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금관, 경주 품으로] 왜 신라 금관에 열광할까

강시일 기자 2025. 11. 12. 15:2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 2일부터 12월14일까지 신라 금관 특별전시, 신라 금관 6기, 일제강점기에 3기 발굴, 최초 금관총 4일만에 도굴하듯 발굴
국립경주박물관이 2일부터 신라 금관을 전시하면서 국내외에서 관람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전인섭 문화해설사 제공

국립경주박물관이 경주지역에서 출토된 신라 금관 6기를 전시하는 기획 특별전을 열어 국내외 방문객들이 줄을 지어 찾고 있다. APEC 정상회의에 대비해 특별전시하고, 2일부터 일반에 공개하기 시작해 12월14일까지 전시를 이어간다. 신라 금관을 보기 위해 방문객들은 아침 일찍부터 입장권을 얻기 위해 경주박물관 앞에 장사진을 이루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25만 경주 시민들은 신라금관을 '고향 경주의 품'으로 다시 모시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본보 11월12일 1면 보도)

이토록 세계인들이 신라 금관에 열광하고, 25만 경주 시민들이 신라금관을 고향의 품으로 되돌려 받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쳇 GPT는 신라 금관은 1천600여년 전에 제작되었지만 정교한 세공기법과 비율이 오늘날의 디자인을 능가한다는 점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 천인합일 사상을 형상화한 뛰어난 예술성, 역사와 희귀성에서 그 가치를 설명한다. 또한 경주 시민들에게 신라금관은 천년 고도 경주의 상징이어서다.

세계인들의 관심과 경주 시민들의 열망 속에 경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6기의 신라 금관 발굴 내력과 특징을 발굴 순서대로 소개한다.
1921년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금관총 금관.

◆금관총 금관

금관총 금관은 1921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도굴적인 방법으로 단 4일만에 화려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됐던 최초로 발굴된 신라 금관이다. 금관총 주변의 주막이 증축공사를 하면서 드러난 구슬을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심상치 않게 생각한 일본인이 총독부에 보고해 발굴하는 과정에서 금관이 드러났다. 최초로 금관이 발굴되면서 고분의 이름을 금관총으로 명명하게 됐다. 금관총의 금관은 높이가 27.5㎝, 지름 19㎝에 무게는 692g이다. 순도 85.4% 금이다. 나뭇가지형 세움장식 3개와 녹각형 2개를 갖춘 전형적인 금관이다. 관테 전후좌우에 점렬문과 파상문이 새겨져 있고, 곱은옥과 영락으로 장식했다. 국보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같이 출토된 금제 허리띠도 국보다.
호박을 심으려다 신고로 1924년 발굴된 금령총 금관.

◆금령총 금관

금령총 금관은 역시 일제강점기인 1924년 일본인들에 의해 조사 발굴됐다. 고분 주변에 거주하던 주민이 호박을 심기위해 마당을 파다가 금목걸이가 나온 것을 경찰에 신고해 발굴이 시작됐다. 피장자는 15세 전후의 소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관총에서 금관이 발굴된 이후 주민 신고를 계기로 일본인들이 경주지역의 고분에 관심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발굴을 시작하면서 바로 옆의 식리총과 함께 발굴됐다.

금령총의 금관은 높이가 27㎝, 지름 16.5㎝로 비교적 소규모다. 출자형 세움이 4단으로 구성된 이례적인 예다. 곡옥이 생략되고 금 영락만을 매단 단출한 장식 형태가 특징이다. 녹각형 입식의 가지를 따로 만들어 못으로 결합한 것도 기술적인 포인트로 설명된다. 출토 당시에 좌우 드리개는 원래 부착물이 아닌 주변 수습품으로 정리됐다. 이 금관은 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1926년 일본인들의 초청을 받은 스웨덴 황태자가 들어올린 서봉총 금관.

◆서봉총 금관

서봉총 금관은 발굴 경위가 재미있다. 일본인들이 1926년 당시 일본을 여행 중이던 스웨덴 황태자를 급하게 발굴 현장으로 불러 직접 금관을 들어올리게 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그래서 고분의 이름도 스웨덴의 한자 표기 서전의 서자와 봉황의 봉자를 따서 서봉총이라 이름 지었다. 서봉총의 금관은 높이 30.7㎝, 지름 18.4㎝에 순도 80%의 금관이다. '山자' 3단 형식에 사방에 금대를 반원형으로 중앙에서 교차하게 만들고, 교차점에는 금판을 봉황형으로 오려서 붙였다. 같이 출토된 금제 허리띠는 120㎝다. 이 금관도 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진평왕 또는 눌지왕의 딸, 지증왕의 어머니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정희대통령이 경주관광개발을 위한 발굴에서 드러난 천마총 금관.

◆천마총 금관

천마총의 금관은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경주지역의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지시로 발굴이 진행됐다. 국내 기술 최초로 발굴에 착수해 금관과 금제 허리띠를 비롯한 많은 유물들이 쏟아졌다. 특히 백화수피에 그려진 천마도가 출토되면서 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천마총의 금관은 높이가 32.5㎝, 지름 20㎝에 무게는 1,262g이다. 순도 83.5%의 금관이다. 국보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천마총은 소지왕 또는 지증왕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황남동에서 가장 규모가 큰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관.

◆황남대총 금관

황남대총은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먼저 조사해보라고 지시했지만 기술 부족으로 천마총을 먼저 조사해 기술을 축적하고 발굴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황남동 일대에서 가장 큰 고분이라 하여 황남대총이라 부른다. 황남대총은 부부 쌍분이다. 부인의 무덤으로 보이는 북분에서 금관이 출토되고, 남분에서는 금관이 나오지 않았다. 황남대총 금관은 높이가 27.3㎝, 지름 17㎝에 무게는 1천62g이다. 내물왕과 실성왕, 눌지왕 시대에 조성된 고분으로 눌지왕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된다. 국보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도굴범으로부터 압수한 교동 금관.

◆교동 금관

경주 교동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금관이다 도굴품을 압수, 환수받은 신라 금관이다. 자칫 사라질 뻔한 문화유산으로 전체 높이가 12.8㎝, 지름 14㎝, 무게 50.4g의 가장 규모가 작은 금관이기도 하다. 신라 금관의 시원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피장자는 소년일 것으로 추정된다. 자작나무 잎을 연상시키는 단출한 형식으로 관테 양 끝을 금실로 묶는 등 일반적인 금관에 비해 기법과 예술성도 다소 떨어진다.

현재 전 세계에서 13점의 금관이 발견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신라 금관 6기를 포함 9기의 금관을 보유하고 있어 가장 많은 금관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신라 금관은 대부분 4~6세기에 제작됐고, 통일신라시대 이후에는 제작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신라 금관은 일제강점기에 금관총에서부터 시작해 금령총, 서봉총에서 3기가 출토됐고, 1970년대 접어들어 우리나라 기술로 천마총, 황남대총 그리고 교동의 금관까지 3기를 발굴해 모두 6기로 집계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금령총 금관과 황남대총 금관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됐으며 서봉총 금관은 국립청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최초 발굴된 금관총 금관과 국내 기술로 첫 발굴된 천마총 금관, 도굴범으로부터 압수한 교동 금관은 경주국립박물관이 소장, 전시해 왔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Copyright © 대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