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본법 시행령안 입법 예고…“사실상 무규제” 비판나오는 이유는?

정부가 ‘인공지능의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 시행령안을 입법 예고하자, “사실상 무규제에 가깝다”는 시민사회의 비판과 “규제가 한국의 AI 경쟁력을 저해할 것”이라는 업계의 반론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고영향 AI’의 정의 범위, AI를 활용하는 주체에 대한 책무 부여, 과태료 부과 유예기간 설정 등이 주요 쟁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기본법 시행령 제정안을 12월22일까지 40일간 입법 예고한다고 12일 밝혔다. 정부는 내년 1월22일 AI 기본법 시행에 맞춰, 지난 9월8일 시행령안을 사전 공개하고 의견 수렴을 진행해왔다. 이번 입법 예고는 추가 의견을 받기 위한 절차다.
시행령안을 둘러싼 비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사업자에게 안전 관리 책임이 부여되는 ‘고영향 AI’의 정의가 지나치게 좁다는 점이다. AI 기본법은 고영향 AI를 에너지, 먹는 물, 보건의료 등 10개 분야에서 활용되는 AI 가운데 “사람의 생명·신체 안전·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로 규정했다. 아울러 “그밖의 영역”은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정부는 시행령을 제정하면서 영역을 추가하지 않았고, ‘중대한 영향’의 기준도 일부 특수한 사례로 한정했다.
‘고영향 규제’에서 빠진 대표적 사례로는 ‘감시 AI’가 꼽힌다. 현대제철은 지난 8월 당진 공장에 순찰용 로봇개를 투입해 “노동자 감시용”이라는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고영향 AI’로 분류되지 않아 위험관리 방안 마련 등의 의무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시행령안과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직접적 위해를 가하지 않는 감시·통제 기술은 대부분 고영향 AI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쟁점은 AI 개발자나 서비스 제공자 외 주체들에게는 법적 책무가 부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AI를 활용해 진료를 제공하는 병원, 채용 여부를 판단하는 기업, 대출을 심사하는 은행 등은 AI 관련 설명 의무조차 지지 않는다. 정부의 시행령안과 고시·가이드라인에서 이들은 AI 기본법상 ‘이용사업자’가 아닌 단순한 ‘이용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쟁점은 처벌 조항인 ‘과태료 부과’ 적용 유예다. AI 기본법은 고영향·생성형 AI 사업자가 안전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사실조사와 시정명령을 거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정부는 “규제보다는 진흥에 무게를 두겠다”면서 최소한 1년 이상의 유예기간을 두겠다고 밝혔다. 시민사회에선 “안전과 관련한 책무를 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국가 차원에서 공식화한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오병일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대표는 “유럽연합의 AI법(AI Act)은 공공장소 얼굴 인식, 인간의 취약성 공격, 직장과 학교에서의 감정 인식 같은 인권침해 소지가 큰 AI는 아예 금지하고 있지만 한국의 AI 기본법은 금지하는 AI가 없다”며 “그렇다면 ‘고영향 AI’의 정의와 책무라도 충분히 규정했어야 하지만 이를 소홀히 했고, ‘이용사업자’도 협소하게 해석하는 등 정부가 마련한 시행령안은 무규제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반면 업계는 정부안조차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EU도 AI법 적용 일부 유예를 검토하고 있는 만큼 우리가 먼저 나서 규제를 만들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과태료 부과를 유예한다 해도, 규제 자체가 경쟁력 강화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승현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AI플랫폼혁신국장은 “위험한 AI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 사전 규제가 스타트업 혁신 의지를 꺾을 것이라는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정부와 시민단체가 합의기구 등을 통해 사안별로 수시로 논의하는 방식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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