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 내고 ‘인간 사냥’ 온 관광객들... 伊, 30년 전 사라예보 내전 조사

이철민 기자 2025. 11. 12.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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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검찰, 자국민 5명 이상 조사 시작
1992~1996년 민간인 1만여 명 살해된 현대 유럽 최장의 포위전
이탈리아 등 유럽과 미국서 극우 총기애호가들, 1억 원 이상 내고 ‘인간 사파리 사냥’
어린이→무장한 남성→여성→노인 순으로 가격표 책정

무려 1만여 명의 민간인이 살해됐던 1990년대 사라예보 포위전에서, 우리 돈으로 1억 원이 넘는 거액을 지불하고 민간인들을 살해하는 ‘주말 저격수’ 관광을 한 이탈리아인들에 대한 이탈리아 밀라노 검찰의 조사가 시작됐다.

사라예보 포위전은 1992년 6개의 공화국으로 구성됐던 유고 사회주의 연방이 와해되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그해 3월 독립을 선언하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세력이 수도 사라예보에서 가장 큰 인구를 차지한 보스니아계 무슬림(약 49%)를 몰아내려고 일으킨 내전을 말한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세력은 세르비아계 주민을 보호하고 영토를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일방적으로 ‘보스니아 세르비아 공화국(RSㆍRepublika Srpska)’를 세웠다.

저격수들의 총알이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사라예보 거리에서 한 아버지가 딸을 안고 급히 거리를 가로질러 뛰고 있다./자료 사진

수도 세르비아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외부에서 도시를 고립시키고 공격하기에 용이했다. 당시 보스니아 세르비아군과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정부군과 시민들을 상대로 현대 유럽 역사상 가장 길었던 포위전을 벌였다. 이 사라예보 전쟁에서 1만 1500여 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검찰에 따르면, 이탈리아ㆍ영국ㆍ독일ㆍ프랑스ㆍ미국ㆍ러시아 등지에서 온 이른바 ‘저격 관광객(sniper tourists)’들은 보스니아 세르비아 공화국의 지도자인 라도반 카라지치(Radovan Karadžić)를 비롯한 군 고위 관계자들에게 거금을 주고 사라예보의 언덕에 포진했다. 총기 애호가와 극우 성향인 이들은 저격 소총을 갖고 가 마치 비디오 게임이나 사파리 사냥을 하듯이, 사라예보 거리의 시민들과 아이들까지 무작위로 조준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저격 관광’에는 이탈리아인도 5명 이상이 가담했다고 한다.

밀라노 검찰은 이들 ‘인간 사냥꾼’들의 심리에는 세르비아계에 대한 공감이나 순수한 살인 욕구 혹은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본다.

검찰과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민간인들은 타깃별로 ‘가격표’가 있었다. 라 레푸블리카 등 이탈리아 언론 매체는 “이 섬뜩한 ‘스포츠’에 참여하려면 지금 가치로 8만~10만 유로(1억1200만~1억4000만 원)를 내야 했고, 어린이→무장(武裝)을 하거나 군복을 입은 남성→여성의 순서로 가격이 매겨졌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노인 저격 살해는 ‘무료’였다고 한다.

밀라노 검찰의 수사는 밀라노의 작가인 에지오 가바첸니가 ‘사라예보 사냥’의 관련 증거를 수집해 제출한 고소장에서 비롯했다. 작가 가바첸니는 “2022년 슬로베니아 출신 다큐멘터리 감독인 미란 주파니치가 제작한 ‘사라예보 사파리(Sarajevo Safari)’를 본 뒤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해, 검찰에 제출할 충분한 자료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가바첸니와 검찰 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 출신의 ‘인간 사냥꾼’들은 지금의 슬로베니아에 가까운 이탈리아의 북동부 도시 트리에스테에 일단 모여서 베오그라드를 경유해 세르비아계 민병대, 보스니아 세르비아군과 함께 사라예보 주변 언덕으로 이동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이 사라예보 내전에서 저격 살해된 희생자 중 보스니아 무슬림인 보슈코 브르키치(피살 당시 25세)와 가톨릭 교도인 보스니아 크로아트계 아드미라 이스미치(21) 커플은 국제적으로도 이 전쟁의 무차별성과 잔혹성에 대한 큰 공분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1993년 5월 사라예보의 한 다리를 건너다가 살해됐지만, 접근하기엔 너무 위험해서 시신이 수일간 방치됐다.

1993년 5월 19일 사라예보의 한 다리에서 무차별 저격에 살해된 보슈코 브르키치와 아드미라 이스미치 20대 연인의 시신.

또 사라예보를 빠져나가려는 시민들이 공항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었던 메샤 셀리모비치 대로는 극도로 위험한 ‘저격수의 거리(Sniper Alley)’로 불렸다.

러시아인 작가 에두아르드 리모노프가 1992년 사라예보를 둘러싼 언덕에서 민간인을 향해 기관총을 쏘는 장면 /유튜브 스크린샷

이밖에, 러시아 민족주의 작가인 에두아르드 리모노프(2020년 사망)가 1992년 사라예보를 향해 기관총을 쏘는 장면이 촬영됐다. 리모노프는 당시 ‘발칸의 학살자(Balkan butcher)’로 불리던 보스니아 세르비아 공화국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와 함께 있었다. 카라지치는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전범(戰犯)으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현재 헤이그 인근의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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