신의 해도’는 1752년 프랑스 파리에서 필리페 부아쉬(Philippe Buache)와 조세프 드릴(Joseph Delisle)이 제작한 해도로, 베링을 비롯한 러시아 북방원정대의 항로를 기록한 최초의 자료이다. 러시아는 원정대의 성과를 기밀로 취급해 공개하지 않았는데, 러시아 아카데미의 교수로 근무하던 드릴이 1747년 러시아를 떠나면서 챙긴 자료를 바탕으로 해도를 제작하면서 세상에 공개되었다.

지도에는 여타 북방원정대의 항로를 포함해 북태평양 지역에 대한 당대의 지리정보가 집약되어 있었다. 지리정보의 부족으로 북미 서해안, 사할린, 홋카이도, 그리고 북극해 대부분이 상상으로 채워진 미지의 영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도는 북극항로의 가능성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었다.

‘최신의 해도’가 담아낸 북극항로의 가능성은 열강들의 해양 전략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영국과 프랑스를 시작으로 러시아와 미국 등의 열강들은 경쟁적으로 북극해와 북태평양 탐사에 뛰어들었다. 상상의 공간은 점차 정확한 지리정보로 채워졌고, 공백이 채워질수록 지정학의 새로운 가치가 도출되었다. 그렇게 300년이 지난 오늘, 북극항로의 가능성이 재확인되고 있다. 다시 한번 모두가 북극항로를 바라보고 있다. 이번에는 우리도 우리만의 ‘최신의 해양 전략 해도’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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