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새정부의 노력에도 우울한 과기계

정부가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국민보고대회’를 통해 ‘과학기술 인재 확보 전략’과 ‘연구개발 생태계 혁신 방안’을 내놓았다. 우수한 인재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매력적인 생태계 환경에서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혁신의 지평을 넓히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의대와 해외로 몰려가는 우수한 젊은 인재들이 ‘다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과학 강국’을 만들자는 것이다.
‘경청과 통합’이라는 국정 원칙에 따라 다양한 의견 수렴 절차를 통해 마련했다는 화려한 청사진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와 능력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지난 정부에서 ‘떼도둑’(카르텔)과 ‘악마’로 내몰리는 뼈아픈 고통을 겪었던 과학기술계와 의료계에 대한 정부의 따뜻한 ‘치유’와 ‘위로’가 없었던 것은 못내 아쉬운 일이었다.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개척하는 막중한 ‘주역’(主役)의 역할을 담당하는 과학자를 우대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확실한 의지를 분명하게 밝혀주었어야 했다는 뜻이다.
● 인재 확보와 생태계 혁신
부총리 부서로 승격한 과학기술부가 관계 부처 ‘합동’으로 마련했다는 구상이 화려하고 광범위하다. 초중등 단계부터 수학·과학의 저변을 넓히고 우수 과학기술 인재 확보를 위해 체계적 지원을 확대하고 인공지능 영재학교를 신설하고 4대 과기원을 인공지능 전환(AX)의 허브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연구자의 자율·책임 기반의 몰입 환경을 조성하고 과제·성과의 평가 시스템도 획기적으로 개편하고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연구개발 투자 체계도 구축하는 계획도 돋보인다.
앞으로 5년 동안 100명의 ‘국가과학자’를 선정하겠다는 계획에 언론의 주목이 쏠렸다. 세계적 수준의 연구 업적을 보유한 우수 연구자를 선정해서 국가 연구개발의 리더로 활동하도록 지원하여 전 국민이 존경하는 ‘롤모델’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우수한 젊은 인재가 다시 ‘과학기술인의 꿈’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핵심 사업이다.
2030년까지 해외 우수·신진 연구자 2000명을 유치해 국내 혁신 생태계를 보강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청년·신진 연구자의 첨단 분야 대학 전임교원과 출연연 신진 연구자 채용을 확대하고 대학의 연구시스템도 전문연구인력 중심으로 개편한다. 현재 1.3% 수준에 불과한 대학원생의 장학금 수혜율을 2030년까지 10%로 확대하는 계획도 있다.
기성 연구자에 대한 배려도 빼놓지 않았다. ‘기초연구’를 확대하여 안정적 연구지원을 강화하고 우수 연구자는 정년 후에도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정년 후 연구지원 사업’도 신설한다. 산·학·연 간 ‘겸직’을 활성화하겠다는 파격적인 계획도 있다.
연구개발 생태계 혁신을 위해 연구 관리 체계도 개편한다. 연구비의 관리 체계를 규제 중심에서 연구자의 자율·책임 중심의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의 관리 체계를 과감하게 혁파한 ‘도전적 임무 전용 트랙’도 구축한다. 연구자·연구실에 떠맡고 있는 연구 행정과 장비 관리 업무를 연구기관이 책임지도록 하는 계획도 있다.
평가 시스템도 전면 개편한다. 쉬운 연구를 조장하는 형식적 평가는 폐지하고 혁신성 중심으로 과제를 평가하고 성과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서 ‘실패의 자산화’를 지원한다. 평가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6000명 규모의 평가위원 풀을 확보하고 ‘평가위원 실명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한다.
예측가능한 연구개발 투자를 보장하기 위해 매년 정부 연구개발 예산을 정부 총지출 대비 5% 수준으로 확보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계획도 강조한다. 당장 내년에는 국가연구개발 예산을 36조원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 과학기술계의 우울한 현실
우수한 젊은 인재가 과학기술인을 꿈꾸도록 만들겠다는 과기부의 화려한 구상을 실행에 옮기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물론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도 중요하다. 그러나 오랜 경륜이 녹아있는 농익은 비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우수한 젊은 인재들이 경제적 보상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정부가 과학자의 사회적 역할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진심으로 과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환경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엉터리 유사(類似)·가짜 과학이 사회의 이성과 합리를 무력하하고 있는 사회적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노력도 중요하다.
과학기술계 인재의 해외 유출 상황이 계속 악화하고 있다는 절박한 현실에 대한 관심도 강화해야 한다.
과거에는 선진국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에 귀국하지 않는 경우를 걱정했던 우리 사회가 이제는 국내 대학에서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들여서 길러놓은 석사·박사 학위 취득자들이 대거 해외의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사태를 걱정하고 있다. 심지어 국내 대학·출연연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연구자의 해외 이직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석·박사 학위를 소지한 대학·연구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이공계 인력 2694명을 대상으로 한국은행이 실시한 여론조사의 결과는 충격적이다. 응답자 중 42.9%가 앞으로 3년 이내에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20대의 72.4%와 30대의 61.1%가 해외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이공계 박사 인력의 규모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다. 2010년 약 9000명에서 2021년 약 1만8000명으로 증가했다. 애써 양성한 인재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상황은 우수한 대학 진학생이 의대로 몰려가는 것 이상으로 절박한 것이다.
초중등학교에서 수학·과학 교육을 강화하는 일도 말처럼 쉽지 않다. 극도로 왜곡된 ‘문·이과 통합 수능’과 무리한 ‘고교 학점제’로 고등학교의 과학 교육은 1학년의 ‘통합과학’으로 끝나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불합리한 대학입시가 ‘사탐런’을 부추기고 있는 현실도 심각하다.
교육부가 느닷없이 내놓은 ‘AI 인재 양성 방안’도 수학·과학 교육 강화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전문가의 부족을 핑계로 학사부터 박사까지 5.5년 만에 마치도록 해주겠다는 교육부의 황당한 학제 개편이 과기부의 ‘우수 인재 확보’ 시도와 어울리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17년째 계속되고 있는 강압적인 등록금 동결 정책으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사립대학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오늘날 사립대 신임 조교수의 연봉은 민간 기업은 물론 출연연의 박사급 연구원 초봉보다도 낮아졌고 은퇴한 교수의 자리도 채우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그런 사립대학에게 해외의 우수·신진 연구자 유치 사업은 물론이고 연구행정과 장비 관리 업무를 떠맡기겠다는 구상은 탁상공론일 수밖에 없다. 교수 임용도 어려워진 사립대학에게는 연구시스템을 전문연구원 중심으로 개편하는 일도 부담스러운 것이다.
현재의 과제·성과의 평가 시스템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정형화·계량화된 평가의 부작용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그렇다고 과제의 ‘혁신성’을 강조하고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겠다’는 수준의 어설픈 시도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부가 평가의 방향을 제시하는 순간 평가 제도의 왜곡이 시작된다는 그동안의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6000명의 평가위원 풀을 만든다고 사정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과학자들이 권위를 인정하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평가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경직된 관료주의의 틀을 벗어던지는 것이 그 시작이 되어야만 한다.
‘실패의 자산화’에 대한 환상도 버려야 한다. 연구자가 ‘실패를 통해서 배운다’는 주장은 실제 연구 경험을 갖추지 못한 관료와 연구행정 전문가들의 일방적인 억지일 뿐이다. 실패는 실패일 뿐이다. 실패의 경험을 애써 미화(美化)할 이유가 없다.
다만 성과 창출에 실패했다고 국가연구개발 사업에서 퇴출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를 마치 모든 연구자에게 실패의 경험이 꼭 필요한 것처럼 왜곡해서는 안 된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실패의 경험을 딛고 일어섰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국가연구개발 과제의 성공률에 대한 어설픈 논란도 볼썽사납다. 우리 연구자가 모두 성공이 보장된 ‘쉬운’ 연구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지적은 모욕적인 것이다. 사실 연구과제의 ‘성공’과 ‘실패’는 언제나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가 언제나 ‘도전적·혁신적’ 과제에만 매달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스타 과학자’에 대한 환상도 버려야 한다. 정부가 임의적·자의적으로 만들어낸 ‘국가과학자’가 언제나 사회적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우리 사회에 부끄러운 상처를 남겼던 황우석 사태의 교훈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K-팝 스타와 배드민턴 스타도 정부가 만들어내지 않는다. 권위주의가 지배하는 중국·북한에서 시행하는 제도를 흉내 낼 이유는 없다.
과학자에 대한 정치권의 강압적 자세도 개선이 필요하다. 국정감사를 빌미로 수십 명의 과학자들을 출석하도록 요구하고, 하루 종일 대기하도록 하는 잘못된 관행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과학기술계의 원로인 총장과 원장을 범인 다루듯 함부로 질책하는 태도도 바꿔야 한다.
우수한 이공계 인재가 ‘과학자의 꿈’ 대신 해외와 의대로 몰려드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과학자에 대한 경제적 보상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대 과학적 합리와 이성이 유사·가짜 과학에 밀려나는 현실을 바로 잡는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필자 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 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3200여 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질병의 연금술》《지금 과학》을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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