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뜨거운 경주
‘천년고도’ 경주가 들썩이고 있다.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1일까지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아세안 각국의 정상들이 참석해 경주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데 이어, APEC 정상회의의 감동과 여운을 느끼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경주박물관(경주시 인왕동)에는 우리나라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한 금관의 실물을 보려는 방문객으로 오픈 런 행렬이 이어지고, 천마총 인근 황남빵 본점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감탄한 황남빵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연일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또 APEC 정상회담 개최를 기념해 한국의 예술과 문화를 알리는 전시가 도시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천년고도 신라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경주는 이제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여행지로 떠올랐다.
◇ 104년 만에 모인 금관…오픈런도 부족한 국립경주박물관

현재 경주에서 가장 뜨거운 핫플레이스를 한 곳만 꼽으라면? 단연 국립경주박물관이다. 현재 진행 중인 특별전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이 매일 오픈런이 이어질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달 14일까지 열리는 이번 특별전은 APEC 개최와 국립경주박물관 개관 8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이 전시가 화제인 것은 신라 금관 6점을 한자리에 모은 파격적인 전시 구성 덕분이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된 ‘금관총’ ‘천마총’ ‘교동’ 금관 3점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의 ‘금령총’과 ‘황남대총’ 금관, 국립청주박물관의 ‘서봉총’ 금관 등 총 6점을 전시한다. 신라 금관 6점이 한자리에 모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21년 ‘금관총 금관’의 발굴을 통해 신라 금관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이러한 전시는 전례가 없었다. 이 때문에 SNS 등에서 이번 전시는 ‘104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전시’로 불리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최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의 모형을 선물하면서 실물을 영접하려는 방문객들로 열기가 한층 더 뜨거워졌다.
전시는 오전 9시30분부터 입장해 평일과 일요일은 오후 6시까지 총 17회차·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총 23회차가 진행되며, 회차당 150명씩 입장 인원을 제한한다. 매일 현장에서 오전 9시20분부터 선착순으로 당일 관람용 티켓을 배부하기 때문에 새벽부터 관람객의 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일 찾은 현장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오전 7시부터 긴 줄이 늘어섰고, 오전 11시가 되기도 전에 모든 회차의 표가 매진됐다. 정문 안내소에서 전시 입장이 마감됐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방문객들 사이에서 “이거 보려고 경주까지 왔는데…”라는 아쉬움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전시는 초기 형태의 금관으로 알려진 ‘교동 금관’에서 시작해 가장 화려한 모습을 자랑하는 ‘천마총 금관’에 이르기까지 금관의 변천사를 시대순으로 조망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금관과 함께 출토된 금 허리띠와 관모 등도 전시돼 있어 신라시대 금 문화의 정수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또 한쪽 전시장에는 박물관이 전시를 준비하며 진행한 금관 관련 연구 결과를 키오스크로 구현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키오스크에서는 ▷신라 금관은 왜 순금이 아닐까 ▷사슴뿔 모양 세움 장식은 정말 사슴뿔일까 ▷신라 금 산지는 어디였을까 ▷신라 금관은 장송용이었을까 ▷신라 금관의 곱은옥 산지는 어디일까 등 5개의 흥미로운 주제에 관한 설명을 만나볼 수 있으며, 고화질로 유물 사진을 확대해 볼 수 있는 기능도 제공돼 관람의 재미를 더한다.
◇ 황화코스모스 물결치는 첨성대 길…줄서야 사는 황남빵

관광객들 사이에선 ‘APEC 여행기’로 국립경주박물관을 관람한 뒤 첨성대를 거쳐 대릉원과 천마총을 둘러보는 코스를 선택하는 이가 많다. 택시나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특히 이맘때는 도보나 자전거로 이동한다면 더욱 특별한 여행이 되기 때문이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첨성대까지는 약 1.5㎞, 첨성대에서 대릉원과 천마총까지는 약 1㎞로 선선한 날씨와 함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거리다.
이 코스의 백미는 국립경주박물관과 첨성대 사이 일대에 조성된 꽃단지다. 특히 가을철에는 해바라기는 물론 단풍과 핑크뮬리, 코스모스가 한데 피어 있어 경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을 정취를 만날 수 있다.
아이와 함께라면 첨성대 인근에서 출발하는 ‘비단벌레 전동차’를 타보는 것도 좋다. 비단벌레를 형상화한 관광용 차량으로 20분 동안 최부잣집, 교촌마을, 월정교 등 주요 관광지를 둘러본 뒤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순환 코스로 운행된다. 문화 해설이 함께 제공돼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 탑승료는 어른 4000원·군인 및 청소년 3000원·어린이 2000원이며, 오전 4회·오후 6회 운행된다.

천마총까지 모두 둘러봤다면 근처의 ‘황남빵’ 본점으로 달려가야 한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이 대통령으로부터 선물 받은 황남빵을 두고 “맛있다”고 언급한 사실이 알려지며, 본점 앞에는 오픈 시간 전부터 긴 대기 줄이 이어지고 있다. 때아닌 ‘황남빵 대란’이 이어지자 온라인상에서는 웃돈을 얹은 재판매나 유사 제품을 파는 사례까지 생겼다.
이날 오후 찾은 본점 역시 매장 안팎으로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주문 후 제품을 받기까지 3~4시간은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부산에서 왔다는 한 30대 방문객은 “학생 때 수학여행 이후로 황남빵은 처음 먹어본다”며 “APEC도 열렸고 이참에 한 번 먹어보자 싶어 줄을 섰다”고 말했다.
# 미술관도 핫한 경주…APEC 어젠다 예술로 풀어낸 ‘백남준 특별전’
- 지난 7월 재개관 우양미술관서 30일까지 열려
- 경주솔거미술관선 내년 4월까지 ‘신라한향’展

APEC 정상회의의 여운 속에 경주 곳곳에서는 한국의 예술과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다채로운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한 해 동안의 리모델링을 마치고 지난 7월 재개관한 경주시 신평동의 우양미술관에서는 오는 30일까지 한국 미디어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을 조명하는 특별전 ‘백남준: 휴머니티 인 더 서키츠(Humanity in the Circuits)’가 열린다.
APEC 정상회의 개최와 미술관 재개관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는 백남준 예술의 전환기로 평가받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주목해, 그가 구축한 ‘기술-예술-인간’의 유기적 회로를 살펴보고 APEC이 제시한 세계적 의제를 예술의 언어로 풀어낸다.
핵심 작품은 ‘나의 파우스트’ 연작 중 일부인 ‘나의 파우스트-경제학’과 ‘나의 파우스트-영혼성’이다. 이 작품이 공개되는 것은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나의 파우스트’ 연작 13점이 모두 전시된 이후 30여 년 만에 처음이다. 우양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다가 올해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복원해 다시 빛을 보게 됐다.
또 1993년 대전 세계박람회에서 선보인 ‘전자초고속도로’ 연작 중 하나인 ‘전자초고속도로 1929포드’ 역시 2년 반의 복원 작업 끝에 관객 앞에 다시 섰다. 이 외에도 1991년 우양미술관 설립을 기념해 제작된 상징 조형물 ‘고대기마인상’과 백남준의 매체 실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음악 심’ ‘푸가의 예술’ 등 비디오와 음향, 조형 구조물 등이 융합된 다채로운 작업을 만나볼 수 있다.
경주솔거미술관(경주시 천군동)에서는 특별전 ‘신라한향: 신라에서 느끼는 한국의 향기’가 내년 4월까지 이어진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APEC 주제어인 ‘지속 가능한 내일’을 찬란한 신라 문화와 미학에 기반해 현대적으로 풀어낸 전시다. 한국 수묵화의 거장 박대성 화백과 전통 회화 작가 김민, 불교 미술가 송천 스님, 유리공예가 박선민 등 서로 다른 세대와 분야의 작가 네 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신라’가 주는 심미적 자극을 교집합 삼아 각자의 작품 세계를 펼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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